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볼 작전" vs "또 속았다"..남북정상회담 전문가 평가

김현기 입력 2018. 4. 29. 13:01 수정 2018. 4. 29.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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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의 한반도 외교·안보·북핵 전문가 긴급 설문
북미회담에 긍정 영향 있지만 '동맹 이탈' 초래 우려도

"멋진 회담이었다. 그러나 잘 될지는 두고보자."
27일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바라보는 미국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의 반응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중앙일보는 찰스 암스트롱 컬럼비아대 교수, 제임스 액턴 카네기재단 핵 정책 담당 이사,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 해리 카자니스 미 국가이익센터 소장, 데이비드 라이트 참여과학자연맹 국제안보담당 국장 등 6명의 한반도 외교·안보 및 북핵 전문가들에게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판문점 선언에 이어 "북부 핵실험장 폐쇄를 5월 중으로 하고 이를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들을 북한으로 초청해 국제사회에 공개하겠다",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발언이 공개됐지만 미국 내에선 "남북, 나아가 미국과의 향후 관계에 매우 좋은 징조"(암스트롱 교수), "북한이 과거에 반복적으로 속여 온 것 그 이상이 아니다"(카자니스 소장)와 같이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다만 분명한 건 "이렇게 멀리 와 본 적이 없다. (북미회담이) 큰 성공을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기대보다는 보다 냉정한 평가가 많았다는 것이다.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

◇잘 된 점= 자누지 대표는 남북이 '스몰 볼(작전으로 점수를 내는 야구의 공격 전술)' 접근을 한 것이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홈런 한 방('완전한 비핵화' 로드맵까지 명기)을 노리기보다 현실적이고, 당장 가능한 목표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자누지 대표는 "서해와 비무장지대(DMZ)의 긴장을 줄이고, 인적 교류를 확대하고, 가을에 재차 남북정상회담을 열기로 약속한 것은 신뢰를 쌓기 위한 단계적이고 상호주의적 절차를 명확히 한 것"이라며 "그건 매우 현명한(smart) 것"이라고 말했다.
제임스 액턴 카네기재단 핵 정책 담당 이사

액턴 이사는 "지난해의 팽팽했던 긴장 상태를 생각한다면 이번 정상회담이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줄이는 데 매우 큰 진전을 이뤄낸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암스트롱 교수도 "많은 좋은 점들 중에 눈에 띄는 건 이번 정상회담이 1991년 12월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2007년 '10.4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공동선언'의 정신을 재확인했을 뿐 아니라 한국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을 대체하기 위한 대화를 공동 촉구했다는 점"이라며 "한반도 상황에 새롭고 지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라이트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합의에 자극받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쉬웠던 점= 자누지 대표는 "남북정상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한 부분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두 지도자들이 인권을 더 분명하게 이야기하길 바랬다"며 "앞으로 여러 접촉 창구가 생길 것이니 만큼 그 자리에선 한국이 북한 측에 그 문제(인권)를 반드시 제기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찰스 암스트롱 컬럼비아대 교수

암스트롱 교수는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그랬듯 이 합의들이 실제 이행될지, 나아가 남북관계가 개선될지 여부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북한이 좀 더 분명하게 핵 무기를 빠른 시일 내에 포기할 것이란 점을 밝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빅터 차 한국석좌는 "이번 정상회담은 비핵화에 있어 어떤 새로운 진전도 낳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액턴 이사는 "결국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 전체를 포기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며 "그런 관점에서 이번 합의문에는 그것에 대한 확실하고 구체적인(tangible) 진전은 (기대보다) 훨씬 적었다"고 주장했다. 라이트 국장은 "(남북정상회담 후에도) 워싱턴의 많은 사람들은 김정은이 과연 비핵화를 위해 나아갈 것인지 당연히 계속 회의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해리 카자니스 미 국가이익센터 소장

카자니아 소장은 "남북정상회담이 '게임체인저(Game Changer·판도를 뒤바꿔 놓을 중대한 역할)'일 것처럼 보였지만 솔직히 든 염려는 '우리가 또 다시 속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

◇북미정상회담에의 영향은=빅터 차 한국석좌는 "트럼프 입장에선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다음 큰 에피소드(트럼프-김정은 회담)를 위해 준비된 TV 쇼의 한 회와 같은 것이었다"며 "하지만 (이번 회담에서도) 비핵화에 대해 북한이 미국과 같은 시각(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 핵 폐기)을 가졌는지는 불분명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북한과 남한은 긴장완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선언이 (한반도) 위기를 피하는 조치이면서, 대북 군사옵션을 고려하길 원하는 '미국 매파'의 손을 묶을 수 있는 것으로 본다"며 "그런 관점에서 (향후) 미국이 북한에 군사행동을 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이면 그건 한반도에서의 '동맹 이탈(decoupling)'현상을 초래할 수(may create) 있다"고 말했다. 북미정상회담이 잘 끝나면 모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남북 대 미국'의 상황이 올 수도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데이비드 라이트 참여과학자연맹 국제안보담당 국장

라이트 국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미회담에 임하는 전략을 재조정할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번 회담으로) 워싱턴은 북한의 핵, 미사일 프로그램 중단과 최종적인 제거에 합의하기 위한 세부사항, 검증 방법 등을 조율하는 건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임을 알게 됐을 것"이라며 "비핵화를 위한 짧은 시한에 맞추려다 여러 이익(각 단계에서의 미국과 지역안보 향상·신뢰 구축)을 버리는 건 바보같은 짓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최종 목표(비핵화)를 바라보면서, 각 단계에서의 성공들을 어떻게 발판삼아 목표에 이를 것인지 알아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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