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쇄가 된 '색깔론'.. 한국당, 6·13 앞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권중혁 기자 입력 2018. 5. 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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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지방선거 필승' 슬로건 및 로고송 발표식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남북관계 개선 흐름에 자유한국당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선거나 주요 정치 국면에서 발휘된 ‘색깔론’의 위력이 더는 예전 같지 않다. 오히려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보수층에서마저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렇다고 정부 여당의 공을 인정하기도 어렵다. 한국당이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선거 앞두고 ‘도로 색깔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지방선거 필승' 슬로건을 공개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당은 지난달 25일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를 6·13 지방선거 슬로건으로 확정했다. 문재인정부 집권 1년을 ‘사회주의 체제로의 전환’으로 규정하고 지방선거를 통해 이를 심판하겠다는 취지였다.

다음날에는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일본 방송 아사히TV에 출연해 기존 입장을 이어갔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를 피하기 위한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다”며 “김정은의 위장 평화쇼를 나는 믿지 않는다”고 날을 세웠다.

홍 대표는 남북정상회담 당일인 27일에도 페이스북에 “북의 통일전선 전략인 우리 민족끼리라는 주장에 동조하면서 북핵 폐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못 하고 김정은이 불러준 대로 받아 적은 것이 남북정상회담 발표문”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장제원 수석대변인과 나경원 의원도 각각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판문점 선언’을 힐난했다.

◇국민 정서와 괴리된 ‘위장평화론’

2018 남북정상회담일인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 관련 내용을 텔레비전으로 시청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한국당 지도부의 이 같은 반응은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여론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역풍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실제 남북정상회담 이후 여론조사를 보면 ‘판문점 선언’에 대한 지지도가 90%에 가까울 정도로 높았다. 특히 한국당의 주요 지지층인 보수층의 지지율도 80%에 육박했다.

한길리서치가 지난 28~29일 실시한 조사에서는 판문점 선언에 대한 보수층 지지율이 81.6%였다. MBC와 코리아리서치센터의 29~30일 조사에서도 보수층 78.7%가 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구축이 이념을 초월하는 보편적 이슈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남북 정상회담을 ‘위장평화쇼’라며 비난하는 한국당을 향해서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 등을 염원하는 여론과 동떨어진 발언으로 한반도 평화의 가능성조차 차단하려 하고 색깔론으로 정치공세를 한다는 것이다.

◇일부선 ‘홍준표 패싱’… 당 공식 슬로건 거부까지

당 공천에 반발하고 있는 강길부 자유한국당 의원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홍준표 대표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여론이 악화되면서 당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6·13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역풍 조짐까지 보이자 당 지도부와 선긋기에 나선 것이다.

강길부 한국당 의원은 3일 “당 대표의 품격 없는 말에 공당이 ‘괴벨스 정당’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당 대표가 지방선거에 지원 유세를 올까봐 걱정하는 상황마저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오죽하면 수도권 광역단체장 후보가 홍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려 반성을 촉구했겠냐”며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 달라”고 촉구했다.

앞서 김태호 한국당 경남지사 후보도 지난 1일 남북의 ‘판문점 선언’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주사파들의 숨은 합의라고 주장한 홍 대표에 대해 “너무 나갔다”고 비판하며 “완전한 비핵화 선언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지난달 30일 “홍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며 “특히 남북정상회담 관련해 국민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몰상식한 발언이 당을 더 어렵게 만들어 가고 있다”고 힐난했다.

아예 한국당의 슬로건을 교체해야 한다거나 선거에서 사용하지 않겠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 캠프 관계자는 2일 당의 지방선거 공식 슬로건인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를 쓰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남경필 경기지사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자유한국당 선거 슬로건을 다시 만듭시다!’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자유한국당의 슬로건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이 슬로건은 그 함의를 떠나 국민의 보편적 인식과 거리가 멀다”고 비판했다.

◇김성태 ‘드루킹 단식’은 고육지책?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드루킹 특검 도입을 요구하며 무기한 노숙·단식 투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여론악화에 당 내부 분열까지 발생하자 한국당은 홍 대표의 발언을 진화하고 나섰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3일 “표현 방식이 일부 문제가 있었던 건 인정한다”며 “미·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반드시 북핵 폐기 로드맵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을 전달하다 보니 그런 것”이라고 수습했다.

이런 가운데 김 원내대표는 이날 “더불어민주당원 드루킹 일당의 댓글조작 사건에 대한 특검을 도입하라”며 무기한 노숙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이는 색깔론이 먹히지 않는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평창 동계올림픽과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거대 이슈들 사이에서 한국당이 제기하는 이슈가 묻히는 데다, 선거를 앞두고 섣불리 한반도 평화분위기에 대한 정부여당의 공을 인정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당을 떠받치는 콘크리트 지지층도 무시하기 어렵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강한 퍼포먼스를 통해 이슈 메이킹을 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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