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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옛것인데 신선하다, 연극 '엘렉트라'

등록 2018.05.03 16: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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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옛것인데 신선하다, 연극 '엘렉트라'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폐허 위로 쏟아지는 부서질 듯한 절규. 연극 '엘렉트라'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장영남(45)의 목소리에서 고결함을 느꼈다.

동명 그리스 고전이 바탕으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어머니와 어머니의 정부를 살해하는 엘렉트라의 비극적 이야기다.

'연극계 대모' 한태숙(68·극단 물리 대표) 연출은 '엘렉트라'를 동시대로 옮겨왔다. 엘렉트라는 거대한 비극 앞에서 철저하게 가련한 긴 속눈썹의 여성이 아닌, 9·11 테러의 잔해처럼 보이는 기지에서 몸부림치며 총을 든 게릴라 여전사로 변주됐다.

엘렉트라가 어머니 '클리탐네스트라' 앞에서 총을 쥔 손가락의 힘을 쥐고 뺄 때, 객석의 심장은 수축과 이완을 오간다. 어머니를 향해 부도덕하다고 울부짖을 때, 자신의 복수를 위해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등의 도덕적 아이러니에 빠진 그녀의 무기력함은 때론 아름답게 느껴진다.

과거와 현재, 복수와 용서, 환멸과 카타르시스가 건물의 잔해처럼 뒤섞인다. 그 안에서는 저마다 복수를 꿈꾸며 날 선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음성이 울린다.

연극 '레이디 맥베스', 창극 '단테의 신곡'에서 확실히 드러난 한 연출의 그로테스크 미학은 더욱 깊어졌다. 부자연스럽게 어울린 것들과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괴기한 정서는 우리가 미처 삶에서 인식하지 못한 현실의 단면을 잘라, 그 부분에서 극에 못지않게 출렁이는 삶을 톺아보게 만든다. 

[리뷰]옛것인데 신선하다, 연극 '엘렉트라'

고연옥(47) 작가가 각색한 꼿꼿한 삶 위로 한 연출이 그려나가는 정의의 다양한 층위는, '페미니즘'이라는 기표 밑에 놓여 있는 '삶의 정의'라는 기의에 대해 관객이 질문하게끔 만든다.

'엄마'라는 여성성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 한 인간의 적극적인 욕망을 짧은 시간에 그려낸 클리탐네스트라 역의 서이숙(51)이 그 질문의 마천루에 있다.

고전은 옛것이다. 그런데 신선하다. 5일까지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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