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민의 푸스발 리베로] 'Same Old Arsenal' 벵거는 변한 게 없었다

김현민 2018. 5. 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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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널, 아틀레티코와의 2차전에서 유효 슈팅 1회에 그치며 무기력하게 0-1 패하며 탈락. 벵거, 또 다시 유럽 대항전 우승 실패 & 2시즌 연속 챔피언스 리그 진출 실패

[골닷컴] 김현민 기자 = 이번 시즌을 끝으로 아스널을 떠나는 아르센 벵거 감독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유로파 리그 준결승전에서 탈락하면서 또다시 유럽 대항전 우승 도전에 실패하고 말았다.

영어에는 'Same Old Story'라는 말이 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때 쓰는 표현이다. 이는 아스널과 벵거 감독에게 자주 적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벵거의 지도 하에서 무려 22년을 함께 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벵거는 아스널 감독 직을 수행하는 동안 장기적인 관점에서 놓고 본다면 구단 역사를 통틀어 가장 성공한 감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만 단일 시즌을 놓고 보면 무패 우승 정도를 제외하면 속칭 '대박'을 친 시즌도, 그렇다고 해서 크게 실패한 시즌도 없는 감독이었다. 굴곡이 심하지는 않은 편에 속했다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벵거보다 더 오랜 기간(27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지도했던 알렉스 퍼거슨은 부임 초창기에 5시즌 동안 중위권을 전전하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고,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에서 조기 탈락한 경우도 3차례나 있다.

반면 벵거는 1996년 아스널 지휘봉을 잡은 이래로 2015/16 시즌까지 20년간 줄곧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이하 EPL) 4위 이내에 들었다. 게다가 1998/99 시즌부터 챔피언스 리그에 꼬박꼬박 진출했고, 2000/01 시즌을 기점으로 17시즌 연속 챔피언스 리그 16강 이상 진출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 시기에 레알 마드리드를 제외하면 아스널보다 더 오랜 기간 챔피언스 리그 16강에 연속으로 오른 팀은 없었다.

문제는 22년 동안 아스널을 지도하면서 단 한 번도 유럽 대항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모나코 감독 시절까지 포함하면 총 7차례 유럽 대항전(챔피언스 리그, 유로파 리그, UEFA컵, 컵 위너스 컵) 준결승에 진출했고, 이 중 3차례 결승에 올랐으나 결국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게다가 2003/04 시즌 무패 우승 이후 EPL 우승과도 멀어졌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2010/11 시즌부터 2016/17 시즌까지 7시즌 연속 16강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아스널엔 EPL 4위와 챔피언스 리그 16강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마저도 2016/17 시즌, 아스널은 EPL 5위에 그치며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조차 놓치고 말았다. 이번 시즌 역시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 챔피언스 리그 마지노선인 4위 진입이 산술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에 놓였다.

게다가 최근 영입 방식에 변화가 발생하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벵거는 어린 유망주를 영입해 본인의 전술 스타일에 맞게 키우는 걸 선호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핵심 선수로 성장한 선수가 우승 트로피를 찾아 팀을 떠나는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대표적인 케이스로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로빈 판 페르시가 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물론 미묘하게 전술에 변화가 있긴 했지만 벵거는 기본적으로 패스 축구를 선호한다. 다만 피지컬적인 면에서 약한 편에 속하기에 첼시의 전설적인 공격수 디디에 드로그바를 비롯해 파워풀한 공격수에게 매번 실점하는 패턴을 보이고, 제공권을 살린 상대 공격에 취약하며, 밀집 수비를 잘 헤쳐나가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심지어 지고 있는 경기에서조차 교체 시점도 항상 70분경으로 다소 늦은 편에 속했다. 이로 인해 자주 같은 방식으로 패하는 경향성이 있다.

그러하기에 아스널이 똑같은 방식으로 롱볼 축구를 구사하는 과거 샘 앨러다이스의 볼턴 원더러스나 토니 풀리스의 스토크 시티에게 패할 때면 아스널 서포터들조차 자조적으로 'Same Old Arsenal' 혹은 'Same Old Wenger'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 실제 '아스널 팬 TV' 채널을 보면 아스널이 패한 경기에 'Same Old Arsenal'이라는 문구가 붙어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축구 팬들은 이를 '과학'이라고 칭했다.

이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유로파 리그 준결승 2차전도 마찬가지였다. 아스널은 첼시 선수 시절 '천적'으로 악명을 떨쳤던 디에고 코스타에게 경기 내내 고전을 면치 못하다 결국 결승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실점 장면에서 아스널 오른쪽 측면 수비수 엑토르 벨레린이 몸싸움을 펼쳤으나 코스타와의 몸싸움에서 밀리는 문제를 노출했다.

게다가 '짠물 수비'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아틀레티코 상대로 이렇다할 득점 기회조차 만들어내지 못했다. 점유율에선 55대45로 우위를 점했으나 슈팅 숫자에선 7대15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유효 슈팅은 수비형 미드필더 그라니트 자카의 중거리 슈팅 1회가 전부였다. 밀집 수비에 취약한 문제를 반복한 아스널이었다.

에미레이츠 홈에서 치러진 1차전에서 1-1 무승부에 그쳤기에 승리가 절실했으나 선발 라인업도 언제나와 마찬가지였다. 모험적인 선발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부상으로 로랑 코시엘니가 일찌감치 교체된 걸 제외하면 전술적 이유에서의 첫 교체 카드도 67분경에 이루어졌다(잭 윌셔를 빼고 헨리크 미키타리얀을 출전시켰다). 무조건적인 골이 필요했던 아스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다소 늦은 교체 투입이었다.

아스널 선수들은 벵거 감독이 지난 4월 20일, 이번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나겠다고 발표하자 마지막 가는 길에 유로파 리그 우승을 선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많은 축구 팬들 역시 벵거 감독이 아스널과 함께 첫 유럽 대항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하길 바라마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차가웠다. 마지막 순간까지 벵거는 변한 게 없었다. 이렇게 아스널에서 벵거가 기록한 유럽 대항전 성적은 110승 48무 58패로 막을 내렸다.


사진캡처: OptaJean

물론 벵거 감독의 업적은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 그는 과거 피지컬적인 축구만이 성행하던 EPL 무대에 아름다운 패스 축구를 이식했고,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과 식이요법을 도입했다. 유소년 스카우팅 및 육성의 중요성도 잉글랜드에 알린 이가 벵거였다. 아스널의 성공에 고무받아 많은 EPL 팀들이 해외 유망주 조기 영입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벵거의 합리적인 지출 관리 덕에 아스널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신축하는 동안 긴축 재정 속에서도 챔피언스 리그에 지속적으로 참가할 수 있었다. 벵거가 없었다면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설립에도 상당한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즉 아스널의 장기적인 미래를 위해 큰 희생을 치른 인물이 벵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22년이라는 오랜 기간 벵거 체제 속에서 팀이 이어져 오면서 전술적으로 지나치게 경직된 측면이 없었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날이 갈수록 아스널 열성 팬들은 하나 둘 지쳐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아스널 서포터들이 벵거 말년에 그의 업적을 인정하면서도 'Wenger Out' 플래카드를 들어오리며 노래한 이유이다.

사실상 벵거의 시대는 아틀레티코와의 2차전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아쉽게도 동화와도 같은 해피 엔딩은 아니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축구 로맨티스트가 아스널을 떠난다. 이제 벵거도 아스널도 변화의 시대를 맞이할 시점이다.


# 벵거의 유럽 대항전 성적(준결승 이상 기준)

1989/90 컵 위너스 컵 준결승(모나코)
1991/92 컵 위너스 컵 준우승(모나코)
1993/94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모나코)
1999/00 UEFA 컵 준우승(아스널)
2005/06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아스널)
2008/09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아스널)
2017/18 유로파 리그 준결승(아스널)


사진캡처: Squawka Foot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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