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로는 접근성이 낮았던 영덕. 올해 초, 포항에서 월포, 장사와 강구역을 지나 영덕역까지 이르는 동해선 철도가 개통하면서 버스를 타지 않고 기차로도 갈 수 있게 됐다. 서울에서 포항까지 KTX로 2시간 30분, 포항에서 영덕까지는 동해선 열차로 30분이면 이동 가능하다. 수도권-영덕 여행 3시간 시대가 온 것이다. 신설된 경북 동해선 기차와 국내 첫 도심운하 크루즈를 타고 즐기는 봄맞이 동해안 레일크루즈 여행을 소개한다.
열차 내외부가 주요 관광지 테마로 래핑되어 있는 경북나드리열차, 객차 앞과 뒤에는 콘센트가 설치되어 있다. 간단한 다과와 음료를 구입할 수 있는 미니 카페 칸, 공연 칸 4인 동반석도 설치되어 있다.
▶‘포항-월포-장사-강구-영덕’ 잇는 기차 개통
포항으로 가는 KTX 기차에 올라탄다. 천안아산과 대전, 동대구를 지나 포항역에 다다른다. 지난 1월26일 개통된 열차는 포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 테마열차라고 보면 된다. 계란을 까먹으며 음료수 마시며 천천히 달리는 기차. 서울에서 강릉까지 2시간도 안되는 시간에 주파하는 경강선이 개통하는 마당에, 느리게 달리는 바닷길 무궁화호라니, 호기심이 일었다.
동해선 기차는 기존의 무궁화호에 영덕의 특산물인 대게와 경북 지역에 많이 서식하는 까투리 그림이 알록달록 그려진 새로운 옷을 입고 있었다. 이름하여 ‘경북나드리열차’다. 주말에 운행되는 경북나드리열차는 ‘동대구-서경주-포항’을 잇는 테마열차로, 경북 지역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엄마 까투리가 여기저기 그려져 있다. 열차매점, 공연이 열리는 이벤트실, 가족실, 일반 객실 등으로 나뉘는 열차는 포항, 구룡포를 오간다. 동해선 구간 개통과 함께 월포, 장사, 강구, 영덕 등 4개 역도 첨단역사로 새로 개설됐다.
대나무가 많아 죽도라 불리는 죽도산 전망대에서 영덕 블루로드 다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포항과 영덕에 동해안 해파랑길과 블루로드 길이 이어지고, 이름이 ‘동해선 철도’임에도 불구, 철길 대부분이 산, 들, 터널로 이어져 바다를 접한 채 달리는 길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 그런 점에서 돋보이는 곳이 장사역과 월포역. 장사역은 걸어서 10분, 월포역은 걸어서 5분 정도면 해수욕장에 와 닿는다. 정동진역 다음으로 바다와 가까운 월포역은 바다가 역사에서 보일 지경이다. 포항역을 출발한 기차를 타고 10여분이 지날 즈음, 차창 밖으로 동해 바다가 보이고 월포 역사가 보인다. 비록 느릿느릿한 무궁화호가 다니지만, 역내에는 첨단 키오스크를 배치했다. 기존 무인매표기를 아이패드 크기까지 작게 줄인 것으로 열차표 구입은 물론 배차표 확인, 주변 관광지 검색 등이 가능하다. ‘제2의 정동진’을 꿈꾸는 월포역에 잠깐 내려 해안으로 밀려온 파도와 밀당을 해본다. 기차를 타고 월포역에서 서핑을 즐기는 ‘월포 레일서핑투어’의 경우 샤워비와 강습료 등 서핑과 왕복열차비 포함 6만5000원 정도면 당일로 서핑이 가능하다. KTX로 서울(또는 천안아산/대전/동대구)에서 포항까지는 KTX를 타고, 동해선 무궁화호로 월포역까지 이동, 1시간 강습을 받은 후 2시간 자유 체험이 가능한 것. 내연산, 보경사, 화진 해수욕장 등이 있는 월포에서는 월포해변 록 페스티벌, 전통어업 방식인 후릿그물 체험도 매년 열린다.
월포역은 정동진 다음으로 바다와 기차역이 가까운 역으로, 도보로 5분이면 월포 바닷가에 와닿는다.
▶느릿느릿 완행 기차를 타고 만나는 블루로드
월포 다음은 장사역이다. 장사역도 바다와 비교적 가깝다. 물론 동해 바다 기찻길처럼 바다를 쳐다보며 달리진 않으나, 도보로 10분 이내에 해안에 당도할 수 있다. 장사해수욕장과 대게누리공원 등을 둘러보고 올라탄 기차는 다음 정류장인 강구역으로 향한다. 매년 영덕대게축제가 열리는 강구항이 있는 곳이라 그런지, 영덕대게를 형상화한 빨간 대게가 기차 외관을 장식하고 있다. 강구항까지는 차로 5분여. 강구항에 가까이 가면 일단 대게를 찌는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냄새의 주산지는 100여 곳에 이르는 대게식당이 있는 강구항 대게거리. 바다와 항구가 가까운 강구시장은 5일장이 3일과 8일마다 열린다. 3~4월이면 대게를 찾는 이들로 북적이는 강구항은 울진 후포항과 함께 대표적인 대게 집산지다. 대게 조형물이 매달려 있는 작은 다리를 건너면 대게 거리가 나타나는데, 비싼 대게 대신 모양만 그럴싸한 대게빵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강구항에서 삼사해상공원과 해파랑공원을 둘러보고 마지막 역인 영덕역에 도착한다. 영덕에 왔다면 대게만큼이나 빼놓지 말고 경험해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하늘색의 영덕 앞바다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영덕 블루로드. ‘대게누리공원-강구항-축산항-고래불해수욕장’까지 바다를 보며 걷는 64km 길이 여행길로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에 이르는 770km 해파랑길의 일부다. ‘빛과 바람의 길’(A코스 17.5km), ‘푸른 대게의 길’(B코스 15.5km), ‘목은 사색의 길’(C코스 17.5km), ‘쪽빛 파도의 길’(D코스 14.1km) 4개로 구성돼 있다. 안전을 위해 3인 이상 걷고, 해안길과 군 시설이 있으므로 악천후나 일출 전, 일몰 후 탐방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유의사항이 눈에 들어온다. 강구항과 함께, 영덕을 대표하는 축산항이 있는 죽도산 전망대에 다다르면 영덕 블루로드 다리가 가르는 영덕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대게가 등대를 꽉 쥐고 있는 영덕 해맞이공원의 창포말등대 옆에는 풍력발전단지와 정크트릭아트전시관, 신재생에너지전시관이 함께 위치해 있어 이곳저곳 이동할 필요 없이 한번에 둘러보기 좋다. 사랑이 깊은 연인이라면 공원 아래 산책로를 따라 약속바위로 내려가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단, 올라오는 계단이 꽤 많으므로 사랑이 무르익은 상태에서만 내려갈 것. 서울, 대전, 동대구에서 강구까지 왕복 열차비와 숙박료로 구성된 ‘영덕 레일텔(7만4400원)’ 상품, 8시간 렌터카를 대여해서 여행하는 ‘강구 레일카’ 상품(7만400원)도 출시됐다.
새우과자를 던져본다. 포항 크루즈 A코스(1.3km)는 1만 원에 40분간 배를 탄다, 탈랑교, 말랑교, 우짤랑교 3개 다리를 지나는 포항운하 크루즈.
▶국내 첫 도심운하 가르는 크루즈 여행
첫 개통한 동해선 기차를 타봤다면 최근에 신설된 포항 운하 크루즈도 함께 타보자. 포항역에서 24시간 회 타운인 죽도시장을 지나면 제철소 앞으로 포항운하 크루즈 선착장이 나타난다. 형산강이 동해와 합쳐지는 지점에 위치한 포항운하는, 강물과 바닷물이 반반 섞여 있으며 강폭이 약 15~26m에 달하는 국내 첫 도심운하다. ‘크루즈’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폭 20m 운하를 왕복하는 작은 배의 모습이 너무나 앙증맞다. 선착장에서 죽도시장과 송도해수욕장을 지나 포스코 앞바다로 돌아오는 A코스(기본코스 8km)가 기본으로, 날씨가 좋지 않으면 죽도시장까지 갔다가 유턴하는 B코스(내항코스 8km)가 운항된다. 베네치아 느낌을 좀 더 내고 싶다면 죽도시장과 해상공원을 돌아오는 곤돌라를 타고 콧노래를 불러보자. ‘철의 도시’답게 크루즈를 타고 지나가는 공원에는 철로 만든 스틸 아트 조각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벽화가 그려진 돌 벽과 밤에는 조명이 켜지는 분수를 지나자 독도까지 경비하는 포항 해경배, 포항함 체험관이 나타난다. 배에 붙은 ‘301’이라는 숫자는 300톤 급에 해당하는 첫 번째 배를 뜻한다. ‘탈랑교’, ‘말랑교’, ‘우짤랑교’라는, 정겨운 이름을 지닌 3개의 다리를 지나 포항 앞바다로 나아간다. 크루즈는 7~9월에는 야간에도 운행된다. 배가 송도 해안으로 접어든다. 모래가 유실되기 전엔 해안가에서 100m 정도 바다로 들어가도 물이 허리께 올 정도로 물 맑고 모래 고운 해안이었다는 송도 해변. 아쉬움을 안고 갈매기에게 새우과자를 물려주었다.
Info 포항운하 크루즈 10:00~17:00 대인 1만~1만5000원, 소인 8000원~1만2000원. 곤돌라 왕복 6000원(편도 4000원)
▶푸짐한 해산물과 영롱한 바닷길 있는 동해선 여행
동해안 여행 시 꼭 해봐야 할 것이 바로 해안 둘레길 걷기다. 포항에는 경북의 바다 해안을 걷는 해파랑길 중 4구간 6코스가 있는데, 바다 위 해상데크로 유명한 포항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호미곶을 한 바퀴 돌고 구룡포까지 이어진다. 구룡포는 경북나드리열차를 타고도 갈 수 있다. ‘대동여지도’에서 호랑이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이 부분을 그려내기 위해 김정호가 7번이나 답사했다는 구룡포. 포항의 F4(Food 4)라고 하면 과메기, 포항물회, 문어, 개복치를 들 수 있다. 전국 과메기 생산량의 90%, 대게의 50% 이상이 생산되는 포항 구룡포에는 과메기의 유래와 해양 체험을 할 수 있는 과메기문화관, 수심 200~400m 청정심해에서 포획해 속이 꽉 찬 대게를 맛볼 수 있는 대게타운이 있다.
이참에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도 한번에 몰아볼까? 적산가옥 등과 일본의 전통 차, 유가타 체험을 해볼 수 있는 일본인 가옥거리는 물고기를 쫓아 조선으로 온 일본 어부들이 터전을 잡으면서 생겨났다. 1930년대엔 백화점 생길 정도로 번성했으나, 현재는 80여 채의 적산가옥만 남아 있는 상태로, 최근에는 빈티지한 분위기를 찍으러 오는 출사족,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식당, 카페 등을 찾아온 젊은 연인들이 많다. 머지 않아 영덕에서 동대구까지 동해선이 개통되고, 또 2020년까지는 강원도 삼척까지 바다기찻길이 이어진다고 하니, 강릉에서부터 동해안을 따라 부산까지 철도 여행을 할 수 있겠다. 가끔은 속도와 역행하는 이색 아날로그 레일 여행을 즐겨보는 게 어떨까. 기차에서 내려 싱싱한 바다 내음을 맡으며, 짙푸른 해안길을 걷는 것은 도심 여행지가 줄 수 없는 경험이다. 포항-영덕 간 운임은 2600원으로, KTX 환승 승차권의 경우 30% 할인 제공된다.
Info 동해선 무궁화호 운임 성인 2600원, 노인 1800원, 어린이 1300원. 포항-영덕간 전 좌석은 자유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