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두뇌'들 빼내.. 서서히 대만 질식시키는 중국

홍콩/배준용 특파원 2018. 5. 9.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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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중국' 위해 청년층 껴안기
등록금·창업 보조금 파격 지원 "무기 위협보다 더 무서운 전략"
대만 청년실업률 5년째 10%대
최상위권 성적 내는 학생들, 돈·기회 찾아 '본토'로 빠져나가


타이베이에서 창업을 고민하던 대만 청년 무훙린(34)씨는 2015년 중국 선전시로 이주했다. '대만인도 창업 센터에 무료로 입주하고 창업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선전시 선전 내용을 확인하고 중국행을 결정했다. 무씨는 선전시 창업 프로젝트 경진대회에 참여해 우수 프로젝트로 선정되면서 창업 보조금 총 60만위안(약 1억원)을 무상으로 지원받았다. 그 돈으로 중국 최대 전자상가 지역인 선전 화창베이에 사무실을 얻고 사업 초기 자금도 마련했다. 그는 사람 움직임에 따라 스마트폰을 자동으로 이동시켜주는 '셀카로봇'을 개발해 지난해 순수익 400만위안(약 6억8000만원)을 냈다. 그는 "대만에서 70달러였던 제품 제조 단가를 선전에서는 20달러까지 줄일 수 있었던 점이 성공 요인"이라고 했다.

대만인 가가 리우(33)씨는 올해 초 영국 런던에서 패션 경영학 공부를 마치고 대만과 중국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중국행을 택했다. 상하이 에르메스 매장의 상품 진열 디자이너로 취업했다. 리우씨는 "상하이에는 세계 유명 패션 브랜드의 최신 상품 진열 매장이 즐비하지만 대만은 패션 시장 자체가 너무 작아 성장성이 없다"고 했다.

최근 중국과 대만 관계는 날로 험악해지고 있다. 대만 차이잉원 정권이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이자 중국은 해·공군을 동원해 위협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3월 20일 항공모함인 랴오닝함 전단을 대만해협에 진입시켜 무력시위를 벌인 데 이어, 대만해협 인근에서 실탄 사격 훈련까지 벌였다. 또 전략폭격기 '훙(轟)-6K'와 전투기가 대만 주변을 순찰 비행하는 무력시위도 벌였다.

정작 대만에 무서운 건 중국의 이런 무력시위가 아니다. 돈과 기회를 미끼로 대만의 젊은 인재들을 속속 대륙으로 빼내가는 것이다. 대만 청년들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을 펴면서 대만 청년들이 스스로 중국 품에 안기도록 하는 셈이다.

우선 중국에서 유학하는 대만 학생들이 크게 늘고 있다. 그 뒤 눌러앉아 취업과 창업도 그곳에서 하는 식이다. 중국 교육부에 따르면 2011년 6000여명 정도였던 중국 내 대만 유학생은 2016년 1만2000여명으로 두 배로 늘었다.

대만 당국 입장에서는 젊은이들이 '본토'를 기회의 땅으로 보는 것이 특히 고민거리다. 지난달 대만 유명 구직 사이트인 '104인력은행'이 해외 취업을 희망하는 18~24세 청년 3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69%가 "중국 본토에서 취업하길 원한다"고 답했다. '차이나 드림(China Dream)'을 꿈꾸는 대만 청년이 느는 일차적인 이유는 1~2%대 성장률에 머물러 있는 대만 경제 때문이다. 청년 일자리가 줄면서 청년실업률이 최근 5년간 10%를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대만 청년·기업에 대한 유인책을 갈수록 강화하고 있다. 지난 2월 중국의 대만판공실은 양안경제문화교류 확대 정책을 발표했다. 중국 내 대만 기업도 중국 기업과 똑같은 세금 감면을 받도록 했고, 대만인에게 막혀 있던 회계사 등 전문 직종 134개 자격증 시험을 개방해 대만인도 응시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대만 유학생에 대해 입학 규제는 줄이면서 지원은 늘리고 있다. 2005년 대만 유학생에게 본토 학생보다 더 많은 등록금을 내도록 한 규정을 철폐했고, 2010년에는 대만 고교 졸업 예정자가 중국에서 별도의 시험을 보지 않고 대만 입시 성적만으로 중국 대학에 지원할 수 있게 했다. 최근에는 '대만 유학생들이 중국 내 취·창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전담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중국 교육부의 지시도 떨어졌다.

대만 내에서는 두뇌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만 언론에 따르면 중국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 대부분은 75점 만점인 대학 입시에서 66~70점을 받은 최상위권 학생들이다. 중국 상하이에서 일하는 대만인 리우지페이(26)씨는 "친구들끼리 '이러다 중국이 대만을 통째로 사버리는 게 아니냐'는 농담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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