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알 스파이크, 건반 위에서 나와요
"시합 스트레스 풀려고 60만원짜리 전자피아노 샀더니 아내가 '여보 많이 힘들어?'"
팝 가수 빌리 조엘의 명곡 '피아노 맨' 가사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피아노 선율을 들으며 지친 삶을 위로받는다. 치열한 인생에 짧은 휴식을 주는 안식처. 음악엔 그런 힘이 있다.
2017~2018시즌 프로배구 정규 리그 MVP에 오른 신영석(32·현대캐피탈)도 그 힘을 안다. 최근 서울 선유도공원에서 만난 신영석은 공원 한쪽에 설치된 피아노를 보고 반색했다.
"야외에서 연주하는 건 처음이라 긴장되네요. 매일 혼자 방에서만 건반을 눌러봐서…."
그가 요즘 한창 즐겨 친다는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OST '첫 키스' 멜로디가 공원에 울려 퍼졌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잠시 발길을 멈추고 돌아봤다. 키 198㎝ 거구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묻어났다.
신영석이 피아노를 처음 접한 건 2011년이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 소리를 동경했던 그는 프로 무대에서 안정을 찾을 무렵 무작정 전자 피아노를 구입했다고 한다.
"하고 싶은 건 못 참는 성격이거든요. 주변에서 다들 제게 '미친 X'이라고 했습니다(웃음). 배구 선수가, 그것도 생전 안 쳐 본 피아노를 갑자기 친다니까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죠."
연습은 '맨땅에 헤딩'이었다. 신영석은 "도레미 음계의 건반 위치도 몰라서 온라인 동영상 속 손가락 모양을 그대로 흉내 냈다"며 "수없이 음악을 들으며 연습해서 한 달 만에 첫 곡을 카피했다"고 말했다. 2014년 상무 입대 후 건반에서 손을 뗐던 그는 올해 1월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현대캐피탈이 리그 선두를 질주하던 때에 외도(外道)였다.
"제 삶에 여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충동적으로 60만원짜리 전자피아노를 샀습니다. 그런데 신용카드 사용 내용 문자를 본 아내에게서 바로 연락 왔어요. '여보, 요즘 많이 힘들어?'라고."
신영석은 프로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배구 대통령'이란 별명을 얻었다. 주로 '조연' 역할인 센터 포지션 선수가 리그 최우수 선수로 선정된 건 그가 처음이다. 신영석은 "평소 피아노 연주로 스트레스를 푼 게 큰 힘이 됐다"고 했다.
하루 30분, 피아노를 연주하는 시간만큼은 무아지경에 빠진다. '왕초보' 수준이던 피아노 실력은 이제 악보를 보고 웬만한 곡을 칠 수 있을 정도로 늘었다. 즐겨 치는 곡은 애니메이션 OST인데, 최근엔 피아니스트 이루마의 'May be'도 연습하고 있다.
평소 호기심 많은 신영석은 얼마 전 다른 취미에도 눈을 떴다. 바로 영어 공부다.
"세계 유명 여행지에 다 가보는 것이 꿈이거든요. 그러려면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할 줄 알아야겠더라고요. 테니스 정현 선수가 유창하게 영어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너무 멋졌습니다. 요즘 조동사를 배우는데…뒤늦게 공부하려니 쉽지 않네요."
그는 매일 밤 11시부터 30분 정도 영어 공부를 하고 잠든다. 은퇴 전까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게 목표란다. 신영석은 "주요소나 편의점 아르바이트, 고깃집 서빙도 해보고 싶다. 배구 선수 아닌 다른 사람이 어떤 세상을 살아가는지 너무 궁금하다"고 했다.
다시 피아노 얘기로 돌아왔다. 그가 생각하는 배구와 피아노의 공통점은 뭘까.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어요. 피아노도 그렇지만 제가 평생 해온 배구도 너무 재미있죠. 앞으로 더 잘하고 싶어요. 둘 다 제가 사랑에 빠진 상대죠."
코트 위 '피아노 맨'의 다음 시즌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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