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③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비극, '공범'은 왜 감형됐나

손국희 2018. 5. 8.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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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③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항소심 뜯어보니...공범에서 방조범으로 바뀐 박양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공범 박모양. [연합뉴스]
2017년 3월 29일,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초등학생 A(8)양이 살해됐습니다. 아동을 상대로 한 끔찍한 범죄인데다 범인이 미성년자로 밝혀지자 시민들은 경악했습니다.

이 사건은 애초 ‘범인은 누구인가’가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범행 당일 체포된 주범 김양(18)은 범죄를 시인했고, CCTV 등 명확한 증거도 있었습니다. 그보다는 범인이 어떤 처벌을 받을 지에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하지만 미성년이던 김양이 ‘소년법 특례 규정’을 적용 받아 논란이 일었습니다. 잔혹한 범죄 수법과 상관 없이 김양에게 선고할 수 있는 최대 형량은 징역 20년이었습니다. 실제로 1심(인천지법)과 2심(서울고법)은 모두 징역 20년을 선고합니다.

그런데 지난 4월 30일 열린 항소심에서 논란의 중심에 선 건 김양이 아니라 ‘공범’으로 기소된 박양이었습니다.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된 박양이 항소심에서 징역 13년으로 감형됐기 때문입니다.



‘박양은 김양과 살인을 공모했나’
간단해 보이지만 이 사건의 핵심을 찌르는 질문입니다. 피고인들의 주장은 엇갈립니다. 김양은 “박양의 지시로 살해를 했다”고 주장하지만 박양은 “모든 것이 상황극인 줄 알았다”고 범행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1심과 2심 재판부도 엇갈린 판단을 내렸습니다. 1심은 박양이 공모를 했다고 봤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공모는 없었고 박양이 살인을 ‘방조’했다"고 달리 판단합니다.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은 원한이나 치정에 의한 살인사건과는 궤를 달리합니다. 10대들의 특이한 인터넷 문화, 심신미약, 소년법의 한계 등 다양한 이슈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사건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김양과 박양이 친분을 맺은 그날로 시계 바늘을 되돌려야 합니다. 사건 당시 정황도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넷 ‘상황극’에서 시작된 비극
두 사람은 ‘캐릭터 커뮤니티’라는 곳에서 처음 알게 됐습니다. 일반인들은 생소할 겁니다. 이 커뮤니티에서는 회원들이 특정 캐릭터에 ‘빙의’해 활동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캐릭터를 어벤져스의 ‘아이언맨’으로 설정해 놓고 상황극을 펼치는 식이죠.

김양이 ‘빙의’한 캐릭터는 손가락 한쪽이 없는 잔혹한 캐릭터라고 합니다. 실제 두 사람은 인육이나 살인, 손가락에 대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김양은 신체 일부를 갖길 원하는 박양에게 “살인해 전달하겠다”는 취지의 얘기도 합니다.

사건 하루 전날 밤부터 당일 새벽까지도 두 사람은 네 차례, 총 두 시간에 걸쳐 통화를 했습니다. 살인을 주제로 대화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실제로 김양은 통화 직후 인터넷에 ‘완전 범죄’ ‘뼛가루’ ‘도축’ ‘시신 없는 살인’ 등을 검색했습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사건 당일, 김양은 스스로 밝혔듯 ‘사냥’을 위해 인천 연수구의 집 밖으로 나섭니다.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어머니의 옷과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로 말이죠. ‘셀카’를 찍어 박양에게 전송한 뒤 55분 간 통화도 했습니다. 김양이 “초등학교 운동장이 보인다”고 하자 박양은 “저 중에 한명이 죽게 되겠네. 불쌍해라 까약”이라고 답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양은 박양이 살인 계획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박양은 상황극인 줄 알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후 12시 44분, 초등학교를 배회하던 김양에게 수업을 마친 A(8)양이 다가옵니다. A양은 “엄마에게 전화해야 하는데 휴대폰을 빌려줄 수 있나요”라고 부탁했고 김양은 “우리집에서 전화하게 해주겠다”며 A양을 자신의 집으로 유인했습니다.

미성년자 약취, 유인 후 살인 등 혐의를 받고 있는 김모양이 2017년 3월 피해자 A(8)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 모습 [사진 인천연수경찰서]
여기서부터 비극이 시작됩니다. 김양은 거실에서 고양이와 놀고 있던 A양을 전깃줄로 목 졸라 살해한 뒤, 화장실에서 사체마저 훼손하는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이같은 범행 전후로 김양은 박양과 수시로 문자, 통화를 하면서 상황을 공유했습니다. 범행 전후로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아래와 같습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김양은 사체를 훼손한 뒤 박양에게 전화를 걸어 “눈앞에 사람이 죽었어. 피가 너무 많아”라고 울먹였고 박양은 “침착해. 제이(김양의 캐릭터로 잔혹 이미지)를 불러와”라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사체를 아파트 옥상 물탱크, 쓰레기 수거함 등에 유기한 김양은 그날 오후 홍대입구역에서 박양과 만났습니다. 그리고 손가락 등 신체 일부를 봉투에 넣어 박양에게 전했습니다. 이후 박양은 호프집 화장실에서 내용물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김양은 당일 경찰에 체포됐고, 며칠 뒤 박양도 공범으로 붙잡힙니다.


‘상황극이냐 살인 지시냐’ 진실게임
똑같은 사실을 놓고도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1심 재판부는 “김양의 범행 동기와 목적은 손가락 등을 구해 박양에게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누군가에게 신체 일부를 전달할 목적이 있었다면 김양이 급박한 상황에서 굳이 사체를 훼손하고 보관한 이유가 설명된다”고 했습니다. 즉 김양의 행동이 살인 자체를 위한 게 아니라 신체 일부를 원하는 박양에 의해 이뤄졌다는 취지입니다.

1심 재판부는 또 박양의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신빙성이 의심된다는 데 주목합니다. “범행 당시의 통화, 사체를 전달 받은 뒤의 대화 등 사건의 핵심을 구성하는 사실 관계에 일관성이 없거나 불분명하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1심 재판부는 박양이 김양과의 대질 조사를 거부한 것도 살인 공모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공모 및 이해 관계가 있는 김양의 면전에서 허위로 진술하는 데 심리적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합니다.

결과적으로 1심 재판부의 판단은 이같은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일련의 정황과 진술 경위 등에 비춰보면 박양과 김양 사이의 범행 공모사실과 박양의 범행에 대한 ‘본질적 기여’를 인정할 수 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재판부는 먼저 ‘살인 공모’의 법적 개념부터 짚고 갑니다. “공모는 현실에서 범죄를 하기 위한 것으로 범행 일시, 장소, 수법 등 범행이 실제 실행될 만큼의 ‘구체성’을 가질 것을 요한다”는 겁니다. 두 사람이 평소 살인 등을 주제로 가상의 대화를 나눈 것을 감안하면 “검사가 제출한 메시지 등 증거만으론 박양의 구체적 공모, 범행 지시를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습니다.

또 주범 김양이 박양에게 복종하고 지시를 받는 관계가 아니었다고 판단합니다. 실제 김양은 당시 미성년자 임에도 박양에게 자신이 ‘50평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술을 잘마시는 30살’이라고 속였습니다. 이로 인해 캐릭터 커뮤니티에서는 연장자 대접을 받았습니다. 재판부는 “박양이 김양에게 일방적 살인 지시를 내렸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가 박양에게 온전히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닙니다. 재판부는 범행 당일 두 사람의 대화가 종전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실제 김양은 당일 구체적인 주변 상황을 묘사하고, 통화 도중 울음을 터뜨리는 등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재판부는 “박양이 당일 허구적 상황을 넘어 실제 살인이 이뤄진다는 것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면서 범행 결의를 강화하거나 유지하도록 정신적으로 도왔다”고 했습니다.

박양이 확신은 아니더라도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 정도는 인식한 상태에서 김양과 대화나 문자 등을 했다는 겁니다.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주범 김모양과 공범 박모양이 2018년 3월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살인, 살인방조 등 항소심 4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결국 재판부가 꺼내든 카드는 ‘살인 공모’가 아닌 ‘살인 방조’입니다. 형법상 방조 행위는 범행에 직접 가담하거나 지시하지 않더라도 범행 사실을 알면서 상대방의 실행을 용이하게 하는 범죄를 말합니다.

박양이 진지하게 살인을 계획하고 지시하지는 않았지만, 당일 범행을 부추기는 듯한 행동이 살인 방조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주범 김양에 대해선 비교적 엄격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특히 아스퍼거 증후군을 내세워 ‘심심미약 감형’을 요청한 김양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었는지도 불확실하고, 증후군이 있었더라도 이것이 (생명의 존엄성을 부인하는) 범죄를 저지른 원인이라는 개연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항소심의 이번 판단으로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경 가능성은 차단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A양은 억울하게 떠났고 범인들은 죄값을 치러야 합니다. 만약 항소심이 이대로 확정되면 김양은 37살, 박양은 32살에 출소하게 됩니다.
김양은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하지만 줄곧 심신미약과 박양의 지시임을 주장한 것으로 비춰 진솔하게 참회했는지는 의문이 남습니다. 박양은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무기징역을 구형하는 검사에게 “개XX”라고 욕설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재판부의 법리적 판단과 별개로 두 사람이 국민적 공분을 산 이유였습니다.

죄값보다 더 가혹한 게 고통입니다. A양의 유족들은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과 함께 평생 씻을 수 없는 그리움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피의자에 처벌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 [연합뉴스]
비극적 사건이 우리 사회에 남긴 숙제도 적지 않습니다.
미성년자가 저지른 잔혹 범죄를 어떻게 처벌할지, 심신 미약에 의한 잔혹 범죄는 감형을 할지, 속출하는 아동 대상 범죄를 어떻게 막을지 등에 대한 대책을 관계기관은 하루 빨리 내놔야 할 겁니다. 8세 여아가 백주 대낮에 민가로 유인돼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엽기 범죄가 또 다시 대도시 어딘가에서 발생하는 걸 미연에 막지 못한다면 그곳이이야말로 '범죄도시''무방비지대' 아닐까요.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판다’는 ‘판결 다시보기’의 줄임말입니다. 중앙일보 법조팀에서 이슈가 된 판결을 깊이 있게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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