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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생리대를 빌려본다면?

정지은 | 문화평론가

화제가 되었던 영상이 있다. 제목은 ‘중학생이 길에서 생리대를 빌려본다면?’ 말 그대로 중학생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생리대를 빌려보는 실험이다. 물론 실험자와 피실험자 모두 여성이다. 과연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에게 생리대를 빌려줄까? 결과는 놀라우면서도 예상대로였다. 도움을 거절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갖고 있지 않아서 빌려주지 못한 사람들을 빼고 다들 흔쾌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생리대를 꺼내 건넸다. 심지어 지금 갖고 있는 게 없는데 사줄 테니 같이 편의점에 가자고 말하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도움을 건넨 여성들은 이구동성으로 “나 역시 한번쯤 난감한 상황을 겪어봤고, 그럴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생리대를 빌려주면서도 그걸 돌려받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갑자기 생리가 시작되는 상황이 얼마나 난처한지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직설]길거리에서 생리대를 빌려본다면?

생리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건 노숙인들도 마찬가지다. 영등포역에는 지난해부터 역사 내 화장실에 생리대 나눔함이 설치되어 있다. 여성 노숙인들이 생리대를 살 경제적 여유가 없어 생리대 하나로 버티거나 화장지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울예대 학생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여성용품 나눔 캠페인’이다. 나눔함이 비면 누군가가 수시로 채워놓을 뿐 아니라 기부도 이어지고 있다는 훈훈한 소식이지만, 개인들의 선의에 기대고 있다는 한계가 명확하다.

2년 전 한 여중생이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서 신발 깔창을 대신 썼다는 사연이 기사화되면서 생리대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었다. 다행히 청소년복지지원법이 통과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여성 청소년에게 보건 위생에 필수적인 물품을 지원할 근거 규정이 마련되면서 올해 하반기부터 ‘생리대 바우처’가 도입되고, 약 15만명이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생각해보면 ‘깔창 생리대’부터 ‘생리대 유해성 논란’, 현직 소방관의 ‘피싸개’ 조롱 발언까지 최근 몇 년 사이에 ‘생리대’에 대한 논란이 거셌는데도, 제도적인 보완은 더디기만 하다. 생리대는 검은 비닐에 넣어 보이지 않게 들고 다녀야 할 만큼 생리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조차 꺼리는 통념이 여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청소년을 중심으로 지원되는 생리대 지원 범위가 경제적 약자들에게까지 넓어져야 한다. 개인의 선의나 일회성 프로젝트 지원이 아니라 복지 영역에서 의식주만큼이나 필수적인 영역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장기적으로 생리대 무상 보급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도 식료품 지원 센터로 음식을 받으러 간 가난한 싱글맘 케이티가 생리대는 없냐고 물으며 난감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생리대를 지원받지 못한 케이티는 결국 마트에서 생리대를 훔치다가 걸리고, 그 길로 성매매의 길에 빠져든다. 음식은 지원해주지만 생리대는 지원해주지 않는 복지제도의 허점을 보여준 장면이어서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사실 가난한 여성일수록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한데, 여성에게 필요한 지원은 누락되거나 제대로 검토조차 되지 않는 현실에 화가 났고,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마음놓고 생리대를 살 수 없어 속상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영국도 상황이 이런데 북한은 어떨까? 북한 여성들은 가제천으로 된 생리대(위생대)를 주로 써 왔고, 중국산 일회용 생리대도 수입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가제천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고, 중국산 화장지를 둘둘 말아 쓰는 경우도 있다니 얼마나 불편할지 뻔하다. “한번 사용하고 버릴 생리대를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살 필요까지는 없다”는 북한 여성들의 인식은 필수품인 생리대조차 사치품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잘 보여준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판문점선언이 발표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남북 교류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되는 요즘이다. 군사적 긴장 완화나 이산가족 상봉, 공동 문화행사 추진 등 굵직한 이슈도 많지만, 북한 여성들을 위한 생리대 지원도 교류의 흐름 어딘가에 꼭 포함되었으면 좋겠다. 길거리에서 모르는 이에게 선뜻 생리대를 건네주며 대가를 바라지 않던 한국의 평범한 여성들처럼 우리 정부도 북한 여성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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