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판문점의 과거 인연 '도끼 만행사건'

이가영 입력 2018. 4. 27. 08:41 수정 2018. 4. 27.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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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에 사용된 도끼를 들고 사건을 설명하는 모습. [사진 국가기록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민족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집에서 회담을 갖는다.

문 대통령은 이곳에서 ‘평화, 새로운 시작’을 모토로 한반도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해 회담을 진행하지만 그가 과거 판문점으로 향했을 때 남북관계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다.

문 대통령과 판문점의 인연은 4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 UN군 제3초소 인근에서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이 휘두른 도끼에 살해되는 이른바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이 발생했다.

살인을 한 북한경비병들이 무저항의 유엔군에게 몽둥이질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들은 북측 초소를 가린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고 있었고, 북한군은 작업 중단을 요구했다. 미군이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계속하자 북한군 무장병력 30명은 미 육군 보나파스 대위와 소대장 마크 배럿 중위를 도끼로 살해했다.

이에 UN은 8월 21일 미루나무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폴 버니언 작전’에 나섰다. 한·미 당국은 ‘데프콘2’를 발령해 전면전에 대비했다.

미루나무 제거 작전 당시 모습.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에서 이 작전에 투입됐다고 밝혔다. [중앙포토]
당시 공수부대 소속 상병이었던 문 대통령은 이 작전에 투입됐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 『운명』에서 “나무를 자를 때 북한이 제지하거나 충돌이 일어나면 바로 전쟁이 발발하는 상황이었다”며 “최정예 요원들이 미루나무 제거조로 투입되고 나머지 병력은 외곽에 배치됐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북한군은 우리 군의 활동을 제지하지 않아 작전이 무사히 완료됐다. 문 대통령은 “그때 잘라온 미루나무 토막은 기념물로 만들어져 ‘국난(國難)극복 기장(紀章)’이라고 하나씩 나눠줬다”고 설명했다.

이후 김일성이 직접 유감을 밝히면서 전쟁 위기는 일단락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공동경비구역(JSA) 안에도 군사분계선이 그어졌다.

이전까지는 UN군과 북한군이 혼재되어 경비를 서는 공동경비구역이었으나 우발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이때부터 남북의 경비 구역을 분리했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도 폐쇄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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