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회 칸 영화제

‘흑금성’ 다룬 <공작>… 외국 관객들 “남·북 관계 흥미롭지만, 이해하기 어려워”

칸|고희진 기자

윤종빈 감독의 <공작>이 제71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 영화는 1990년대 중반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벌인 ‘북풍 공작’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실제 활동했던 대북 공작원에 대한 얘기다. 액션이 가미된 첩보물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영화는 전혀 다른 전개를 펼쳐나간다. 주인공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 영화는 인물의 대사와 감정 변화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액션은 찾아보기 힘들다. 영화가 한반도 분단 문제와 더불어 한국 정치 내부 갈등까지 다루고 있기 때문에 외국 관객들은 “남과 북의 관계가 흥미로웠다”면서도 “약간은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공작>의 ‘미드나잇 스크리닝’ 상영은 11일(현지시각) 밤 11시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렸다. 상영에 앞서 윤종빈 감독을 비롯해 배우 황정민, 이성민, 주지훈이 레드카펫에 들어서자 팬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티에리 프리모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과 인사를 나눈 이들은 뤼미에르 대극장으로 들어섰다. 관객의 박수와 함께 영화가 시작됐다.

11일(현지시각)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영화 <공작> 상영에 주지훈, 윤종빈 감독, 황정민, 이성민(왼쪽부터)이 참석했다. <공작>은 제71회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공식 초청됐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11일(현지시각)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영화 <공작> 상영에 주지훈, 윤종빈 감독, 황정민, 이성민(왼쪽부터)이 참석했다. <공작>은 제71회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공식 초청됐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11일(현지시각)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영화 <공작> 상영 모습. <공작>은 제71회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공식 초청됐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11일(현지시각)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영화 <공작> 상영 모습. <공작>은 제71회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공식 초청됐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는 한국의 분단 상황을 설명하는 영어 자막과 함께 시작했다. 초입의 상당부분은 주인공 박석영(황정민)이 안기부 스파이 흑금성으로 활동하게 되는 과정을 다룬다. 박석영은 남측 사업가로 위장해 북한 고위 인사인 리명운(이성민)에게 접촉한다. 국가안전보위부과장 정무택(주지훈) 등 다양한 북측 인사를 만나며 그의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된다. 그러나 자신을 스파이의 길로 끌어들인 최학성(조진웅) 안기부 해외실장이 그 몰래 다른 일을 꾸미고 있다는 일을 알게 되면서 박석영의 고민은 깊어진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남한 내부의 정치 갈등을 함께 다룬다. 15대 대선을 앞두고 부상하는 김대중 후보를 막기 위해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여당의 모습이 그려진다. 참혹했던 북한의 경제 상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고난의 행군’을 거치며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야 했던 북한 주민들의 모습은 지켜보기 힘들다.

실화에 기반을 둔 작품답게 영화의 전개는 과거 사건을 떠올리면 어느정도 이해가 가능하다. 흑금성 사건은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안기부가 주도한 북풍 공작 사건 중 한 부분이다. 검찰 조사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 안기부는 김대중 후보가 ‘북한으로부터 대선 자금을 받았다’는 등의 루머를 퍼뜨려 선거에 개입했다. 1998년 3월에는 안기부 해외실장이었던 이대성씨가 국내 정치인과 북한 고위층 인사 간의 접촉을 담은 기밀정보를 언론에 폭로하기도 했다. 이대성 실장의 파일엔 암호명 흑금성으로 활동한 박채서씨 등 공작원들의 대북활동 보고 내용이 담겨있었다. 박채서씨는 당시 한 광고회사에 위장 취업해 북한 고위급 인사들과 접촉했다.

윤종빈 감독 영화 <공작> 중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윤종빈 감독 영화 <공작> 중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윤종빈 감독 영화 <공작> 중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윤종빈 감독 영화 <공작> 중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관련 사건에 대해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들은 이해가 쉽겠지만, 처음 이 같은 얘기를 접하는 외국인 관객이 영화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일까 경쟁 상영에 비해 자유로운 분위기의 ‘미드나잇 스크리닝’에서도 관객들은 내내 조용하게 영화를 지켜봤다. 초반 설정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몇몇은 자리를 뜨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 꽤 정치적인 영화이지만, 사실과 허구가 교차한다는 점에서 쉽게 인물에 감정이입 하기가 어렵다는 특징도 있다. 1997년 북풍 공작 사건 자체는 검찰 조사까지 이뤄진 실제 사건이긴 하지만, 스파이 흑금성에 대한 평가는 아직 제대로 정의된 것이 없다. 공작을 관람한 한 외국 관객은 “(대사가 많아) 자막이 지나가는 걸 따라잡기가 조금 어려웠다. 상황을 자세히 몰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며 “다만, 영화가 꽤 길었음에도 남한과 북한의 관계를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완성도 면에서는 호평이 잇따랐다. 윤성빈 감독은 국가 혹은 정권의 이익과 본인의 소명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심도있게 그려냈다. 꽤 사실적으로 그려낸 북한의 현지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이성민과 황정민의 연기는 영화의 중심을 잡아준다.

<공작>의 프랑스 배급을 맡은 메트로폴리탄의 씨릴 버켈은 “놀랍도록 밀접한 스파이 영화이고, 스토리 그 자체로 매우 흥미롭다”며 “남과 북의 특별한 이야기를 감독의 특별한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으로 접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티에리 프리모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강렬하면서도 대단한 웰메이드 영화”라고 평했다. 그는 영화 상영 후 윤 감독에게 “다음 번은 경쟁부문(에 오게 될 것)”이라는 인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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