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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마저 종영…TV, 사극이 사라졌다

강선애 기자 작성 2018.05.07 11:42 조회 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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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 사극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사극이 사라졌다.

지난 6일 TV조선 주말극 '대군-사랑을 그리다'(이하 '대군')가 20회를 끝으로 종영했다. '대군'은 지상파, 종합편성, 케이블 등 국내 모든 채널 중 유일하게 온에어 중인 사극이었다. '대군'의 종영으로 TV에서 사극이 자취를 감췄다.

재방송이 아닌 이상, 당분간 TV를 통해 새 사극을 접하기 힘들다. 올 하반기에 방영 예정인 사극은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퓨전사극 장르의 tvN '미스터 선샤인'과 '백일의 낭군님', 내년에나 볼 수 있는 '아스달 연대기' 정도다. 사극제작의 오랜 노하우와 인프라를 갖춘 지상파에선 현재 제작 예정 중인 사극 라인업이 없다.

방송사들이 사극에서 눈길을 돌린 가장 큰 이유는 최근에 성공한 사극 작품이 없다는 게 크다. 한 관계자는 “근래에 선보인 사극들마다 시청자 사랑을 받는데 실패했다. 제작에 큰 돈이 들어가는데 그만큼의 성과가 따라오지 않으니, 방송사 입장에선 사극제작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사극은 한 때 '시청률 보증수표'라 불릴 정도로, 만들기만 하면 시청률이 어느 정도 보장됐던 장르다. 사극이라면 믿고 보는 시청층이 두터웠고, 이를 기반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사극을 따라 즐겼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났다.

지상파 3사가 가장 최근 선보였던 사극 성적표를 보면 처참하다. 지난해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SBS '엽기적인 그녀', KBS '7일의 왕비', MBC '왕은 사랑한다'는 나란히 한 자릿수의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고, 그 이후 지상파에선 사극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이 작품들이 방송사의 사극편성 기피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이미 그 전부터 시청자의 사극에 대한 관심저하와 수익성에 대한 회의적인 분위기가 감지됐고, 그런 고민들 속에서 사극 편성이 하염없이 뒤로 밀리고 있는 것이다.

대군 사극

사극 제작은 현대극보다 많은 돈과 시간, 인력이 드는 작업이다. 기본적으로 세트나 의상제작, 미술에 큰 돈과 오랜 시간이 쓰이고, 전투신이라도 한 번 찍을라치면 더 많은 인력과 제작비가 필요하다. 촬영자체도 현대극보다 더 힘들다. 여름엔 더 덥고 겨울엔 더 추운 곳이 사극 촬영장이다. 지방 촬영이 대다수고,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야외 촬영도 많다.

그렇다고 수익이 잘 나는 분야도 아니다. 제작에 들어가는 돈은 많은데 거둬들일 수 있는 돈이 한정돼 있다. 드라마는 기업협찬이나 광고에서 제작비가 상당부분 충당된다. 하지만 배경이 현대가 아닌 사극은 PPL이 붙기 어려운 구조다. 광고시장에서 인지도와 활용도가 높아야하는 톱배우들이 사극 출연을 꺼리는 이유도 여기서 기인한다. 한류스타의 출연이 드문 사극은 해외 수출용으로도 가치가 떨어진다.

방송가에선 사극 촬영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힘들게 찍어도 큰 수익이 나지 않는 작업이란 걸 다들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높은 시청률이라는 보람찬 결과가 따라왔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사극 시청률이 초토화된 지금, 이젠 그마저도 힘들어졌다.

사극의 거듭된 흥행실패가 편성 기피로 이어졌다면, 왜 실패했는지, 어떤 이유에서 사극이 시청자의 외면을 받게 됐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사극은 시청자가 빠질만한 요소가 많은 장르였다. 선과 악이 명확해 인물간의 갈등과 해소, 주인공의 성장과 통쾌한 복수를 그리기에 수월했다. 비록 역사가 스포일러 노릇을 하더라도 서사에는 무게감이 있었고, 그 사이사이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는 극의 감칠맛을 더했다. 등장인물이 많아 저마다의 매력을 보는 재미도 존재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사극은 똑같은 인물, 비슷하게 풀어내는 서사가 식상함을 안겼다. 세종, 광해, 정조 등 사극에 출연하는 단골인물들이 생겨났다. 아무리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다고 해도 기시감을 피할 순 없었다. 또 시청자의 수준도 높아졌기에, 역사를 지나치게 왜곡하면 반감도 터져 나왔다. 새로운 시도의 움직임으로 판타지나 현대적 소재들을 녹여낸 적도 있지만, 몰입도를 떨어뜨리고 이질감을 선사할 뿐이었다.

사극에서 흥미를 잃은 시청자의 마음은 장르물이 사로잡았다. 추리, 범죄, 스릴러, 의학 등에 대한 인기가 높아졌고, 시청자가 이런 장르물에 열광하다보니 자연히 방송사도 관련 작품들을 편성에 우선으로 배치하게 됐다. 과거엔 장르물을 마니아가, 사극을 온가족이 함께 봤다면, 지금은 그 반대가 됐다.

당장 볼 사극이 없다는 건, 사극을 좋아하는 시청자에게 분명 안타까운 일이다. 사극이든 아니든, 결국 시청자는 '재미'가 있으면 본다. 짜임새 있는 서사와 개연성 있는 전개, 식상하지 않고 신선한 소재를 녹여낸다면 시청자는 언제든지 사극을 볼 의향을 갖고 있다. 방송사는 사극이 인기가 없다고 해서 제작을 기피하기보단, 다시 시청자의 사랑을 받을 방법을 궁리하고 과감히 투자할 줄 알아야 한다.

[사진제공=TV조선, SBS, MBC, KBS]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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