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50년]⑩"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보고싶다 친구야

민경원 2018. 5. 10.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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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노래 베스트 11]
1983년 5집 타이틀곡 '친구여'
슬로 템포에 벗을 향한 사랑 담아
삶에서 묻어난 인사이트 반짝여
1984년 팍스 뮤지카에서 '친구여'를 부르는 조용필, 일본의 다니무라 신지, 홍콩의 알란 탐. [중앙포토]
우정에 대한 노래는 특별하다. 사랑은 아름다우면 아름다운 대로, 처절하면 처절한 대로 다양하게 노래하지만 우정은 좀처럼 소리 높여 불려지지 않는다. 기쁠 때나 슬플 때다 나를 안아주고 토닥여주던 친구들을 생각하면 괜시리 미안해진다. 세월이 흐르고 자주 얼굴을 맞대지 못한다 해도 그 사람의 소중함이 줄어드는 것은 아닌데 그만큼 챙기지 못했다는 마음에서다.

조용필의 ‘친구여’가 복합적인 감정을 선사하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 노래를 들으며 먼저 떠나 보낸 친구를 생각하고, 누군가는 오랫동안 못 본 친구를 생각하고, 또 누군가는 젊은 날의 우리 모습을 생각하기에 저마다 다른 상념에 빠지게 된다. 홍콩의 알란 탐이, 일본의 다니무라 신지가 각자 자신의 언어로 불러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가 아닐까.

12일 서울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시작되는 50주년 콘서트 투어 ‘땡스 투 유(Thanks To You)’를 앞두고 지난 2008년 중앙일보에 연재된 ‘조용필 40년 울고 웃던 40년’ 시리즈를 디지털로 재구성했다. 당시 가수ㆍ평론가ㆍ소설가ㆍ시인ㆍ방송인 10명이 참여해 ‘조용필 노래 베스트’를 선정했다. 2008년 3월 4일 SM C&C의 윤성아 ECD(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당시 TBWA코리아 국장)가 ‘친구여’에 대해 쓴 기고문이다.


슬픔ㆍ기쁨ㆍ외로움 함께한 모습은 어딜 갔나
1984년 프랑스 파리로 함께 여행을 떠난 코미디언 이주일과 조용필. [중앙포토]
“세상은 4차원으로 변해가는데, 광고는 점점 아날로그로 돌아가다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아요?”
카피라이터가 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디지털과 교조와 현학에 질린 대중이 “놀라는 건 이제 지겨워. 내 마음을 울려봐”라고 원하기 시작해서일까. 우리에게 던져진 어려운 과제도 아날로그다.

“아이디어를 만들지 말고, 인사이트(소비자의 잠재된 욕구를 끌어내는 것을 말하는 광고용어)를 주워보자. 사람 속에서, 삶 속에서 발견해 내는 수밖에 없어.” 해답이 아닌 방법론만 찾은 채 그날의 회의가 끝났다. 자정이었다.

누군가의 노트북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시작이라는 신호도 없고 마지막이란 표시도 없이 나는 고독한 러너가 되어….” 낯선 노래다. 내 심정을 안다는 듯 처연하고 비장했다. 조용필 데뷔 30주년 기념 음반 속 ‘고독한 러너’라는 곡이라 했다. 그날 밤, 난 그가 남긴 불멸의 곡들을 산책했다. 청년이었던 그와 소녀였던 내가 교감하기엔 너무 깊고 묘연했던 그 시절의 의미와 감상을, 중년이 된 그와 장년이 된 내가 비로소 소통하기 시작했다.
“너를 보낼 때부터, 다시 돌아올 걸 알았지…”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라며 그도 나를 반겼다.

2002년 세상을 떠난 이주일과 조용필은 형, 동생하며 막역한 우정을 나눴다. [중앙포토]
그를 모델로 캐스팅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나의 주장은 유례없이 강경했다). 모 보험사 광고였는데, 조용필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역할이었고, 그 대상은 고(故) 이주일씨였다. 둘의 막역했던 사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터라, 거대한 모델들이 줄 거대한 감동을 기획했다. 부를 노래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난 ‘단발머리’ ‘고추잠자리’ ‘못 찾겠다 꾀꼬리’ 등을 좋아했지만, 고인에게 그런 노래를 부를 수는 없는 터라, 컨셉트대로 ‘친구여’로 합의를 했고, 난 그 노래를 다시 꼼꼼히 들었다.

그리운 친구여
옛일 생각이 날 때마다
우리 잃어버린 정 찾아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까
조용히 눈을 감네

이제는 세월이 흘러 함께 나이 들어가는 친구들의 뒷모습. [중앙포토]
친구와 우정이 시간이나 돈보다 중요했던 어린 시절, 함께 꾸었던 꿈은 여전히 화석처럼 가슴에 각인돼 있건만, 지키지 못한 약속과 추억만 남겨 놓은 채 시간은 훌쩍 흘러버린, 해방ㆍ전쟁ㆍ재건 세대의 아련한 상실감.

삶에 한숨 돌리게 된 이제서야,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던 ‘친구라는 이름의 언덕’을 그리워하게 된 그들의 미안함과 애틋함이 정직하게 녹아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 광고안이 실행에 옮겨지지는 못했지만, 프레젠테이션은 호평을 받았다.

1983년 발매된 5집 앨범 재킷. '친구여' 외에도 '나는 너 좋아' 등이 수록돼 있다. [중앙포토]
그렇게 조용필의 음악적 연혁을 답사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건, 그가 추구한 행보가 광고인의 그것과 참 닮아있다는 것이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부터 ‘허공’까지 색깔 다른 트로트, ‘고추잠자리’ ‘못 찾겠다 꾀꼬리’의 세련된 비정형(非定型), ‘킬리만자로의 표범’ 속의 크로스오버, ‘친구여’ ‘꿈’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속의 휴머니즘, ‘창밖의 여자’ ‘그 겨울의 찻집’ ‘슬픈 베아트리체’의 정통 멜로, 그리고 ‘태양의 눈’ ‘도시의 오페라’ 속의 뮤지컬적 접근까지, 늘 새로운 시도로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려 드는 모험가적 성향이 그러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그는 콘텐트 속에 소비자의 인사이트를 간파하여 담아내는 일이 완성도와 흥행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알고 있었다. 그러한 그의 노래 속 공감대와 유려한 언어적 미장센은 그 음악을 소비하는 우리들의 말초를 타고 흘러가 중추 전체를 뒤흔들어 놓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그를 질투하고 있던 마음이 어느덧 경외로 바뀌어 있다. 늘 새로운 소리로 우리의 귀를 놀라게 하는 영원한 엔터테이너면서, 위로와 교감의 메시지로 소녀의 마음을 쓰다듬는 영원한 오빠. 세상에서 가장 애절한 창법으로 구애하는 영원한 남자이면서, 꿈도 절망도 아픔도 역사도 공유해 온 영원한 친구.

문득 궁금해진다. 데뷔 50주년, 혹은 60주년이 될 즈음, 그를 표현하는 어떤 또 다른 수식어가 더해져 있을까.

■ 조용필, 그때 내 마음은…

「 작곡가가 처음 가져온 노래는 미디엄 템포의 곡이었다. 들어보니 도저히 안될 것 같았다. 녹음을 취소하고 내가 다시 작업했다. 곡을 슬로 템포로 바꾸고, 멜로디도 조금 수정했다. ‘친구여’는 이렇게 탄생했다. 작사가에도 특별히 부탁을 했다. 친구에 대한 내용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슬로 템포의 정감 있는, 친구를 노래한 곡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왔다. 무엇보다 친구 간의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다. 가사는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친구에 대한 보편적이고 애틋한 정서를 담아달라고 주문했다.

노래는 일본ㆍ중국에서도 크게 히트했다. 일본에서는 내가 직접 불렀고, 중국에서는 중국 가수들이 불렀다. 그래서 ‘친구여’는 한국만의 가요가 아닌, 아시아의 노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친구라는 소재가 갖는 보편성 때문에 국경을 넘어 사랑 받은 것 같다. 1984년 한ㆍ중ㆍ일 대표 가수의 무대인 ‘팍스 뮤지카’에서 일본의 다니무라 신지, 홍콩의 알란 탐과 이 노래를 함께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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