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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입맛을 자극시키는 한마디 | 미디어 속 미식가의 맛 표현 집중탐구

이승연 기자
입력 : 
2018-05-02 12:55:25
수정 : 
2018-05-02 16:3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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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물밀 듯 쏟아진 ‘먹방’의 홍수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연예계 대표 미식가들이 있다. 맛에 대한 기준은 개개인마다 다르지만, 그들은 자신만의 노하우와 지식, 입담으로 보는 사람들을 맛집으로 이끌고 있다. 보는 이들의 침샘을 고이게 하고, 듣는 이들의 위장을 허기지게 하는 ‘미디어 속 미식가’들의 맛 표현을 탐구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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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그려내는 푸드텔링 | 이영자 -황태 해장국 “황태 해장국. 그냥 명태도 아니고 황태! 찬 바람에 꽁꽁 얼었다가 낮에 풀렸다가, 눈 올 때 얼렸다가, 풀렸다가, 이러면서(꿀꺽) 말린 것 중에 최고의 황태. 그 영양의 보고가 얼~큰하게 우리 몸에 모든 말초 신경을 다 깨우는 그게 황태에 있거든. 콩나물 넣고 황태국을 촤~~악 끓여. 한입 타~~악 먹어봐. ‘아, 그래도 세상은 살만 하구나’ 이런 게 확 느껴진다니까.”

-고기학개론 “육즙이 안 빠지게 구워요. 구우면서 육즙이 나갈 수 밖에 없거든요. 미세한 차이지만 되게 중요해요. 앞뒤로 하나씩, 두 개씩 깨작하며 구우면 육즙이 쫙 빠져버리면서 건조해. 육포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럴 때 뭉쳐서 집게로 막 구워요. 육즙이 안 빠지게 서로가 부딪히도록.”

-서리태콩물 “고~~~소하고 달~~~~콤하고, 내 몸에 들어가면서 오~~~온 몸에 촤아아악 흡수돼. 그래서 머리로 그 에너지가 촤아악 올라와. 두피 약한 부분에 촘촘히 에너지가 쌓여서 머리가 ‘사사사사삭’ 이렇게 나. 향부터 끝내주지 않아요? 아무것도 안 넣은, 서리태 그 자체에요. 아 머리가 난다. 어우~ 시집 잘 간 송혜교가 부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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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자 맛 표현 Point ▷기본 맛집 정보 지식 70%+충청도 사투리와 의성어 15%+생생한 구현력 15%

‘첫 입은 설레고 마지막 입은 그립다.’ 이영자의 맛 표현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하는 한마디다. 수제어묵 하나에도 먹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녀. 요리사 이원일이 ‘맛을 시뮬레이션 하시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다’고 이야기할 만큼, 이영자는 맛을 표현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매코오옴~하게 칼카아알~하게 양념한 거에요. 밥 하나 딱 해가지고, 두부 딱 올려가지고 슥슥 비벼…” “내 입안이 운다, 울어. 왜 이제야 왜 이제야 곡식을 넣냐고. 봄 들어간다 봄 들어간다.” 마치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음식들. 이처럼 생생히 음식 맛을 전달하는 능력은 기본적으로 이영자 본인의 경험에서 우러난 정보력에 있다. 유병재가 ‘이영자의 맛 표현을 따라 하려면 생선을 잡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듯, 이영자는 직접 먹어본 음식의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부터 차근차근 접근한다. 이후 재료의 맛을 살리는 요리법, 먹는 순서, 맛의 느낌 등 ‘식(食)’의 모든 과정을 표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충청도 사투리와 표준어가 섞인 구수한 화법과, ‘크~흐, 촤~아, 타~~악’ 등 음식마다 세세하게 다른 의성어 역시 그녀의 맛 표현에 한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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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공인 연예계 대표 미식가 | 신동엽 -소고기 안심 “원래 이렇게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은 끌리게 되지만 금방 질리거든요. (하지만 안심은) 굉장히 고고하죠. 우아하고. 대놓고 유혹하지 않습니다. 은은한 핑크빛이 감돌면서 자태가 있어요. 불판에 올렸을 때도 소리가 ‘치이이익’이 아니라 ‘슈우우우우’에요. 입천장과 혀 사이에서 온데간데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굉장히 많이 씹히는 것도 아니고…. 아주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은은한 육향과 부드러운 식감. 나름대로 강력한 한방, 소고기 안심입니다.”

-꼬막 “아직도 기억나는 게, 부엌에서 ‘다라라락’ 하는 소리가 나요. 가서 보면 엄마가 꼬막을 삶아가지고 씻는 껍질끼리 부딪치는 그 소리 있잖아요. 다른 조개에서는 나지 않는. 찐 꼬막을 반찬으로 먹고, 양념간장 얹어서 먹고, 또 다음날 도시락 반찬으로 먹고. 정말 신기한 게 어렸을 때 그렇게 맛있게 반찬으로 먹던 거를 커서 안주로 먹는 것은 이게 유일한 음식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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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맛 표현 Point ▷비유법 40%+추억 소환 30%+기승전’술’ 30%

<수요미식회> <오늘 뭐 먹지?> <인생술집> 등 각종 먹방 콘텐츠에서도 제각각 다른 미식가의 면모를 선보이는 신동엽. 연예계 자타공인 미식가이자 애주가인 그는 맛 평가에 있어서도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하고 있다. 각종 음식에 대한 틈새지식까지 전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상상력과 미각을 자극시키는 생생한 표현을 하는가 하면, 듣는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맛의 추억’을 소환하기도 한다.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과 추억 속 맛이 가장 맛있는 음식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또한 덧붙이자면 신동엽의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술과, 술안주에 대한 맛 평가는 단연 어떤 음식보다도 입맛을 자극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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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정석(定石)으로 접근한다 | 황교익 -소고기 안심 “안심은 워낙 부드럽기 때문에 얇게 썰어서 굽게 되면 수분이 금방 달아나게 되고, 조직감이 힘이 없어요. 씹는 느낌도 즐길 수도 없고 육향도 잡히지 않아요. 다 익히면 맛이 없어요. 안심은 안에 안 익은 부위가 80~90% 돼야 맛있거든요. 안심은 큰 덩어리로 구워야 해요. 끝은 약간 거칠게 태우고 안은 약간 덜 익은 상태. 입안에 탁 들어오는… 치아 사이에 아름다운 저항감과 육향이 흐르게 되는 거죠.”

-순대국 “부추만 넣어서 먹는데, 부추가 약간 뜨거운 국물 안에서 살짝 익잖아요. 약간 매콤한 맛과 단맛이 만들어져요. 그래서 국물 맛에 영향을 미치고. 살짝 익은 부추가 맛있잖아요. 건져 먹는 맛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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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 맛 표현 Point ▷이론 50%+경험 30%+설득력 20%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과 <수요미식회> 등 미디어를 통해 보여주는 음식에 대한 그의 지식은 한마디로 깊고 넓은 편이다. 어떤 음식이 생기게 된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배는 고프지만, 지식은 풍부해지는 느낌. 그리고 맛 평가에 있어서 무엇보다 ‘기승전결’이 확실하다. 음식이 맛있는 이유를 이론적으로 접근하고, 차근차근 설명해 나간다. 그렇다고 맛을 떠올리게 하는 ‘상상력’ 또한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 하지만, 황교익의 음식 선호도에 따라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뉘는 편이라 음식 평이 누군가에겐 공감을, 누군가에겐 아쉬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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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 대식가, 애식가 | 김준현 -순대국 “TPO(시간, 장소, 상황)를 내가 만들어요. 겨울에 순대국을 하나 먹으러 가면 순대국을 시켜요. 반팔만 입고 나가서 5~10분을 추위에 떨어요. 추워야 해요. 그러다 안에 음식이 나왔으면 들어가서 먹는 거에요. 그럼 10배는 더 맛있어요.”

-피순대국밥 “이건 팔겠다고 끓인 국물이 아니야…. 먹이겠다고….”

-대방어회 “밀도가 짱짱해. 1.5볼트 건전지 다 됐나 안 됐나 우리가 혓바닥 약간 댔을 때, 쇠맛 있지, 그게 있어. 철분 맛이 나.” “사이사이 날치알이 공기층을 형성해 씹을 때마다 사르륵 녹는다.”

-간장새우 “유민상: 안 짜? 안 짜냐고?” “(짤테면) 짜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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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현 맛 표현 Point ▷카리스마 70%+은유적 표현 30%

세상의 모든 맛을 최선을 다해 표현하겠다는 대식가 겸 미식가 겸 애식가 김준현. 좌우명이 ‘음식은 종합예술이다’일 정도로 음식에 대한 김준현의 애정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평소 본인만의 맛 철학이 뚜렷해 먹방에서 김준현의 맛 표현 역시 주목받는 요소. 그의 맛 평가를 보면 크게 두 가지 특징으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한적한 산 속에서 자연을 벗삼아 시를 짓고 살아가는 시인을 떠올리게 하는 예술적인 표현 구성, 그리고 또 하나는 아무리 이해 못할 논리여도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다는 것이다. <맛있는녀석들>에서 일명 ‘김프로’로 불리는 김준현. 과연 어느 누가 대방어회에서 ‘건전지 철분’ 맛을, 소고기 구이에선 ‘첫사랑의 샴푸향’ 등을 떠올릴 수 있을까. 이처럼 그의 예상치 못한 비유법이 어떨 때는 마치 종교 말씀을 듣는 것과 같이 깊은 인상을 남기며, ‘맛집 어록’을 탄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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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연구가 겸, 사업가의 눈으로! | 백종원 -마파두부 “안에 들어간 고기, 두반장의 강한 양념, 순하지만 뭔가 씹히는 두부. 이게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비슷하게 서로 지분을 가지고 있어요. 되게 구수해. 정말 좋은 두반장을 잘 볶으면 이 맛이 난다는 거. 두반장이 어떤 맛이냐 그러신다면, 고추장보다는 된장에 가까운 맛, 된장인데 우리의 쿰쿰한 맛보다는 약간 고소함하고 짭짜름한 게 강한 맛…(생략)”

-<3대천왕> 리액션 ‘말 없이 먹기’(진짜 맛있음), “진짜 맛있는데?”(꽤 괜찮음), “맛있어요”(그냥 우리 동네에 흔히 있는 식당 수준, 익숙한 맛), “음, 여기 재미있는데?”(그냥 그저 그런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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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 맛 표현 Point ▷표정 25%+행동 25%+말 25%+기타 25%

요리연구가이자 사업가인 백종원의 맛 평가는 말 그대로 ‘백종원답다’. 그가 요리할 때 설명하는 것처럼, 맛 평가 역시 ‘아는 맛’을 비교하는 등 최대한 쉽게 설명한다. 예를 들어 백종원이 중국 요리 ‘두반장’의 맛을 설명할 땐, 한국의 ‘된장’과 비교하며 음식의 재료와 양념, 요리법 등으로 ‘음식의 원리’를 입증한다. 물론 그조차도 귀찮을 땐 한 누리꾼이 쓴 ‘백종원의 <3대천왕> 속 리액션으로 보는 맛집 구별법’을 살펴보자. 글의 요지는 백종원의 몇 가지 리액션이 맛 설명을 대신한다는 것. 백종원이 ‘말 없이 먹으면’ 정말로 맛있는 음식이고, ‘재미있다’고 얘기하면 그냥 그저 그런 맛이라고 한다. 이에 백종원은 “사실무근이다”라며 부정했지만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낸 만큼, 어느 정도 그의 리액션에서 맛에 대한 힌트를 얻어도 좋겠다. [글 이승연 기자 사진 매경DB, MBN, MBC, 코미디TV, tvN, <수요미식회> 공식 페이스북 일러스트 포토파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27호 (18.05.08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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