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폐증 앓아온 남아공 금광노동자들, 50년만에 손해배상 받는다
[경향신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광산 회사들이 중증 폐 질환을 얻은 전직 광부들에게 총 4000억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남아공 금광 산업을 견인했으면서도 폐 질환으로 고통받아 온 광부들이 남아공 최대 규모의 집단 소송을 제기한 데 따른 결정이다. 광산회사들은 전직 광부들을 상대로 긴 법정 투쟁에 나서는 대신 “늦었지만 의미 있는 보상”을 하기로 했고, 전 세계 외신들로부터 ‘역사적 합의’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끌어냈다. 남아공 광산회사들과 광부들이 집단적 손해배상에 합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앵글로 아메리칸’을 비롯한 6개 광산 회사는 지난 3일(현지시간) “중증 폐질환을 얻은 광부들의 피해보상을 위해 50억 남아공란드(약 4276억원)규모의 기금을 조성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고 eNCA 등 현지매체가 전했다. 피해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사람 수에 제한은 없다. 로이터통신은 잠재적 청구인이 수만에서 수십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남아공 경제는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한 금광 산업에 의존해 성장했다. 그러나 그 성장은 흑인 광산 노동자의 착취에 기반해 이루어졌다. 아파르트헤이트(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 시기 남아공 흑인은 물론, 레소토, 말라위 등 인접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도 광부들이 유입됐다.
광부들은 수㎞ 깊이의 광산에서 금을 채굴하면서도 적절한 안전 관리를 받지 못했다. 안전 마스크도 지급받지 못한 채 돌에서 나온 실리카(이산화규소) 가루를 다량 흡입했고, 규폐증 등 각종 폐질환을 얻었다. 규폐증은 호흡곤란과 가슴통증 등을 동반하며, 완치가 불가능한 질병으로 알려져있다.
손해배상에 청신호가 나타난 것은 2016년 5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고등법원이 광부들의 집단 소송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면서다. 그전까지 일부 광부들이 개별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적은 있었지만 집단적 손해 배상을 요구한 경우는 없었다. 기업들은 판결 직후 항소 의사를 밝혔지만, 몇달 만에 보상 절차에 나서기로 계획을 바꿨다. 광부들의 법률 대리를 맡은 법적자원센터(LRC)는 이번 합의가 “오랜 협상과 타협의 결과물”이라면서도 “이로운 합의가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다만 이날 합의는 요하네스버그 고등법원의 최종 승인을 거쳐 확정될 예정이라고 BBC는 전했다.
그러나 남아공 광산의 안전 문제가 본질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합의 사실이 발표된 지난 3일에도 가우텡주의 드리엔타인 광산에서 매몰 사고가 일어나 13명이 갇히고 7명이 숨졌다.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남아공 광산의 사망률은 용인될 수 없는 수준”이라며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남아공 금광에서 사망한 사람이 88명이었으며, 2016년 73명에서 늘어난 수치라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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