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사' 모르면 아재? 절반도 못알아듣는 신조어들

이혁 2018. 5. 1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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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찐', '롬곡옾눞', '존버' 등 신조어 생산·남발 여전
"자연스러운 언어 현상" vs. "비하, 지나친 줄임말 자제해야"
사물이나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언어 현상이다. 그러나 지나친 줄임말·외래어 등으로 같은 세대들끼리도 의사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 삽화=홍선주 기자

“야! 그건 사바사지”

“너 때문에 갑분싸 됐잖아”

일요일 오후 카페에서 책을 보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던 이경일(가명·29)씨는 옆 테이블 10대들의 대화에 어리둥절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 난무한 탓이다.

경일씨는 신조어 뜻을 알기 위해 부랴부랴 포털 검색을 해봤다. ‘사바사’는 '사람 by 사람'의 줄임말로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뜻이다. ‘갑분싸’는 '갑자기 분위기 싸해진다'는 뜻으로 말을 하다가 갑자기 조용해지면 쓴다고 한다.

포털에서 신조어를 검색해보면, ‘요즘 HOT 신조어’, ‘10대들의 기상천외한 신조어 탐구’, ‘신조어 이거 모르면 아재?’ 등 신조어 관련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부동산, 육아, 경제 등 모음집도 다양하고 테스트할 수 있는 모의고사(?)도 있어 눈길을 끈다.

신조어가 갈수록 늘어나고 대화할 때 사용하는 빈도가 늘어나면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과거에 신조어는 특정 세대를 구분 짓는 역할을 했지만 최근에는 같은 세대들도 대화하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신조어는 주로 방송 자막, 댓글, SNS, 커뮤니티 등 다양한 유통 경로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같은 세대도 의사소통 장애.. 커뮤니티·방송자막 등 유통 경로
인천에 살고 있는 김문희(가명·16)양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대화할 때 신조어를 몰라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문희양은 “요즘 유행하는 말이나 행동, 노래를 몰라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데 ‘문찐’(‘문화찐따’를 줄임말로 요즘 유행하는 말이나 단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놀림을 받았다”라며 “SNS도 하고 신조어에 관심 좀 가지라는 말도 들었다”라고 말했다.

문희양의 주변 친구들은 신조어를 적어도 하루에 2~3번 이상은 쓰는 등 사용 빈도가 높았다. 문희양은 신조어에 대해 “의미 전달이 확실한 신조어들도 있지만 듣자마자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있다"라며 “신조어보다는 유행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한 것 같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20대의 상황도 10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학생 이수진(가명·24)씨는 친구들과 대화할 때나 포털 댓글에 자음 표기만 된 줄임말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뜻을 알려고 매번 묻기도 귀찮고 이해하는 척 고개를 그냥 끄덕일 때도 가끔 있다.

수진씨는 “신조어를 시도 때도 없이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한다”라며 “‘롬곡옾눞’(‘폭풍눈물’을 180도 뒤집어 놓은 단어로 슬픈 상황을 표현하는 말) 같은 단어는 말장난에 불과하고 실용성이 떨어져 정도가 지나치다”라고 말했다.

대학원생 허옥희(가명·26)씨도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옥희씨는 “최근에 만들어진 신조어들은 대부분 모른다”라며 “연령대에 따라 혹은 신조어 때문에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거나 소외감, 이질감을 느끼고, 표준어 이해에 혼란을 주는 수준이라면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상호 간에 알아들을 수 있는 신조어는 문화를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나쁘게만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최근에 신문기사를 읽다가 단어를 몰라 검색한 장훈(가명·35)씨는 “‘버카충’(버스 카드 충전), ‘아아’ (아이스 아메리카노) 정도 단어를 축약해서 사용한 경험은 있었지만 ‘좋페’ (페북 게시글 좋아요를 누르면 메시지를 보내겠다), ‘존버’ (존나 버티기), ‘커엽다’ (귀엽다와 마찬가지로 예쁘고 사랑스럽다) 등 모르는 단어들이 많아 당황했다”며 “결국 어쩔 수 없는 아저씨인 것 같아 우울하다”고 전했다.

■신조어는 언어가 가진 자연스러운 기능.. 남발은 자제해야
영남대 사회학과 백승대 교수는 “신조어는 특정한 문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지며 이는 문화의 다양성을 의미한다”라며 “혁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언어는 소통을 위한 도구인데 신조어를 남발하면 언어의 본래 기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이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신조어가 계속 만들어지는 현상에도 이유는 있다. 국립국어원 언어정보과 이유원 학예연구사는 “이전에는 없었던 사물이나 개념을 표현하기 위하여 새로운 말이 만들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언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느 시대에나 신조어는 많이 생기며, 환경이 달라지면 그에 맞는 단어도 생긴다”고 덧붙였다.

이유원 학예연구사는 “요즘 신조어는 줄임말 형태가 많은데, 이는 인터넷 시대에 맞춰 빨리 쓰고자 하는 욕구를 반영한 것으로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또한 “신조어는 우리말을 풍부하게 만들고 사람들의 욕구와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낼 수 장점이 있다”라고 밝혔다. 반면 “비하하는 말, 지나친 줄임말, 외국어·외래어 등 신조어는 의사소통을 어렵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 전체와 개개인이 바람직한 언어 사용의 필요성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의사소통이 단절되지 않도록 상황에 맞게 신조어를 가려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hyuk7179@fnnews.com 이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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