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림동의 아프리카] 욕설·조롱 예사.. 신분상 약점 이용해 임금체불도

이형민 김지애 기자 입력 2018.04.2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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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취업현장 관리 사각
아프리카 출신 난민신청자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서울 영등포구 대림역 근처 직업소개소를 찾아가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조선족이 맡았던 3D업종 제3세계 출신으로 대체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에도 항의 한번 못하고 쫓겨나
합법적 취업 방법도 없어

나이지리아 출신 난민신청자 M씨(32)는 경기도 이천의 인테리어 물품 공장에 취직해 1년 넘게 일하다 지난 3월 해고됐다. 고국에 있는 부친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다녀오겠다”고 말한 게 문제가 됐다. 사장에게 출입국 날짜가 정해진 항공편 티켓을 보여주며 “금방 다녀오겠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불평을 할 수 없었다. 합법적으로 일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출신 외국인들이 난민신청자 신분으로 일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만은 없다. 이들은 비자제도의 허점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보호를 받지 못하고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기도 한다.

M씨는 공장에서 일할 때 수시로 욕설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26일 “내가 한국말을 못하니 공장 사람들은 수시로 ‘씨X’ 같은 욕설을 일삼았고 ‘한국말로 해봐라’며 조롱했다”고 전했다. 사장은 누워서 작업하고 있던 그의 얼굴에 나사부품을 던지기도 했다. 항의하는 M씨에게 사장은 “자는 줄 알았다”고 대꾸했다.

카메룬 출신 난민신청자 J씨(23·여)도 지난 2월 경기도 평택의 한 종이공장에서 일하다 “내일부터는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난민비자를 받고 6개월이 지나지 않은 상황이라 어떤 항의도 할 수 없었다. 난민신청 후 6개월이 지나 법무부에 취업 승인을 받아야만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다. 에티오피아 출신 난민신청자 R씨(29)는 경기도 평택의 한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기계를 옮기다 팔꿈치에 부상을 입었다. 그도 난민비자를 받은 지 6개월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법으로 취직했다. R씨는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회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혼자 상처를 치료했다.

기껏 일하고 임금을 못 받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난민인권단체 관계자는 “난민심사 과정에서 도움을 얻기 위해 상담을 요청하는 난민신청자들 중 임금체불을 당한 사람들도 많았다”며 “소송을 걸기 어려운 난민신청자들의 신분상 약점을 이용해 일부러 임금을 주지 않는 고용주들도 있다”고 했다.

난민신청자는 매년 급증하고 있지만 법무부 난민심사 전담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난민법이 처음 제정된 2013년 난민신청자는 1574명이었으나 지난해에는 9942명으로 6배 늘었다. 올해는 3월까지 난민신청한 인원만 399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8% 증가했다. 연말까지는 사상 처음으로 연간 난민신청 인원이 1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누적 난민신청자는 3만6000명을 넘어섰다.

편법 취업에 나서는 난민신청자가 늘수록 심사 적체도 심해진다. 지난 3월 법무부 난민심사 담당자가 5명 증원됐지만 그래도 29명이 국내의 모든 난민신청을 심사해야 한다. 6개월로 정해진 1차 난민 심사기간이 지나도 결정을 못 내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취업 승인 절차도 유명무실하다. 난민비자 소지자가 합법적으로 일하려면 취업할 곳의 사업자등록증과 고용계약서 사본을 법무부에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지난해 난민신청자의 취업 승인은 5944건뿐이었다. 다수의 난민신청자들은 고용계약서는커녕 사업자등록증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반면 이들을 채용하려는 곳은 늘고 있다. 위험하고 임금이 낮은 일자리들을 찾았던 조선족이나 한족 중국인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빈자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대림동의 아프리카인들을 취재하면서 고국의 정치적 탄압을 피해서 이곳까지 온 난민이 아니라 취업을 위해 한국을 찾아온 구직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아프리카인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한국에 가서 난민신청만 하면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며 편법을 부추기는 내용이 떠돌고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인들이 한국의 일자리를 찾아 몰려오는 현상을 피할 수 없다면 이들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대책이 필요하다. 한 난민인권단체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고용허가제가 있지만 아시아권 국가 12개로 한정돼 있어 아프리카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은 합법적으로 국내에 취업할 수 있는 길이 없다”며 “난민신청 제도를 편법적으로 활용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형민 김지애 기자 gilels@kmib.co.kr

사진=곽경근 기자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