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가 다 똑같지, 토종벼는 뭐가 다른가요?

원동업 2018. 4. 2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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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농장 이근이 농장장이 토종벼 나눔 하던 날

[오마이뉴스 원동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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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쌀밥 한 공기면, 어느 반찬이든 훌륭한 식사가 될 수 있습니다. 달달한 간장을 넣어 졸인 깻잎도, 구수한 된장찌개나 적당히 윤기가 밴 돼지고기 김치찌개나 달걀찜이나 불고기도 상관없죠. 그러니 100가지 반찬을 돋보이게 하는 건 늘 담백한 '쌀+밥'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더구나 누천 년 이어왔을 우리 땅의 우리 쌀에 대해서는? 지난 4월 21일 경기 고양 벽제에 있는 우보농장에 다녀왔습니다. 이곳 이근이 농장장이 우리 동네 성수동 언더스탠드 에비뉴에서 꾸준히 진행돼 온 마르쉐를 주도해온 분인 걸 알고 있었거든요. 100가지 우리 토종벼 종자를 나눔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놀랐습니다. 100가지 쌀이라니? 

한 알의 나락에서 다시 1천 알의 나락이 열린다. 어떤 이들에게는 밥이 되고, 어떤 이들에겐 예술작품이 될 한 평생이 곧 펼쳐질 것이다. ⓒ원동업
밥이 되거나 천 배로 늘어날 씨앗이 되거나

실은 쌀에 대해 거의 모릅니다. 쌀은 나무가 아니라는 것, 물밭(논)에서 자란다는 것, 볍씨서 모가 나고, 모가 벼로 자라 쌀이 되고 밥을 짓는다는 것 정도는 알죠. 벼 껍질을 벗기는 정도에 따라 현미로부터 3분도 5분도 7분도 9분도 이렇게 백미가 되어가는데, 백미가 될수록 영양분은 떨어지지만 맛은 '나아진다(달고 부드럽고)'는 것도 알죠. 그런데 오늘 충북 괴산서, 전남 나주서, 광주에서, 논산에서, 인천에서, 가평에서, 춘천에서... 그러니까 전국서 모인 농부들 곁에 있다보니 귀동냥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먹는 쌀은 곧 종자이기도 합니다. 농부아사 침궐종자(農夫餓死 枕厥種子)라 했죠. "농부는 굶어죽을지언정, 종자를 베고 죽는다." 볍씨 한 줌 종자는 그저 한 끼 밥으로밖엔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땅에 심어 가꾸면 한 알은 천 알이 되어 돌아옵니다. 옥수수는 3백 알쯤, 수수는 3천 알쯤 되듯 말입니다.

나락(벼의 씨, 볍씨)을 쌀로 만들려면 절구질(정미소가 없더라도 가능하죠)이 필요합니다. 쌀이 부서지지 않게 마찰력만으로 껍질을 까려면 기술과 공력도 모두 필요합니다. 그런 다음 키질로 겨를 까부기는 거죠. 그럼 쌀알만 남습니다. '나락'을 씨앗으로 만들자면 다른 공정이 시작됩니다. 우보농장 이근이 농장장의 말을 들었습니다. 

"처음 심는 분들이 계실 테니 말씀드리죠. 볍씨는 지역에 맞는 걸 선택해 가세요. 1914년에 일본 조선총독부가 3년 동안 우리나라 벼품종 조사를 했어요. 그때 발표한 <조선도품종일람> 품종이 1451종이었거든요. 거의 동리마다 자기네 품종이 있었다는 거예요. 종자는 지역에 따라 달리 정착돼 왔어요. 종자를 물에 넣어 우선 쭉정이를 거르세요. 그 다음 열탕소독을 하면 좋아요. 60도씨를 유지해서 10분간! 키다리병이 생기면 쭉정이가 번지는데 이걸 방지할 수 있어요. 물에 종자를 담궈놓는 걸 침종이라고 해요. 5일에서 7일 사이에 100도씨 '온도를 쌓아야' 해요. 5일 동안 20도씨를 유지하는 거죠. 15도씨면 약 7일쯤, 이런 거죠. 싹이 나면 그 상태로 모판에 심어요. 대개 씨앗 두께의 2배 정도로 흙을 덮어주면 되요. 다른 씨앗들처럼."

한번은 일제가, 한번은 우리가 토종쌀을 대량 퇴출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근이 농장장은 2011년, 30종의 토종볍씨를 논에 심었습니다. 한 줌 씨앗이 세 평의 땅에 촘촘히 심겼죠. 바람 앞의 불씨를 입김으로 살리고, 두 손으로 막아 지키는 것처럼 말이죠. 이 땅 곳곳에서 토착화돼 온 토종벼들은 지난 100여 년 동안 두 번의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첫 번째는 일제시대, 군국주의 전쟁의 병참 군량미를 위해 일본 품종으로 통째 갈리게 된 일입니다. 1960~1970년대 박정희 정권 때는 도시화 이농정책으로 (증산을 위해) 통일벼로 '통일'합니다. 두 번째 위기였죠. '더 많이 생산하고, 더 편하게 농사짓고, 병충해에도 강하게' 하기 위해 개량된 벼들이 전국의 논에 등장했습니다. 어쩌면 농부들 역시 그걸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왼편; 이소요 작, 흑갱, 우보농장서 채취했다. -2017 보안여관 쌀 展. 오른편; 수염처럼 보이는 것이 까락이다. 볍씨 무주도는 붉은 나락과 까락이 무성해 붙여진 이름인 듯. <토종벼품종 설명>_이근이 ⓒ보안여관_우보농장
토종벼들은 어떤 식물들이었을까요? 이근이 농장장이 뽑는 토종벼의 첫 특징은 까락입니다. 쌀 낟알 하나하나마다 길다란 꼬리처럼, 어쩌면 용수염처럼 길게 터럭(모든 토종벼가 이런 것은 아닙니다만)을 내고 있습니다. 벼가 자란 가을의 들판을 '황금벌'로 이야기하지만, 토종벼는 빨강 파랑 노랑 흰색 그리고 검정의 오방색을 띠고 있습니다.

종자의 이름도 다양하죠. 색깔별로 금나, 붉은차나락, 홍두나가 있고, 모양을 따라 각씨나, 단두나, 버들벼, 졸장벼도 있습니다. 돼지찰, 까투리찰, 장끼찰처럼 동물을 따라 짓거나 대궐찰, 대궐도, 한수진도처럼 활용에 따라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늦게 자라면 만생종 늦벼, 일찍 자라면 조생종 올벼라고 하구요. 용천 메벼도 있고, 충북 흑미, 평안북도 평북처럼 지역을 알려주는 벼도 있습니다. 지역의 이야기, 자신의 생이 담겨있는 역사문화의 보고자(報告者)로서, 보고(寶庫)로서 토종벼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근이 농장장은 썼습니다. 

"2016년 대한민국에서 생산된 쌀은 약 420만 톤 가량 된다. 그중 토종벼로 재배된 수량은 약 5톤. 약 0.000001% 남짓밖에는 되지 않는다. 까락은 높이 자라면서 새들과 곤충들로부터 벼 자신을 보호하고 가뭄을 버티고, 동물의 털이나 바람에 날려 종족을 퍼뜨리던 생존의 도구였다. 하지만 탈곡과 도정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제거되었다. 토종벼들은 키가 크다. 씨앗으로 변식하기 위해, 풀들보다 웃자라 태양을 받기 위해, 볏짚을 얻기 위해 스스로 혹은 농부들은 선택해 온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개량종 벼들은 키가 일정하다. 양수기로 물을 공급하고, 해충은 농약으로 해결하고, 번식은 개량으로 처리한다. 토종벼를 지으려면 그래서 야생성을 살리는 전통농법, 즉 생태농법을 익혀야 한다."
그는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와 토종벼네트워크를 설립한 활동가이고, <2018 토종벼품종 highlight>를 쓰고 정리한 편집자고, 장기적으로 세계토종벼대회를 꿈꾸고 있는 기획자이기도 하다. ⓒ원동업
석유, 농약, 비료로 키우는 현대의 쌀 대신 전통농업 선택하다

토종벼들은 현대의 농법으로는 잘 자라지 못합니다. 비료가 투입되면 웃자라 쓰러지게 됩니다. 심지어 지난해 현대식으로 농사지었던 땅에서도 남은 비료의 영향으로도 그렇게 됩니다.

'옛 쌀에 해와 빗물과 땅과 사람(똥과 손길)-천지인-이 담겼다면, 현대의 쌀엔 석유와 농약과 비료가 담겼다'는 게 틀린 말이 아니죠. 비닐로 밭을 덮고, 제초제와 농약을 쳐야하고, 공장서 나온 비료를 줘야만 상품으로서의 농작물이 나오니까요.

토종볍씨를 나눈 날, 보안여관에서 쌀 관련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던 김재민이 작가는 "대추벼, 보리벼, 황조, 돼지찰을 고이 받아" 갔습니다. 아버지 고향인 황해도 연안면에서 자라는(자랐던) 씨앗들입니다. '잘 키워 아버지에게 밥 한 공기를 올려보는 것'이 그의 올해 혹은 내년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의 친구인 싸이드 핫산의 아버지는 파키스탄 사람입니다. 거기서 쌀농사를 지었다고 하죠. 싸이드의 꿈은 아버지가 파키스탄서 보내준 볍씨를 한국서 심어 키워보는 것입니다. '용감한 어르신 농장'서 오신 최영자 님은 세상을 떠난 아들 대신 이 씨앗들을 정성스레 땅에 심을 것입니다.

우보농장은 이제는 폐역이 된 벽제역에서 장흥관광지로 향하는 39번 호국로상에 있다. 도로를 따라 달리다 우회전 하면 곧바로 산 아래 다랭이논과 두엄더미, 비닐하우스, 퇴비가 놓인 우보농장을 만난다. ⓒ원동업
작물학과 식물학을 공부한 학자 농부이자 흙살림 토종연구소 윤성희 같은 분이나, 아직 정미기계를 갖다 놓지는 못했으나 정미소를 차린 광주 청년이나, 아이들과 함께 벼농사를 일년 동안 짓고자 하는 가평의 어느 땅에서, 이복자 선생이 운영하는 씨드림 같은 경기도 곳곳의 텃밭에서도 이 토종벼들은 자랄 것입니다.

그리고 혜화동 혹은 성수동의 마르쉐 장터에선 우리 토종벼로 빚은 막걸리를 보게도 될 것입니다. 누룽지도 나오고 조청과 식혜도 나오겠고요. 개량종 벼들과 쌀로는 경쟁이 어려우니, 좀더 친근한 상품적 접근을 하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100여 종 씨앗을 나누는 그 자리는 특별했습니다. 씨앗을 받아온다 생각하니, 마음이 설?습니다. "한 알을 열 배로 키워 갚으라!"니, 책임감은 무겁게 졌습니다만. 그간 아무것도 모르고 쌀밥 잘 먹고 살았습니다. 토종벼를 알게 되었다고, 한 끼 더 밥을 먹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쌀로 남과 북이 만날 수 있다는 것, 전세계 토종벼들의 대회가 언젠가 한국에서 열릴 수 있다는 것, 쌀 한 포기의 개성과 아름다움에 반해 이를 예술작품으로 만든 이들이 있다는 것. 땅의 역사를 품고 100도씨를 쌓아갈 다양한 땅의 볍씨들과 그들을 지키는 농부들이 있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은 큰 기쁨이 됩니다. 내게도 당장 싹틔울 수 있는 토종벼들이 한 줌이나 있다는 것을 포함해서.

참, 이근이 농부와 활동가 이예호는 지금 '노마드농부의 토종쌀 자급자족 프로젝트(https://farmingfund.co.kr/products/2675)'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8년 한 햇 동안 함께 농부가 되어 토종쌀 농사짓고, 농사 워크숍하고, 적당히 몸 움직이고 좋은 사람들과 식사하고 이야기꽃 피우는 행복을 드립니다. 논 공동체는 4월 28일 토요일 1차 모임이 열립니다. 우보농장서 침종한 나락은 올 주말쯤 싹을 틔울 것입니다. 0.000001% 클럽에 함께 하실래요?
비닐도 안 쓰고, 제초제 농약도 안 치고, 화학비료도 주지 않고 농사짓는다. 토종볍씨는 전통농법이 딱 맞는다. ⓒ우보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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