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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의 길냥이들]15미터 추락한 '빼꼼이'와 지극정성 '이화냥이'

등록 2018.05.12 14:50:00수정 2018.05.24 10:4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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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학생과 길냥이 공생 도모하는 동아리 '이화냥이'

쉼터, 사료비, 치료비까지 마련하며 다채로운 활동

고양이 모티프로 에코백, 물병 등 굿즈 직접 제작

중상입은 '빼꼼이' 치료비 이틀만에 600만원 모금

약물 뿌려 길냥이 죽이고 부원들에 폭언 위협 감수

전문가 "청년 세대 생명 존중, 동물 돌봄문화 의미"

【서울=뉴시스】천민아 기자 = 지난해 8월 큰 부상을 당했던 빼꼼이가 회복한 모습. 현재 임시보호처에서 입양을 기다리고 있다. 2018.05.11. (출처=이화냥이 블로그) mina@newsis.com

【서울=뉴시스】천민아 기자 = 지난해 8월 큰 부상을 당했던 빼꼼이가 회복한 모습. 현재 임시보호처에서 입양을 기다리고 있다. 2018.05.11. (출처=이화냥이 블로그)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천민아 기자 = 11일 오후 1시30분께 이화여대 내 고양이 급식소. 잠복 40분 만에 치즈태비와 고등어 무늬 고양이가 나타났다. 고등어가 식사할 동안 치즈태비는 3미터 뒤쯤 건물 벽에 붙어앉아 연신 기자를 경계했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뜨는 '고양이 인사'를 건내자 망설이더니 깜빡 맞인사를 하곤 긴장이 풀린 분위기다. 녀석들은 포식한 뒤 덤불 그늘에 누워 늘어지게 한 시간 낮잠을 잤다. 이화여대 길고양이 공생동아리 '이화냥이'의 손길이 닿은 고양이 쉼터의 정경이다.

 대학 내 고양이와의 공생을 위한 모임이 하나의 대학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이화여대 교내 동아리인 이화냥이는 이화여대 재학생과 교내 길고양이의 공생을 위해 재작년 11월 만들어졌다. 단순히 먹이를 주며 집을 만들어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모금활동을 벌이고 고양이 굿즈를 만들어 파는 등 인간과 고양이가 더 가깝게 공존할 수 있게끔 다양한 활동을 선보이고 있다.

 이화냥이의 다채로운 활동 배경에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부원들, 그리고 재학생들의 지지가 있다. 약 40명의 부원들은 주 1회 이상 학교 곳곳에 고양이 사료를 배식하는 등 무급으로 봉사활동을 진행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양이 사료비, 각종 치료비를 재학생 등을 대상으로 모금하기도 한다.

 실제 학생들의 애정으로 지난해 목숨을 건진 고양이가 있으니 바로 '빼꼼이'다. 2015년도부터 캠퍼스에서 지내던 빼꼼이는 활발하고 붙임성이 좋아 별명이 '수다냥'이다. 지난해 8월께 15m 높이의 건물에서 떨어져 오른쪽 뒷다리가 산산조각 부러지고 급성신부전이 오는 등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그대로 뒀다면 목숨을 잃었을 중상이었다. 다친 빼꼼이를 위해 팔을 걷어붙인 학생들이 이틀만에 치료비 약 600만원을 모았다. 건강을 회복한 빼꼼이는 현재 임시보호처에서 입양을 기다리고 있다. 이 밖에도 캠퍼스에 유기된 '렉돌이', 지금은 세상을 떠난 '랭이' 등을 위해 모금이 열린 바 있다.

 또 다른 기반은 직접 제작한 '고양이 굿즈'다. 조형예술대학 재학생 등으로 구성된 이화냥이 디자인팀은 대학 내 서식하는 길냥이를 모티브로 캐릭터를 디자인해 에코백, 스티커, 볼펜 등을 만든다. 지난 3월 길고양이 보호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굿즈를 보상으로 내세워 스토리 펀딩을 했다. 247명이 펀딩에 참여해 목표 금액인 300만원을 훌쩍 넘은 350만원이 모였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이달 열리는 대학 내 축제에서도 스티커, 물병 등을 판매할 예정이다.
【서울=뉴시스】 천민아 기자 = 이화여대 길고양이 공생 동아리 '이화냥이'가 캠퍼스 내 고양이를 모티프로 직접 제작한 굿즈. 2018.05.11. (제공=이화냥이) mina@newsis.com

【서울=뉴시스】 천민아 기자 = 이화여대 길고양이 공생 동아리 '이화냥이'가 캠퍼스 내 고양이를 모티프로 직접 제작한 굿즈.  2018.05.11. (제공=이화냥이) [email protected]

이러한 뜨거운 호응에도 불구하고, 이화냥이 역시 길고양이 혐오자들 때문에 간혹 고초를 겪는다. 심지어 급식소에 약물을 타 테러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해 9월 아기고양이 '포포'는 급식소에 누군가가 뿌린 약물을 먹고 간신히 숨만 쉬는 상태로 발견됐다.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세상을 떠났다. 아직 엄마 품도 채 떠나지 못했던 아기고양이는 '고양이별'에 간 뒤에야 '포포'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후 이화냥이는 급식소 위치, 고양이 생태 등이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더욱 신중하게 대응하고 있다.

 고양이 급식소에서 사료를 배급하는 부원에게 욕설을 한 남성의 경우처럼 부원들을 향한 폭언도 상처가 된다. 이화냥이 김희나 회장은 "길고양이 혐오자들의 폭언 등은 부원의 안전에 큰 위협이 된다"며 "호신용품을 구비해 2인1조로 급식활동을 진행한다"고 전했다.

 이화냥이를 비롯한 서대문구 대학 내 고양이 동아리들은 지역사회에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구청과 함께 길고양이중성화(TNR) 작업에 나선 것이다. 이화냥이는 작년부터, 연세대 동아리 '연세대 냥이는 심심해'는 올해 3월부터 구청에 협조해 교내 TNR 작업을 하고 있다.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사유지인 대학 특성상 고양이들을 포획하기가 어려운데 동아리들 협조로 올해만 약 5마리 중성화를 완료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대학가의 고양이 돌봄 문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길고양이가 실질적으로 마주하는 지역주민, 대학생 등의 관심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동물 보호를 국가나 지자체가 모두 할 수는 없다.

 동물자유연대 채일택 정책팀장은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갈 청년 세대가 생명, 동물을 보호하는 역량을 미리 축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활동이 의미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천민아 기자 = 11일 오후 이화여대 캠퍼스 안에서 만난 고양이가 기자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있다. 2018.05.11. mina@newsis.com

【서울=뉴시스】 천민아 기자 = 11일 오후 이화여대 캠퍼스 안에서 만난 고양이가 기자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있다. 2018.05.11.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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