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나에겐 자식인데" .. 이웃 반려견 개소주 만든 50대 집유

홍지유 2018. 5. 9.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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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밖 나온 개 잡아 탕제원 넘겨
견주에겐 "개가 도망쳤다" 거짓말
유실물로 간주 절도죄 성립 안 돼
동물보호법도 처벌 약해 실형 면해

“우리 가족에겐 자식이 납치돼 살해된 일이에요.”

반려견 ‘오선이’의 이야기를 어렵사리 시작한 최문희(31)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살아있었다면 8살이 되었을 것”이라는 오선이에 대해 최씨는 “나보다도 더한 효자”였다고 말했다. 7년 전 어머니의 우울증이 심해지자 최씨는 래브라도 리트리버 한 마리를 입양하기로 결심했다. 오선이가 집에 온 뒤, 최씨 어머니의 증상은 크게 호전됐다.

그런 오선이가 지난해 9월 2일 실종됐다. 폐쇄회로TV(CCTV)를 통해 오선이를 데려간 50대 남성 김모씨의 모습을 확인한 건 이틀이 지난 후였다. CCTV 속 김씨는 목줄을 당겨 오선이를 자신의 트럭 근처로 데려온 뒤 보조석에 넣었다.

그달 4일 경찰 조사를 받던 김씨는 “부산 북구청 근처에서 개가 도망쳤다”고 진술했다. 최씨 모녀는 그 말을 믿고 전단을 돌리며 주변 상인들에게 CCTV를 보여달라고 부탁했지만 어떤 화면에서도 김씨의 트럭과 오선이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오선이를 죽였다면 시체라도 달라고 제가 그 사람한테 빌었어요”

오선이가 납치된 뒤 견주 최문희씨가 만든 전단. 하지만 오선이는 이미 도살된 후였다. [사진 카라]
이틀 뒤인 6일, 김씨는 경찰에게 범죄 사실을 인정했다. 북구청 주변에서 전단을 돌리고 CCTV를 뒤지던 최씨는 오선이가 이미 북구의 한 탕제원에서 도살돼 개소주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탕제원 주인이 말하길 ‘개가 너무 울어서 빨리 죽였다’고 하더라고요.” 최씨는 사고 8개월 후인 지금도 탕제원 철장에 갇혀 밤새 울었을 오선이를 생각하면 잠을 이루기 힘들다고 했다. 지난 3월 29일 부산지법 서부지원에서 김씨의 재판이 열렸다. 적용된 혐의는 점유이탈물횡령죄와 동물보호법 위반 두 가지였다. 오선이가집밖에 나와 배회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실물’로 간주됐고, 이 때문에 형량이 비교적 높은 절도죄가 아닌 점유이탈물횡령죄가 적용됐다. 최씨는 “오선이는 목줄을 매고 있었고 동물 인식용 칩도 달고 있어 소유자가 있는 반려견임이 명백했다”며 절도죄를 적용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썼지만 이번엔 동물보호법이 발목을 잡았다.

동물보호단체 카라(KARA)의 서국화 변호사는 “절도죄와 동물보호법은 충돌하는 측면이 있다”며 “절도죄를 적용하기 위해선 오선이가 ‘유기된 상태’가 아님을 입증해야 하는데, 동물보호법 8조 3항은 ‘유기된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즉, 절도죄를 적용하기 위해선 유기동물이 아님을 입증해야 하고, 동물보호법을 적용하기 위해서 유기 동물임을 입증해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부산지검 서부지청은 김씨에게 점유이탈물횡령죄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김씨는 8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사회봉사 140시간을 선고받으며 실형을 면했다. 최씨는김씨에 대한 항소심을 준비 중이다.

지금껏 동물보호법 위반만으로 실형이 선고된 예는 없다. 대부분이 집행유예나 수십만원의 벌금형에 그치기 때문에 범죄 억제력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5년 전남 장성에서 개를 차에 매달아 2㎞가량을 주행한 40대 남성에게 징역 6개월 실형이 선고됐으나 이는 김씨가 무면허 상태로 차를 몰아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가 동시에 적용된 결과였다. 서 변호사는 “동물보호법 위반에 대한 대법원 양형기준이 없기 때문에 판사 재량이 결과를 좌지우지한다”고 말했다. 형법 366조에 따르면 타인의 재물을 해한 자에게 적용되는 재물손괴죄의 최고 형량은 3년으로 동물보호법의 최고 형량(2년)보다 높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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