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病 없이 안락사 택한 104세

김태익 논설위원 2018. 5. 12.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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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죽음을 맞이한 인물로 흔히 미국의 자연주의자 스콧 니어링(1883~1983)을 꼽는다. 니어링은 여든에 자신의 '죽을 계획'을 글로 써놓았다. "나는 죽을 때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바란다" "어떤 진통제 마취제도 필요 없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존중받으며 가고 싶다"…. 니어링은 백 살 생일이 다가오자 죽음을 예감한 듯 단식을 시작했다. 그리고 3주 만에 눈을 감았다. 니어링의 아내는 "그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듯 편안하게 갔다"고 썼다.

▶몇 년 전 본지에 수필가 허숭실씨가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마지막 여행'이란 에세이를 보내왔다. 그의 아버지는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달포가량 전국을 여행했다. 사업할 때 어려움을 같이한 사람들을 만나 고마움을 표했다. 자신에게 등 돌려 서먹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위로했다. 병세가 악화됐지만 진통제를 맞지 않았다. "오래 앓는 것은 가족뿐 아니라 환자에게도 고역"이라고 했다. 보름 동안 곡기를 끊더니 잠든 아기처럼 세상을 떴다. 허씨는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저승사자가 달려들기 전에 저 세상으로 발걸음 옮기셨다"고 했다.


▶한 여론조사에서 "오래 살고 싶으냐"고 물었다. 모두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다시 "90이 넘도록 살고 싶으냐"고 물었다. 18%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 한다. 중요한 것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다. 삶의 질이 떨어지면 수명 연장일 뿐이다. 남의 신세 지지 않고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만 살아야 한다.

▶호주 104세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의 죽음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그는 앓는 병도 없었다. 그러나 건강이 나빠지면 지금보다 더 불행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달은 "죽는 것보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게 진짜 슬픈 일"이라고 했다. 구달은 치사(致死) 약이 들어간 정맥 주사기에 연결된 밸브를 자기 손으로 열었다. 죽기 전 마지막 듣고 싶은 음악으로 베토벤 9번 교향곡의 '환희의 송가'를 꼽고, 읊조렸다.

▶구달은 단지 '너무 오래 살았다'고 생각해 죽음을 택했다. 그의 죽음은 삶의 존엄성을 위한 선택이란 면에서 볼 때 의사의 연명 치료를 거부하는 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그의 '자살'을 미화할 것까지는 없지만 숙연하고 비장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구달의 죽음은 고령화 시대 사람은 '언제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물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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