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매크로가 뭐죠" 묻자, 검사 답변 못하고 쩔쩔맸다

김정환 기자 2018. 5. 3. 03: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댓글조작 드루킹 첫 재판.. 수사 부실 검찰, 재판준비도 엉망]
판사 "네이버 아이디 하나로 추천 여러번 클릭할 수 있느냐"
검사 "수사 중이라 다음에.."
답답한 판사, 재판 15분만에 끝내.. 검찰, 증거 목록조차 제출 못해
드루킹은 "범죄 혐의 인정한다" 빨리 풀려나기 위해 전략 짠 듯

댓글 조작 혐의로 기소된 '드루킹' 김동원(49)씨의 첫 재판이 2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취재진과 방청객이 522호 법정을 가득 채웠다. 이번 사건이 불거진 후 김씨가 처음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였다. 그가 어떤 발언을 할지 이목이 쏠렸다. 그러나 재판은 15분 만에 끝났다. 검찰이 재판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판장이 검사를 향해 수차례 '준비 부족'을 지적할 정도였다.

김씨는 지난 1월 17일 평창 단일팀 관련 기사의 댓글 추천 수를 '매크로(특정 작업을 반복 수행) 프로그램'으로 조작한 혐의로 이날 재판을 받았다. 사건의 실체를 알기 위해선 '매크로 프로그램'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김대규 판사가 검사에게 "매크로 프로그램이 정확히 어떻게 작용하는 건지 설명해달라"고 했다. 검사는 답변 대신 "상세히 설명하기 위해 공소장을 변경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 판사는 "네이버 아이디(ID) 하나당 한 번만 '공감(추천)'을 클릭할 수 있는데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ID 하나로 (추천을) 여러 번 클릭할 수 있느냐"고 재차 물었다. 검사는 "수사 중에 있어서 다음에…"라고 했다.

김 판사는 답답한 듯 몸을 돌려 드루킹 측 변호사에게 프로그램에 대해 물었다. 오정국 변호사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써도 ID 하나에 한 번만 (공감 클릭이) 가능하다"며 "손으로 (일일이 댓글 공감을) 클릭하는 게 귀찮아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썼다"고 했다. 그러면서 "손으로 클릭하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어 실제로 네이버의 업무에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오 변호사 옆에 앉은 '드루킹' 김씨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찰은 이날 "범죄 사실에 대한 증거 목록을 제출하지 못했다"며 다음 재판 일정을 한 달 뒤에 잡아 달라고 요청했다. 통상 피고인이 혐의를 모두 인정하면 다툴 것이 없어 재판이 빨리 끝난다. '드루킹' 김씨는 댓글 조작 혐의는 인정하고, 빨리 풀려나는 재판 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김씨는 이날 범죄 혐의를 모두 인정한다고 했다. 댓글 조작으로 업무 방해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도 형량은 비교적 가볍다. 지금까지 이 혐의로 가장 엄한 처벌을 받은 게 집행유예였다.

드루킹 측 오 변호사는 "검찰이 공소장을 법원에 제출하고 기소했으면 충분히 수사가 이뤄졌고 증거도 확보됐다고 생각한다. 재판을 지연시키려는 것 아니냐"며 검찰을 공격했다. 김 판사도 검사에게 "선뜻 납득이 안 된다. 압수물 목록도 준비 안 됐느냐"고 했다. 검사는 "(드루킹 일당) 구속 기한이 짧아서…"라고 했다. 김 판사는 오는 16일 오후에 다시 재판을 열기로 했다. 한 법조인은 "드루킹 측은 풀려난 상태에서 인사 청탁 등 다른 혐의에 대해 방어하며 '꼬리 짜르기'를 하려는 듯한데, 수사 당국은 이에 대한 대응책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서정욱 변호사는 "검찰과 경찰이 기소 전에 증거 목록을 제출하는 통상적인 재판 절차조차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실한 재판 준비'는 사건 관련자에 대한 압수 수색을 신속히 집행하지 않는 등 검경의 '늑장 수사'로 어느 정도 예견됐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이 드루킹 일당의 다른 댓글 조작 사건을 수사한다고 압수물과 증거 목록을 검찰에 제출하지 않는다"며 "3주째 독촉하는데도 주질 않아 우리도 답답하다"고 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