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왕따도 모자라 성추행 누명까지..'학폭' 눈감은 학교

나현준 2018. 5. 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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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말 따르다 집단 따돌림
가해학생측, 학폭 조사하자 오히려 성추행범으로 몰아
교육청, 교사등 5명 주의처분..학교측 "최선 다했지만 유감"
"저를 또 때리고 놀릴까 봐 그 아이를 항상 피해 다녔어요. 밥 먹을 때도 혼자였고요. 그런데 제가 그 아이를 성추행했다고요?" 경기도 구리시에 사는 김호성 군(가명·16)은 아직도 2016년만 생각하면 몸이 떨린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그는 학기 초 담임교사의 지시에 따라 구리시 A중학교 학교폭력 또래지킴이가 됐다. 초등학교 때까지 원만했던 교우 관계를 기반으로 학급 분위기를 좋게 만들자는 책임감이 넘치는 시기였다.

하지만 부푼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담임교사는 전동칠판지우개로 장난치는 학생들 이름을 적어두라고 했고, 김군은 이를 그대로 수행했다. 그러자 같은 반 학우들이 '왜 이름을 적냐'며 김군을 고자질쟁이라고 놀리기 시작했다. 집단 따돌림의 서막이었다.

그 후 김군에게 A중학교는 '악몽' 그 자체였다. 혈기왕성한 남자애들만 있는 남학교에서는 한번 얕보이는 순간 '호구' 취급받기 십상이다. 김군 역시 같은 반 학생들로부터 발을 걷어차이기 일쑤였고, 급식도 혼자 먹어야 했다. 집단 따돌림을 피하려 홀로 도서관에 있다가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치면 교실로 뛰어가는 생활이 이어졌다. 말 그대로 그는 '투명인간'이었다. 결국 김군은 그해 9월부터 정신과 상담을 받기 위해 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11월엔 인근 다른 중학교로 전학을 가야만 했다.

전학을 가도 '집단 따돌림'의 굴레는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A중학교 학생들이 '쟤는 우리 학교에서 유명한 찐따(왕따의 비속어)였다'며 소문을 퍼트린 것. 김군 부모는 "아직도 가족이 외식을 할 때 A중학교 쪽 골목은 피하고 있다"며 "우리 아이에게 A중학교 1학년 때의 기억은 트라우마가 됐다"고 하소연했다.

집단 따돌림도 문제지만, 김군과 부모가 더 분통을 터트린 것은 학교의 미온적인 태도였다. 담임교사는 김군의 집단 따돌림 관련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책임을 회피했다고 한다. "호성이가 자신의 역할을 넘어 학생지도까지 수행하려 월권했다"며 김군에게 책임을 돌렸다는 것이 김군 부모의 주장이다. 해결 과정도 석연치 않다.

김군 부모에 따르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 이전에 진행되는 '회복적 갈등해소 모임' 일정을 담임교사는 가해자 측에게만 통보했다. 피해 학생과 부모는 논의 과정에서 배제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김군이 도리어 '성추행범'으로 몰렸다는 것이다. 회복적 갈등해소 모임을 앞두고 가해자로 지목된 B군 아버지가 김군이 자신의 아들 성기를 만져 성적 수치감을 느끼게 했다며 A중학교에 신고했다. 학교 측은 이 사안이 성추행인지 아닌지를 먼저 판별하기보다는 "성추행 신고가 들어왔다며 담임 선에서 종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피해자 부모 측에게 통보했다.

김군 부모는 "아들에게 성추행 책임을 물어 학교 측이 쌍방과실로 몰고 가려고 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매일경제가 사실 여부를 확인한 결과 학교 측은 해당 사건을 학교전담 경찰관에게 신고했다는 입장인 반면, 관할서인 구리경찰서는 "해당 건이 정식으로 경찰서에 신고되지 않았다. 성희롱 피해자로 지목된 B군 측도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혀 학교 내에서 자체적으로 종결된 사안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성추행을 주장했던 가해자 측의 부모는 김군 부모에게 "성추행 피해 신고는 허위였다"며 서면으로 사과했다. 아울러 학교폭력에 대해서도 주요 가해자로 지목된 B군을 포함한 3명은 모두 김군 측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여전히 유야무야 넘기려는 태도를 보였고, 김군 부모는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경기도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해당 교육청은 학교가 피해 학생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해 A중학교 교장과 교감, 학생부장, 담임교사, 담당 장학사에게 '주의 처분'을 내렸다. 이후 김군 부모는 이 5명의 학교 관계자에 대해 형사 고소(직무유기 혐의)를 하고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지만 형사소송은 '증거부족'을 이유로 불기소처분이 내려졌고, 의정부지방법원 1심 역시 "피고들이 관할 교육청으로부터 학교폭력이나 민원과 관련해 부적절한 업무처리로 주의 조치를 받은 사실은 인정되나,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현재 김군 부모는 민사상 손해배상 2심을 준비 중이다. 김군 부모는 "학교 관계자들의 일관되지 못한 진술, 증거 조작, 말바꾸기 등을 입증하는 추가 증거자료들을 항소심에서 모두 제출했다"며 "호성이의 명예회복을 위한 것이지 돈을 받기 위한 소송은 아니다"고 밝혔다.

반면, A중학교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학교 측 관계자는 "해당 건은 민·형사소송에서 모두 (피해) 학부모의 주장이 기각됐다"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해 유감"이라고 밝혔다.

[구리 =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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