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그 후]당신은 노동자인가, 근로자인가?

김봉수 2018. 5. 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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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린 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네거리에서 경찰들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세계 노동절 대회의 행진시간인 오후 3시 반부터 6시까지 세종대로와 종로 4가까지 진행방향 전차선 도로에서 차량통행이 일제히 제한된다고 밝혔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5월1일, 휴일인 듯 아닌 듯, 부르는 이름도 제각각인 이날은 1년 중 가장 헷갈리는 날이다. 우선 명칭부터 정리해보자. 우리나라에선 '근로자의날'이 공식 명칭이다. 반면 노동계ㆍ시민사회에선 '노동절'이라고 부른다.

중요한 것은 근로(勤勞)와 노동(勞動)의 차이다. 그게 그거냐고? 천지차이다. 근로자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 노동자는 스스로 일하는 자를 말한다. 엄연히 다르다. 말 장난하는 것 같지만 근로자와 노동자는 전혀 다른 세계관ㆍ가치관, 사회 체제ㆍ이념이 응축된 표현이다. 근로자는 자본의 입장에서 본 사람이다. 부속품이 돼 피동적으로 일하는 월급쟁이들이다. 노동자는 다르다. 스스로 일하는 자 즉 가치와 부를 창출하는 실질적인 주체다. 자본, 기계가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사회를 바라본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선 한국전쟁, 냉전시대 등을 거치면서 '노동', '노동자'라는 이름이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상징처럼 인식되면서 내내 탄압을 받아왔다. 그러나 '사람 중심 사회'를 내세운 문재인 정부 들어 힘을 얻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하면서 '노동 존중 사회'를 핵심 국정 과제로 제시했다. '근로 존중 사회'가 아니었다. 최근 국회에 제출했던 개헌안에선 각종 법률ㆍ정책 등에 사용되던 '근로'라는 명칭을 '노동'으로 대체하는 등 '노동 기본권 강화' 내용을 대거 포함시켰었다.

문 대통령은 1일 근로자의날 담화문을 통해서도 "'근로'를 '노동'으로 대체하고 공무원의 노동3권 보장,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단체행동권 강화 등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며 "노동의 가치와 존엄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들 자신이, 우리의 부모들이, 우리의 아들딸들이 바로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노동의 가치와 존엄은 바로 우리 자신의 가치와 존엄"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전세계적으론 '노동절'이 국제 표준이다.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일에 '메이데이(May-day)'로 이름 붙인 후 전세계 공통이었다.

휴일이냐, 아니냐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근로기준법상 '5월1일을 근로자의 날로 하고, 이날을 유급휴일로 한다'고 정해놨다. 따라서 보통 다른 국경일 또는 법정 공휴일이 모든 국민들이 쉬는 날인 반면 근로자의날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게만 해당된다. 즉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만 쉴 수 있다는 얘기다. 100만명이 넘는 공무원과 교원, 경찰 등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 쉴 수 없다. 자영업자, 5인 미만 영세 사업장 종업원 등도 해당되지 않는다. 근로자의날에 쉬는 사람은 전체의 절반도 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이념의 장벽이 깨지고 일보다는 사람ㆍ삶의 질이 중요한, '워라벨'(Work Life Balance)를 중시하는 사회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서울시, 광주시 등 일부 지자체가 대표적 사례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해부터 각 부서별 비상 근무 인원을 제외한 공무원들에게 특별 휴가를 주는 방식으로 사실상 휴일화했다. 올해도 본청ㆍ사업소 소속 1만821명의 공무원 중 8399명(77%)이 특별 휴가를 내고 휴일을 즐겼다. 전국공무원노조 등은 노동3권 보장 요구와 함께 "공무원도 근로자"라며 꾸준히 근로자의날 휴무화를 요구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근로자의날을 법정 공휴일에 포함시키자는 내용의 법안이 2건이나 발의돼 있다. 세계적 추세에 맞게 '근로자의날' 명칭도 '노동절'로 바꾸자는 법안도 계류 중이다.

다만 정부 해당 부처나 재계 등은 부정적이다. 인사처 측은 공무원의 근로자의날 휴무화에 대한 공식 입장을 묻는 질문에 "공무원의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특수성과 사회경제적 파급 효과를 고려할 때 폭넓은 의견 수렴을 거쳐 검토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관공서 휴무로 인한 국민 불편, 이미 공휴일수가 선진국에 비해 적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신중해야 하는 사안이라는 얘기다.

제128회 세계 노동절이나 2018년 근로자의날인 5월 1일 묻는다. 당신은 스스로 일하는 자인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인가?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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