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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8000원으로 발뻗고 영화볼 수 있는 극장 있다고?

입력 : 
2018-05-03 17:20:10
수정 : 
2018-05-03 17: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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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마지막 단관극장 동두천 동광극장 가보니
"2층자리는 현실판 와칸다" 관객들 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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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동두천시 중앙동에 위치한 '동광극장' [사진 = 송승섭 인턴기자]
"영화 시작 전에 미리 신발 벗으시고요, 앞 쪽에 다리 올리고 보시면 됩니다" 경기도 동두천시 동두천역에 내려 약 15분을 걸어가면 최근 누리꾼들 사이에서 가장 '핫'하다는 영화관이 나온다. 국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옛날식 단관극장인 동광극장이 그 주인공이다. 단관극장은 스크린이 하나만 있는 영화관을 말한다.

지난 2일 방문한 동광극장 입구엔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과는 달리 화려한 입간판이나 전광판은 없지만, 입구에 붙어있는 영화 포스터들이 이곳이 엄연한 영화관람 시설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티켓 가격도 8000원으로 다른 영화관에 비교해 저렴한 편이었다.

총 283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동광극장의 별명은 '와칸다' 극장이다. 와칸다는 어벤져스에 나오는 가상의 국가로 겉모습은 허름해 보이지만 내부엔 최첨단 기술을 갖춘 선진국가다. 낡은 외관과 달리 편안하고 독특한 좌석을 갖추고 있는 동광극장에 관람객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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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뻗고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2층석 맨 앞줄 [사진 = 송승섭 인턴기자]
동광극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좌석은 단연 2층석 맨 앞줄이다. 자리에서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고 신발을 벗어 소파에 발을 얹은 뒤 영화를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관 입장이 시작되자 관람객들은 다급히 2층으로 향했다. 예매는 가능하나 별다른 지정좌석이 없어 선착순으로 앉기 때문에 늦게 입장하면 이 자리에 앉을 수 없다.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2층석 맨 앞줄에 자리잡았고 영화가 시작되기 전 관객들은 모두 신발을 벗고 좌석 앞에 위치한 소파에 발을 올렸다. 늦게 도착해 자리를 잡지 못한 일부 관람객들의 얼굴에는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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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좌석엔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가 구비되어 있다. [사진 = 송승섭 인터기자]
발을 뻗을 수 있는 좌석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고재석 동광극장 대표(52)에서 나왔다. 고 대표는 "발 뻗는 자리는 딱히 큰 의도를 가지고 만든 건 아니다"라며 "좌석은 큰데 손님이 줄어 1층석의 의자를 뜯어 발 받침대로 두자고 생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영화를 편하게 보시라고 대수롭지 않은 마음으로 설치한 건데 다들 좋게 봐주셔서 고마울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영화관을 찾는 손님 역시 증가했다. 2000년대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대거 늘어나면서 지역 사람들만 찾는 영화관으로 전락했지만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 다시 외지에서 영화를 보러 오기 시작한 것이다.

고 대표는 "정확히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한 달에 40~50명은 증가한 것 같다"면서 "적은 숫자일지는 모르지만 평소 150~200명이 찾던 영화관임을 감안하면 꽤 많이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관람객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건 이 뿐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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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 입장 전 대기 로비 [사진 촬영 = 송승섭 인턴기자]
영화 관람 전 대기장소인 내부 로비는 1993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디지털 영화 시대로 돌입한 이후 사라져버린 35mm 필름 영사기부터 당시 걸려있던 관람자 준수사항까지. 이에 드라마를 비롯한 각종 방송 쪽에서 장소 섭외 요청이 들어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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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후반으로 추정되는 당시 동광극장의 모습 [사진 제공 = 동광극장]
하지만 동광극장이 지어진 건 이보다 훨씬 오래 전인 1959년이다. 1953년 휴전협정이 이뤄지고 6년만에 철책선과 가까운 극장이 세워질 수 있었던 건 1952년 동두천에 미군부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당시 미군들을 중심으로 동두천시에는 일종의 번화가가 형성됐고 자연스레 상권이 발달해 영화관이 들어설 수요가 마련된 것이다. 작은 유지 보수로 명맥을 이어오던 동광극장은 1986년 고 대표가 인수한 이후 1993년 대대적인 수리를 진행했다. 과거 영화관들은 대부분 스크린 아래에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더 좋은 영화관람을 위해 이를 과감히 없앴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했던 최초의 멀티플렉스가 1998년 'CGV강변11'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발 빠른 조치였고 당시 지역 신문에 실리기까지 했다.

고 대표는 "사람이 크게 많지 않고 다른 영화관들에 비해 편하게 관람할 수 있는 영화관이 동광극장"이라며 "적자를 보는 날도 있긴 하지만 계속 영화관 운영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송승섭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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