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정부혁신과 프리웨어

김태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03 16:55

수정 2018.05.03 16:55

[데스크 칼럼] 정부혁신과 프리웨어


미국 연방준비위원회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일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딱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그 자신이 신봉하고 옹호하던 금융자본주의의 야만적이고 파괴적인 민낯을 인정해야 했다. 그는 미국 정부에 고용된 피고용인에 불과했다. 한낱 피고용인이 금융위기에 대처할 수 없었던 이유다. 일에는 혁신과 창조가 뒤따른다.
고용과 일은 질적으로 다르다. 고용은 구매력이 핵심이지만 일은 성취에 달렸다는 점에서 그렇다.

일한다는 것은 개인화, 발명, 창조, 사유, 세계 변화를 수반하는 종합적 예술 형태에 속한다. 표준화, 규격화,기계화를 특징으로 삼는 고용은 일을 한다기보다 고용에 따른 반복적 업무를 한다. 진정한 앎의 세계가 열리기 힘들다. 산업 시대에 마련한 고용구조를 디지털 시대에 맞춰 혁신하는 작업이 긴급한 시대적 과제로 요청받는 것도 그래서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뜬구름 잡는 수준이다. 혁신에 어울리는 진지한 사고와 고민의 흔적이 없다.

그동안 혁신은 사실상 빈사 상태인 고용에 책임을 지지 않는 '규제완화'와 동의어가 된 지 오래다. 역대 정권이 강조한 혁신도 여기까지다. 기껏 혁신의 결과가 노동유연성을 확대하는 규제완화에 몰려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정치적 수사용이다. 혁신은 그래서 진정한 정치이데올로기다. 혁신을 빙자해 구태와 관행은 지속된다.

최근 문재인정부가 발표한 정부혁신 정책은 혁신의 본질을 일정 보여줬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사회적 가치와 공공성, 정부 조직의 신뢰성을 강조했다.그러나 공동체는 균열 직전이다. 캐나다 저널리스트인 나오미 클라인은 "공동체 제도가 쇠퇴해 가는 추세와 기업 브랜드가 문화적 영역을 잠식해 가는 추세는 수십년간 반비례 관계를 형성했다"고 주장했다. 마치 시소놀이처럼 말이다. 기업 브랜드의 영토 확장은 그만큼 공공부문과 공동체가 취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다. '트럼프월드'가 대표적이다.

정부혁신이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공동체를 복원할 구체성과 명확한 비전 마련이 필수다. 정부혁신은 넒은 범위에서 사회혁신의 한 부분이다. 사회혁신 추진 과정에서 정부혁신은 변화와 쇄신의 촉매제다. '프리웨어'로 평가받고 있는 공공데이터 개방은 이런 점에서 혁신적이다. 벤처와 창업의 생태계를 창조하고 주도해 일자리를 만드는 등 기존 고용패턴 구조를 혁신하기 때문이다. 프리웨어는 개방성과 자율성이 특징이다. 기술적·법적 제약 없이 모든 사용자가 자유롭게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활용한다는 의미에서다.

결국 정부혁신의 성공은 고용과 일의 창출에 달렸다. 미래의 고용기회는 직업의 자동화와 노동력 과잉 때문에 심각하게 제약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정부는 깨달아야 한다. 디지털로 높아지는 생산성으로 방출되는 노동력은 저생산성 스펀지에 의해 흡수되지만 사회적 부의 불평등 문제는 정부를 내내 괴롭힐 것이다.
공공성을 강조한 문재인정부는 디지털이 가져올 미래 공통의 사회적 부를 어떤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지 해법 마련에 최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불평등이 위대한 번영을 이끄는 시기는 존재한 적이 없다.
이제부터 벌어질 디지털 시대의 중요한 싸움 중 하나는 사회적 부를 공유하는 방법을 놓고 벌어질 격렬한 정치투쟁이다.

ktitk@fnnews.com 김태경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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