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TALK] 불변의 단위에 숨은 과학..내년 질량·온도 정의 바뀐다

김민수 기자 2018. 5. 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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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암행어사는 마패와 함께 ‘유척(쇠로 만든 자)’을 지니고 다녔다. 조선시대 지방관청 도량형이 얼마나 정확한지 판별하는 도구로, 지방 수령의 탈세를 막아주는 사회적 기준이었다. 18세기 프랑스에서도 프랑스혁명 이후 왕권 집권 체제가 물러난 뒤 새롭게 도량형 기준을 제정했다. 구체제에 있었던 수백가지 도량형으로 인한 거래, 제도 혼란을 막고 새로운 사회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2014년 열린 제25차 국제도량형총회(CGPM). /표준과학연구원 제공

이처럼 측정단위를 통일하고 기준을 표준화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회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같은 무게와 동일한 온도와 습도, 전력 사용량을 표준화하지 않고 사회질서를 갖추는 건 불가능하다. 박연규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물리표준본부장은 “자동차 하나만 놓고 봐도 속도계나 엔진계통, 연료계를 비롯해 배기가스 물질량 등 통일해야 하는 측정표준이 수십가지에 이른다”고 말했다.

길이, 질량, 시간, 전류 등 가장 기본적인 국제단위계 중 질량 단위인 ‘킬로그램(kg)’을 비롯해 전류(암페어)와 온도(켈빈), 물질량(몰)의 단위 정의가 내년 5월 바뀐다 올해 11월 13ㅎㅍ일 프랑스에서 열리는 제26차 국제도량형총회(CGPM)에서 재정의되고 내년 5월 20일 세계측정의 날부터 공식 사용될 예정이다. 7개의 주요 국제단위계(SI, international system of units) 중 4개 단위가 한꺼번에 바뀌는 것은 1960년 국제단위계가 제정된 이후 처음이다.

◇ ‘킬로그램원기’도 변한다...완벽하지 않은 국제단위계

SI는 현존 최고의 과학기술로 규정한 단위 체계다. 현재 SI를 구성하는 7가지 기본 단위는 미터(m, 길이), 킬로그램(kg, 질량), 초(s, 시간), 암페어(A, 전류), 켈빈(K, 온도), 칸델라(cd, 광도), 몰(mol, 물질의 양)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통용되는 단위 기준의 정의는 완벽하지 않다. 일례로 질량의 단위인 kg은 1889년 정의된 개념이 지금까지 활용됐다. 1㎏은 ‘국제 킬로그램 원기(原器)’의 질량으로 정해졌다. 원기는 백금 90%와 이리듐 10%로 구성된다. 높이와 지름이 각각 39㎜인 원기둥 모양의 물체다. 이 원기는 유리관에 담겨 130년 동안 프랑스 국제도량형국(BIPM) 지하 금고에 보관중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보유하고 있는 ‘킬로그램원기’. /표준과학연구원 제공

백금이 자연 상태에서 다른 물질과의 반응성이 낮아도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가 생긴다. 원기가 100년 동안 약 100마이크로그램(㎍, 100만분의 1그램) 가량 가벼워졌다.

질량의 정의가 바뀌면 다른 단위들도 영향을 받는다. 대표적인 게 물질량의 단위인 ‘몰’이다. 현재 몰의 정의는 탄소-12의 ‘질량’을 바탕으로 정의되기 때문에 kg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kg이 바뀌면 몰 또한 바뀔 수 있다.

정의가 특정 물질에 의존하는 경우도 문제가 발생했다. 절대온도를 나타내는 ‘켈빈(K)’이다. 현재 켈빈을 정의하려면 ‘물’이 있어야 한다. 물이 얼음(고체)‧물(액체)‧수증기(기체) 상태로 동시에 존재하는 고유한 온도를 ‘물의 삼중점’이라 한다. 물의 삼중점은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는 상태 중 가장 정확하고 재현성이 좋기 때문에 지금까지 온도를 정의하는 기준으로 사용돼왔다. 하지만 물이라는 물질 자체가 가진 불안정성까지 제어하는 건 불가능하다. 물에 포함된 원자들의 동위원소 비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절대온도도 미세하게 흔들릴 수 있다.

◇ 불변의 단위계 만드려는 첨단과학의 노력...변하지 않는 상수로 정의

국제 사회는 변하지 않는 값(상수)을 기준으로 단위계를 재정의하자는 의견을 모았다. 대표적인 게 길이의 단위 ‘미터(m)’의 변화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보유하고 있는 ‘물의 삼중점 셀’. 얼음, 물, 수증기가 공존하는 상태로 켈빈을 정의하는 기준이다. /표준과학연구원 제공.

미터는 원래 북극에서 적도까지의 지구 자오선 길이의 1000만분의 1을 1미터로 정했다. 그러나 1960년 크립톤86 원자에서 발생하는 복사선의 파장으로 재정의했다. 1983년에는 빛이 진공 중에서 1/299792458초 동안에 진행한 경로의 길이로 바꿨다. 이처럼 나머지 국제단위계도 변하지 않는 값을 중심으로 재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은 물리상수 중 하나인 ‘플랑크 상수’를 활용하기로 했다. 플랑크 상수는 빛 에너지와 파장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 상수다. 물질의 양은 ‘아보가드로 상수’를, 전류는 ‘기본 전하’를, 온도는 ‘볼츠만 상수’를 활용해 재정의하게 된다.

박연규 본부장은 “단위 패러다임이 바뀌어도 당장 우리 일상생활에 주는 영향은 크지 않은데, 일상의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과학기술의 한계까지 단위를 연구하는 게 측정과학의 목표이기 때문”이라며 “위성항법시스템(GPS)이라는 첨단 기술이 시간과 길이의 단위가 발전하면서 탄생할 수 있었듯이 단위 재정의가 미래 인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장기적으로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석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분석화학표준센터 연구원은 “단백질을 원료로 하는 바이오의약품은 화학약품(케미컬)과는 다르다”며 “같은 질량의 바이오의약품이더라도 단백질 구성 물질이 어느 정도 들어있는지 다를 수 있는데, 이런 차이가 약효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물질량을 의미하는 몰을 보다 정확하게 재정의하는 건 향후 무척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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