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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나마스테!] "전쟁에 대해 쓰는 것은 바로 평화·삶에 대한 사랑을 적는 일"

조용호 입력 2018.04.30. 21:11 수정 2018.04.30. 21:38
베트남 바오 닌·日 메도루마 순·韓 현기영/ 전쟁·학살 공유한 세 작가 제주서 만나다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리던 지난달 27일, 동아시아 전쟁과 학살 현대사를 공유한 작가 세 사람이 제주에서 만났다. 북베트남군 전사로 참전했다가 살아남아 ‘전쟁의 슬픔’을 소설에 녹여낸 베트남 대표작가 바오 닌(66), 일본 정부와 미군에 맞서온 오키나와 작가 메도루마 순(58), 제주 4·3사건을 최초로 작품에 담아냈던 한국 원로작가 현기영(77)이 그들이다. (사)한국작가회의 제주도지회(회장 이종형)가 주관한 4·3항쟁 70주년 전국문학인 제주대회 심포지엄 ‘동아시아의 문학적 항쟁과 연대’에 참석한 그들을 바쁜 일정에서 따로 모셨다. 커피숍 대형 텔레비전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만남을 대담 내내 배경음악처럼 중계했다.
동아시아 전쟁과 학살 현대사를 소설에 공유한 베트남 작가 바오 닌, 제주 4·3을 최초로 소설에 담아낸 현기영, 오키나와 대표작가 메도루마 순(왼쪽부터). 이들은 아무리 문학이라도 너무 끔찍한 참혹이면 담아내기 쉽지 않지만 작가의 그릇에 따라서는 다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너무 훌륭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싸우지 않고 대화로 통일을 위해 만나는 일은 귀하고 소중합니다. 전쟁이 벌어져서 한쪽이 지고 이긴다 한들 그 폐해를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정말 귀한 날인데 실제로 한민족 전체 염원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전쟁의 참혹을 누구보다 깊이 체험한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은 평화를 위한 남북의 만남을 상찬했다. 그는 열일곱살에 베트남 남북 전쟁에 북군으로 참전해 3개월 사격훈련을 받고 전선에 투입됐다가 첫 전투에서 소대원들이 대부분 전사하는 바람에 5개월 만에 하사로 진급해 소대 지휘관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6년 동안 최전선에서 싸웠다. 마지막 전투에서 살아남은 소대원은 그를 포함해 단 두 명뿐이었다. 이후 전사자 유해발굴단에 참여해 베트남 산하에 버려진 수많은 시신을 수습한 다음 전역했다. 그 참담한 죽음과 죽임의 체험을 담아낸 소설 ‘전쟁의 슬픔’은 베트남 문학계는 물론 16개국에 번역 출간돼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며 깊은 울림을 주었다. 베트남에 앞서 일찍이 남북 전쟁을 치르고도 여전히 분단 상태인 한반도의 극적인 변화가 그에게는 인상적일 수밖에 없다.
바오닌.
“1년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평화 무드로 바뀌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북한 위협을 내세워 군사적 긴장감을 조성하는데 그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겁니다. 오키나와에서도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면 안 좋은데, 오키나와에 평화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에서는 유일하게 미국과 치열한 전투를 치렀던 오키나와. 메이지 유신 당시 독립왕국이었던 오키나와를 일본에 복속시키고 전쟁 국면에서는 미국과 더불어 그곳 주민들을 차별하고 학살했던 역사를 메도루마 순은 작품에 담아내 일본 최고의 순문학상 아쿠타가와상도 받았다. 그는 오키나와전쟁과 제주의 4·3사건을 같은 맥락에서 보았다. 제주 또한 현대사에서는 이데올로기를 명분으로 3만여 명이 ‘국가 폭력’에 학살당한 비극을 겪었다. 그이 또한 남북의 평화를 위한 도정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당장 그가 사는 곳의 평화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그는 10년째 작품 집필을 못하고 매일 카누를 타고 미군기지 건설 현장으로 나아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메도루마 순.
“제주도 4·3항쟁 70주년을 맞았는데, 4·3이라는 게 근본적으로 분단을 막으려다 촉발된 거지요. 그때 분단이 안 됐으면 오랜 아픔은 없었을 겁니다. 이제 남북이 다시 만나는 모습을 보니 격세지감과 기대감이 있습니다. 모쪼록 순조로운 앞날을 기대합니다.”
제주 4·3사건을 이데올로기의 장벽에 가둬 쉬쉬하던 유신시절에 1978년 처음으로 소설 ‘순이삼촌’에 담아내 판매금지의 세월도 겪어야 했던 소설가 현기영. 그는 남한만의 단독선거 반대 명분을 이승만과 미군정이 압살하는 과정에서 민간인과 남로당 가릴 것 없이 무차별 학살의 참극을 빚어낸 4·3의 근본 시작점을 제대로 지켜냈더라면 오랜 고통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기영.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점에서도 동아시아 세 작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은 물론 일본까지 합세한 초토화 작전으로 학살을 경험했던 오키나와 주민들은 베트남으로 발진하는 폭격기에 폭탄을 싣는 노동을 했다. 최근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서는 재판장인 김영란 전 대법관이 “원고들의 존엄과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책임을 공식 인정하라”고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자기 민족이 저지른 과오를 자기 정부에 대항해 활동을 벌이는 것이 경이롭습니다. 모의법정까지 마련하고 공정한 판결을 정확하게 내리는 한국 분들의 모습을 진정으로 존경합니다. 제주 4·3사건의 진실을 한국 사람들이 잘 몰랐듯이 한국군 민간인 학살 또한 베트남 사람들도 잘 모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잊혀진 사건을 드러내서 다시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도록 벌이는 활동은 정말 대단합니다.”

바오 닌은 ‘용서는 하되 잊지 말자’는 ‘기억 운동’을 향후 발생할지도 모를 같은 비극을 방지하는 슬로건으로 내세운 한국 작가 현기영의 제안에 동의하면서, 가해자인 한국인의 노력에 경의를 표했다. 또 다른 가해 당사자인 일본국 소속 오키나와 작가 메도루마 순은 한국 정부야말로 일본에게 보다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정부는 좀 더 강하게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를 밀고 나가야 합니다. 일본은 역사를 너무 많이 망각하고 있습니다. 남북이 분단된 건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한 결과인데, 일본 정부는 자기들 형편 좋은 대로 역사를 끼워 맞추는 측면이 큽니다. 북한에게 한국 정부가 속아서 회담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는 건 군사적 위기를 고양시켜야만 자기들 목소리도 커지고 군비를 확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키나와 반전 작가 메도루마 순은 더 나아가 일본 민중들도 각성해 민주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전후 미국과 일본의 이해관계 때문에 천황을 온존시킨 게 시민운동을 약화시킨 큰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바오 닌은 쏟아지는 총탄 속으로 미친 듯 걸어나가 차리리 죽고 싶다고 포효했어도 운 좋게 살아남았다. 그를 살려준 하늘의 뜻이 무엇일까 물었더니 “술을 더 마시라는 것”이라며 웃다가 “시체의 숲과 죽음의 강을 제대로 기록하고 남기라는 것”이었겠다고 수긍했다. 이날 동아시아 작가들은 아무리 활자를 둘러싼 영상의 힘이 커도 문학의 역할을 깊이 신뢰한다는 바오 닌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전쟁을 겪어야만 했던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처럼 저는 꿈꿉니다. 저는 바랍니다. 우리 이후 젊은 세대는 영원히 평화 속에 살기를, 영원히 무기와 작별하기를. …전쟁에 대해 쓰는 것은 바로 평화에 대한 사랑을, 삶에 대한 사랑을, 민족 서로간의 인도적인 마음을, 사람과 사람들 간의 연민의 정을 쓰는 것입니다.”

제주= 글·사진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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