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왜 못 쓰죠?"..허물어지는 성 고정관념

유승목 기자 2018. 5. 3.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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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직업 고정관념 변화 시작..전문가들 "긍정적이지만 특정인 아닌 사회 전반으로 확산돼야"
/사진= 이미지투데이

성평등을 위한 노력이 거세지는 가운데 여전히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과 금기 등이 '차별 없는 세상'을 가로막고 있다. 쉽게 깨지지 않는 벽이지만 두드림이 시작되자 조금씩 허물어지는 모양새다.

◇여자가 쓴 안경, 단정하지 않다고?

지난달 12일 공중파 방송에서 다소 낯선 광경이 연출됐다. 임현주 MBC 아나운서가 안경을 착용하고 뉴스를 진행한 것. 그동안 공중파 방송에서 젊은 여성 아나운서·앵커가 안경을 낀 채 뉴스에 등장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임 아나운서는 방송 이후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그동안 알게 모르게 관행처럼 따랐던 것에 한번쯤 물음표를 던져보는 계기"라며 "안경을 쓰든 쓰지 않든 그것이 더 이상 특별하게 시선을 끌거나 낯설게 느껴지지 않게 되길 바란다"고 안경을 쓴 이유와 소감을 전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 사회에는 오랫동안 여성들의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다. 남성 아나운서의 안경 착용에는 관대하면서 여성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면 단정하지 못한 이미지로 보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여자 아나운서들은 인공눈물을 달고 살고 안구건조증에 시달리면서도 방송을 위해 렌즈를 써왔다.

MBC 임현주 아나운서(오른쪽)가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 MBC 뉴스투데이


여성 자체에 대한 성차별적 인식도 만연하다. '여자는 지나치게 감성적이다', '여자는 약하기 때문에 남자에게 보호 받아야 한다' 등이다. 실제로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달 25일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성 고정관념 및 남녀차별'에 대해 조사한 결과 '우리 사회에 남녀 성 역할의 고정관념이 없다'고 답한 인원은 전체의 7.7%에 불과했다.

여성 스스로 사회 구조가 만든 성역할 고정관념을 따르기도 한다. 트렌드모니터 설문에 따르면 '여자의 가장 큰 경쟁력이 외모인 것 같다', '남자가 여자를 보호해줘야 한다'고 답한 여성의 비율도 각각 55.4%(남자 59.8%), 47.6%(남자 55.4%)에 달했다.

◇작은 균열에 벽은 허물어져

하지만 여성 인권과 남녀평등 인식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면서 조금씩 변화가 보이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를 강타한 '미투'(#me too) 열풍이 변화의 기폭제로 작용하며 그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단정한 외모 등 직업 전문성과 함께 미적 요소를 강조해온 항공기 여성 승무원도 고정관념을 깨기 시작했다. 지난 24일 저비용항공사 제주항공이 '객실 승무원 서비스 규정'을 변경하며 객실 승무원의 안경 착용을 허용한 것이다. 그 동안 항공업계에서는 아나운서와 마찬가지로 획일화된 미적 기준으로 인해 여성 승무원의 안경 착용이 암묵적인 금기로 여겨졌다.

저비용항공사 제주항공이 승무원에게 안경 착용을 허용했다. /사진제공= 뉴스1

성 고정관념으로 여성의 진출이 꺼려지는 직업에서도 점차 성별이 아닌 실력으로 평가받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다. '금녀'와 '유리천장'으로 유명한 군인이 대표적이다.

2010년 송명순 전 국방정보본부 해외정보차장(예비역 준장)은 '여성은 남성보다 신체적으로 열등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첫 여성 '전투병과' 장군으로 진급했다. 지난해에는 간호병과를 포함해 창군이래 첫 3명의 여성 장군이 탄생하기도 하는 등 여성 군인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는 추세다.

특히 성 고정관념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아 온 방송에서도 변화가 시작됐다. 2016년 '서울YWCA 양성평등 미디어 모니터회'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공동으로 TV 드라마를 분석한 결과 '성의 주체성을 무시하고 남성 의존 성향을 강조하는 내용', '여성이 갈등 유발자로, 남성이 갈등 해결자로 나오는 경우' 등 성차별적 내용이 성평등적 내용보다 2배 이상 많이 발견됐다.

하지만 최근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누나'에서 성 차별적 갑질을 거절하고 주체적으로 변하는 주인공이나 여성의 경제력을 강조한 '걸 크러쉬' 김숙 등의 모습에서 여성의 고정관념이 전보다 옅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러한 작은 변화가 모여 사회 전체로 확산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현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아나운서와 승무원의 안경 착용 등 성차별적 고정관념이 옅어지는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여전히 일상에서의 사회적·구조적 성차별 요소가 만연하고 '성평등 의식'과 '실천' 사이의 격차가 큰 만큼 이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정한 누군가만 바뀌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며 "이같은 변화가 시작된 만큼 성평등과 고정관념 탈피에 대한 '공공 인식'을 높일 수 있는 교육을 통해 뿌리 깊은 구조적 성 차별적 요소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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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목 기자 mo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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