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만큼 검사도 나빴다" 이태원 살인사건 피해자 어머니 법정서 눈물
[경향신문] “범인들도 나쁘지만 검사도 우리한테는 범인 못지 않게 잘못을 했습니다.”
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566호 법정의 증인석에 앉은 ‘이태원 살인사건’의 피해자 고 조중필씨 어머니 이복수씨(76)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1997년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조씨가 여러차례 흉기에 찔려 살해된 뒤 검찰 수사는 헛발질만 했다. 1998년 11월 조씨 가족이 진범인 아더 존 패터슨을 검찰에 고소했지만, 정작 검찰이 범인으로 지목한 에드워드 리는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패터슨은 이듬해 출국해버렸다.
조씨 가족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서명을 받아 재수사를 요구했지만 검찰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2009년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개봉해 사회적 논란이 되고 나서야 범죄인 인도 청구를 했다. 가족들은 검찰의 부실 수사 때문에 진실 규명이 늦어졌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 이날은 이씨에 대해 신문을 하는 날이었다.
이씨는 “진범을 밝혀달라고 검찰에 진정서도, 탄원서도 냈지만 답변은 ‘소재파악 중’이라는 것뿐이었다”며 “검찰이 수사만 똑바로 했어도, 진범만 밝혔어도 우리 가족들은 아들의 명복만 빌며 살았을 텐데 검찰의 잘못으로 21년째 이 고통을 가져야 하느냐”고 호소했다.
이씨는 재수사를 요구할 당시의 심경에 대해서는 “수사한 검사가 원망스러웠다”며 “대한민국 법이 살인자를 내보내는 법인가하고 한탄스러웠다”고 했다. 가족들이 겪은 고통을 증언하는 과정에서 이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이씨는 울먹이며 “우리집 기둥이 부러졌는데 정신이 온전했겠습니까”라며 “우리 가족들은 불구덩이 속에서 살았다. 너무 억울하고 살이 떨려서 말도 안 나온다”고 했다. 조씨 가족은 검찰은 물론 국회, 감사원, 주한미대사관 등에도 억울함을 이야기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2016년 법원은 1심에서 패터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고 이 판결은 지난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씨는 “20년 만에 진범이 밝혀져서 꽉 막힌 가슴이 뚫렸다”며 “내가 죽어서 하늘나라에서 아들을 만나면 ‘엄마 고맙다’고 할 것 같다”고 했다.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이씨는 검찰의 잘못을 다시한번 지적하며 소송이 빠르게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씨는 “초동수사 때 담당검사가 수사와 기소를 잘못해서 일이 꼬이고 정신적·육체적 피해는 우리 가족들이 다 입었다”며 “아들 잃은 부모는 80이 다 되도록 법정에 쫓아다녀야 됩니까. 이 재판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에 앞서 증인으로 나온 조씨의 매형 서모씨는 “제 아들이 두 돌도 안됐을 때 넘어져 얼굴이 찢어졌는데도 병원에 가보지 못하고 (재수사 촉구) 서명을 받으러 쫓아다녔다”며 “담당 부장검사가 면담에서 ‘이 사건은 해결이 되지 않는 사건이니 포기하라’고 종용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민사48부(재판장 오상용 부장판사)가 심리하고 있다. 국가 측은 조씨 가족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소멸시효가 완성돼 배상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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