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이 우예 조르크릉 피었노!
[오마이뉴스 김찬곤 기자]
요즘 제비꽃이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시골에서는 양지 바른 곳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도시에서는 보도블록 틈이나 담 아래 틈에서 무더기로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제비꽃(Manchurian Violet)의 원래 이름은 '오랑캐꽃'이다. 'Manchurian'은 만주 사람을 뜻하고, 'Violet'은 제비꽃 또는 보랏빛을 뜻한다. 제비꽃 학명은 라틴어로 'Viola mandshurica'인데, 바로 이 'Viola'에서 보라색 'Violet'이 왔다. 그런데 해방 뒤 한국식물분류학회에서 예쁜 꽃 이름에 '오랑캐꽃'은 안 어울린다면서 논의가 몇 차례 있었고, 그렇게 하여 오랑캐꽃에서 제비꽃으로 바뀌었다.
제비꽃은 우리나라에 60여 종이 있고,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교잡종까지 합치면 100여 종이 넘는다. 그래서 꽃을 잘 아는 꽃박사들도 제비꽃을 공부하다가 중도에 포기하곤 한다. 알면 알수록 복잡한 꽃인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 있는 제비꽃만도 450종이 넘는다. 그런데 이 또한 자꾸 교잡종이 늘고 있어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다.
제비꽃은 앉은뱅이꽃, 오랑캐꽃 말고도 병아리꽃, 가락지꽃, 반지꽃, 여의초, 장수꽃, 이야초라고도 한다.
병아리꽃이라 한 까닭은 한 포기에서 꽃이 수없이 피어나기 때문이고, 또 그 모습이 갓 부화한 병아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처럼 귀엽다는 뜻도 담고 있다. 가락지꽃·반지꽃이라 하는 까닭은 제비꽃을 가지고 반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꽃을 꽃자루째 따서 두 줄기로 갈라 둥그렇게 손가락에 훔치면 가락지가 되고 팔목에 매면 팔찌가 된다. 제비꽃 씨가 여물어갈 즈음이 되면 보릿고개가 오는 철이다. 이때 어린 여자아이들은 소꿉놀이를 할 때 사금파리나 풀잎 그릇에 제비꽃 씨를 올려놓고 쌀밥 보리밥이라 한다. 이렇게 놀면서 배고픈 마음을 달랬던 것이다.
우리나라 어린이시집을 모두 찾아 살펴봤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비꽃을 글감으로 붙잡아 쓴 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노란 민들레는 땅바닥에 있어도 원색이라 눈에 잘 띈다. 하지만 보랏빛 제비꽃은 웬만히 마음 써서 보지 않으면 잘 안 보인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은 키가 껑충 큰 해바라기나 접시꽃이나 달맞이꽃은 곧잘 시로 썼다. 또 땅바닥에 있더라도 눈에 잘 띄는 민들레나 채송화 같은 원색 꽃은 시로 썼다. 어른들보다 바쁜 아이들이다 보니 하늘 한번, 아니 발밑 한번 제대로 볼 여유가 없을 것이다.
이오덕(1925∼2003)이 1977년에 낸 어린이시집 <일하는 아이들>에 제비꽃을 노래한 시 두 편이 있다. 제목은 둘 다 '제비꽃'이다.
제비꽃이 피었다.
방글방글 웃는다.
제비꽃이 언제 피었노?
자랑스럽게 피어 있다.
-안동 대곡분교 3학년 홍성희(1969. 4. 12)
제비꽃이 생글생글 웃는다.
제비꽃이 하늘 보고 웃는다.
제비꽃이 우예 조르크릉 피었노?
참 이뿌다.
-안동 대곡분교 2학년 김춘옥(1969. 5. 2)
역시 아이들이 쓴 시의 특징은 '직관'이다.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어떤 대상을 보더라도 그 대상의 특징을 단숨에 붙잡는다. 아이들은 활짝 핀 제비꽃을 보고 "방글방글" "생글생글" 웃는다고 한다. 제비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는 것을 보면 정말 방글방글 와글와글 생글생글 웃는 모양이다. 성희는 자신에게 묻는다. '제비꽃이 언제 피었노?' 어제도 그제도 활짝 피었을 것인데 오늘 비로소 봤다는 말일 게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 "자랑스럽게 피어 있다" 나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그래서 시에서는 웬만해서는 잘 쓰지 않는 '자랑스럽게'란 말을 이렇게 '훌륭하게' 쓴 시를 여태껏 본 적이 없다. 성희 눈에는 제비꽃이 그야말로 '자랑스럽게' 피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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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광주드림에도 보냅니다. 제비꽃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네이버 ‘이새별 블로그’에 한번 들러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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