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수행원 물리고 30분 깊은 대화 '우리민족 운명은 우리가 결정'

손제민 기자 2018. 4. 27.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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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도보다리 단독 ‘벤치회담’
ㆍ전 세계에 생중계된 평화 메시지…고도의 정치적 의미 담아
ㆍ“북·미 정상회담 앞두고 주변국과 공유할 내밀한 얘기한 듯”

산책하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소나무 식수와 표지석 제막식을 한 뒤 수행원 없이 판문점 도보다리를 함께 산책하며 대화하고 있다. 판문점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역사적인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 중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수행원 없이 산책한 뒤 ‘도보다리’ 위에 앉아 단둘이 대화를 나눈 모습이다. 새소리 가득한 판문점 습지 위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30분 이상 진지하게 대화하는 모습은 그 자체가 전 세계에 보내는 메시지다.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의도가 엿보였다. 실제 이 내용은 잠시 후 발표된 판문점선언에 담겼다. 그러다보니 ‘도보다리 단독 벤치회담’이라는 말이 나왔다.

두 정상은 오후 4시35분 나무심기를 마친 뒤 수행원들을 물리고 도보다리로 이동했다. 도보다리는 1953년 정전협정 직후 중립국감독위원회가 판문점을 드나들 때 동선을 줄이기 위해 습지 위에 만든 다리로 이번 회담의 친교행사를 위해 특별히 보수됐다. 다리 중간의 군사분계선 지점까지 천천히 이동한 두 정상은 찻잔이 놓인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문 대통령은 등진 모습만 보였고, 김 위원장은 얼굴이 보였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수행원들도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멀찍이 서 있어야 했다. 김 위원장의 표정은 처음에는 심각해보였고, 뒤로 갈수록 웃음을 띠어갔다. 이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됐지만, 대화 내용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오후 5시15분 김 위원장은 대화를 마치고 수행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수행원들에게 웃으며 “많이 기다리셨습니까”라고 묻기도 했다.

이날 도보다리 대화는 남북이 애초 예고했던 오후 평화의집 단독회담을 장소를 옮겨 진행한 셈이다. 이 장면을 오랫동안 보여준 것은 의도적이며 고도의 정치적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남북 정상 간에 솔직하고 속깊은 의견 교환이 있었다는 것을 주변국들에 과시하는 효과가 있다. 물론 두 정상이 이날 발표한 판문점선언만으로도 미국이 듣고 싶어하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이 담겼다.

하지만 두 정상은 그 이상의 깊은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주변국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냈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의 중장기적인 계획에 대해 심도 있는 얘기를 주고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우리도 대화 내용이 궁금할 뿐”이라고 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이날 “두 정상이 공동발표한 선언문 내용은 원론적인 것이며, 회담을 통해 주고받은 대화는 매우 내밀한 얘기까지 포함한다”며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향후 미국 등 주변국들과의 협의 과정에서 일정 부분 공유할 내용들”이라고 했다.

이날 두 정상이 벤치회담에서 나눈 대화 내용은 향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문 대통령이 미국 등에 활용할 중요한 지렛대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두 정상은 앞서 10시15분부터 1시간40분가량 평화의집에서 소인수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 옆에는 남측의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북측의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김영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만 배석했다. 당초 공식수행원들 수를 감안해 배석자 자리를 6개씩 마련했지만 집중적인 논의를 위해 소수만 참석한 채 다른 수행원들은 다른 방에서 대기했다.

이 자리에서 두 정상은 오후에 발표할 판문점선언의 초안을 대략적으로 확정한 뒤 실무자들에게 넘겼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두 정상은 이 회담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 남북관계의 발전 방향에 대해 시종 진지하고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손제민 기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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