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진은 지열발전 시추·물 주입에 의한 유발지진"

2018. 4. 2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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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진한·김광희·김영희 교수팀
과학저널 <사이언스> 논문 게재
"유발지진 진단 요소 4가지 일치해
지열발전이 지진 원인 거의 확실"

스위스·독일·영국팀도 비슷한 결론
학계 자연지진 vs 유발지진 논란 재점화
정부연구단 "직접 증거 확증연구 필요"

[한겨레]

경북 포항시에 건설중이던 포항지열발전소 공사 현장. 2017년 11월15일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이 지열발전에 의해 유발됐다는 논란이 일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사이언스> 제공

지난해 11월15일 발생한 규모 5.4의 포항지진은 지열발전을 위한 시추와 물 주입이 원인으로 분석된다는 국내외 연구팀의 논문 2편이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렸다.

이진한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와 김광희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 김영희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공동연구팀은 26일 “포항지진이 지열발전소의 유체 주입으로 인해 발생한 유발지진이 거의 확실하다는 것을 지진학, 지질학, 지구물리학 증거를 종합해 입증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의 논문은 이 날(현지시각)치 <사이언스> 온라인판에 실렸다.

또 스위스 연방공과대학(ETH), 독일 지질연구센터(GFZ), 영국 글래스고대 등 국제공동연구팀이 별도 연구를 통해 포항지진이 유발지진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힌 논문도 이 날치 <사이언스>에 나란히 실렸다.

포항지진은 지난해 11월15일 오후 2시29분 포항시 북구 북쪽 8㎞ 지점에서 발생해 90여명이 부상하고 560억여원이 재산 피해가 났다. 이는 한반도에서 1905년 계기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후 피해 규모가 가장 큰 지진이다. 포항지진 진앙 인근에 포항지열발전소가 위치해 지진 발생 직후 지열발전을 위한 물 주입이 지진의 원인이라는 논란이 일었고, 학계에서도 유발지진 여부를 놓고 논쟁이 빚어졌다. 포항지열발전소는 2010년 12월 시작된 신재생에너지개발사업의 하나로 2012년 여름부터 시추 작업을 벌여 두 곳에 주입공을 뚫었다. 포항지열발전소는 인공으로 지열 저류층을 만들어 발전하는 ‘인공저류지열시스템’(EGS) 방식으로, 2016년 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1만3천여㎥의 물을 주입하고 다시 5841㎥의 물을 뽑아 올렸다.

한국 연구팀이 포항지진을 유발지진으로 보는 근거는 지열발전을 위한 물 주입 시기와 지진 발생과의 시간차, 주입공 위치와 진원 사이 거리, 주입공 깊이와 진원 깊이, 주입공 위치와 지진을 일으킨 단층 위치의 비교 등이다. 우선 연구팀은 지열발전용 주입공을 시추한 이후 150여 차례의 미소지진이 발생한 데 주목했다. 이 지역은 기상청이 과학적 계기지진 관측을 시작한 1978년부터 2015년까지 규모 2.0의 지진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2006~2015년에 규모 1.2~1.9의 지진이 6건 관측됐을 뿐이다. 특히 주입공에 4번에 걸쳐 물을 주입할 때마다 며칠 뒤 미소지진이 발생했다. 물 주입이 끝난 뒤에는 미소지진이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두번째로 2개의 주입공 위치와 진앙이 매우 가까웠다. 국제공동연구팀이 자체적으로 관측한 자료를 바탕으로 진앙의 위치를 재계산한 결과 본진·여진의 진앙 위치가 지열발전소의 2㎞ 이내에서 발생했다.

한국 연구팀은 또 주입공 깊이와 진원의 깊이가 비슷하다는 점을 유발지진의 증거로 제시했다. 지열발전소 쪽은 각각 4382m와 4348m 깊이의 시추공을 뚫었다. 본진 진원의 깊이는 5㎞로 주입공 깊이와 거의 같다. 이는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지진들의 진원 깊이가 10~20㎞인 것에 비해 상당히 얕은 것이다. 2016년 경주지진의 진원 깊이도 14㎞였다. 국제연구팀도 “2017년 11월15일부터 11월30일 사이에 관측된 본진과 46개 여진은 3~7㎞ 깊이에서 발생한 것으로 이 지역에서 발생한 자연지진에 비해 특이하게 얕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연구팀이 추정한 지진의 원인 단층이 주입공 하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는 점이다. 국제연구팀은 위성레이다간섭법(DInSAR·인공위성의 반복 주기를 이용해 대상물의 3차원 정보를 구하는 방법)을 이용해 지표의 변위를 측정해 단층의 위치를 계산한 결과 주입공의 하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 연구팀은 물이 단층대에 직접적으로 주입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진한 교수는 “유발지진 전문가인 미국 텍사스대의 클리프 프로리치 교수는 2016년 논문에서 유발지진 진단법을 제시했다. 포항지진을 이 진단법에 적용해보면 유발지진임이 거의 확실하다”고 말했다. 프로리치 진단법은 △물 주입과 지진 시간 △주입정과 진앙 거리 △주입정과 진원 깊이 △주입정과 단층 위치의 일치 여부와 △관련 논문 발표 여부 등 5가지 사항으로 유발지진 여부를 점수화(각 1점)해 총점이 4~5점이면 유발지진이 거의 확실한 것으로 평가하는 방법이다. 이 교수는 “네가지 항목이 모두 1점에 해당하고 이번 논문 발표로 총점이 5가 돼 포항지진은 유발지진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김광희 교수도 “유발지진의 4가지 증거가 우연히 발생하기는 힘들다. 사이언스 심사위원들이 논문 게재를 채택한 것은 연구팀이 제시된 자료들에 대한 타당성이 확인된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국제연구팀은 규모 5.4의 본진이 발생하기 7개월 전인 4월15일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하고 본진도 마지막 주입·배출 활동이 이뤄진 지 두 달 만에 일어난 점에 대해 “두 지진이 서로 매우 가까운 위치에서 발생했고, 이 지점은 지열발전소와도 인접한 곳이다. 유발지진은 물 주입의 끝난 뒤 며칠에서 몇 달 뒤에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애초 포항지열발전소 건설 당시 별도의 지진측정기(가속도계)를 지열시설 관측정에 설치해 지진을 측정해왔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본진이 최대 5㎝의 지표에 변위를 일으켰는데, 지진을 발생시킨 단층은 주입공 바닥 아래를 직접 통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또 2016년 9월12일 발생한 규모 5.8의 경주지진이 포항지진을 일으킨 단층에 미친 응력은 매우 미약한 것(0.0005Mpa·메가파스칼·1 파스칼은 1㎡당 1뉴턴의 힘이 작용할 때의 압력)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포항지진이 양산단층의 재활성화에 따른 것으로 분석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포항지진은 양산단층에 0.015의 응력을 미쳐 이 지역의 지진 발생 가능성을 높였다”고 말했다.

두 연구팀의 논문이 포항지진의 원인 규명에 큰 진전을 보인 것으로 평가되지만 논란의 마침표를 찍기에는 부족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강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대한지질학회장)는 “지열발전과 포항지진의 연관성을 명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지진이 발생한 지점에 지진을 유발시킬 만한 충분한 공극압과 임계점에 가까운 지중 응력이 형성돼 있었는지에 대한 증거가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국내외 전문가로 구성한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 분석 연구단’의 총괄연구책임을 맡고 있다. 연구단은 내년 3월까지 1년 동안 기상청,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 연구단 등의 지진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지진원을 분석하고 물리탐사와 원격탐사자료 등을 바탕으로 단층의 기하학적 구조를 조사할 계획이다. 이 교수는 “유발지진에 대한 논란은 공식 조사연구단의 직접적이고 정량적인 연구 결과가 나와야 결론을 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계산하는 자료가 정확해야 한다. 주입공에 센서를 넣어 측정하는 방법을 쓰려 한다”고 말했다. 연구단은 지진이 유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주입공에 물을 주입하는 대신 현재 지하에 남아 있는 물을 빼내면서 자료를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포항지진이 유발지진으로 확인되면 지열발전에 따른 지진으로는 가장 큰 규모로 기록된다. 지금까지 지열발전에 따른 규모가 가장 큰 유발지진은 2006년 스위스 바젤에서 발생한 규모 3.4의 지진이었다. 이진한 교수는 “지금까지 인공저류지열시스템(EGS) 등 심부 지열발전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압의 수리자극법을 이용해 규모 3.5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학계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포항지진으로 그동안 학계에서 통용된 지진규모와 물 주입량 관계식이 틀릴 수 있음을 입증됐다”고 말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아서 맥가르는 2014년 논문에서 유체 주입량과 유발지진 규모의 관계식을 제시했는데, 포항지진 정도의 지진이 발생하려면 물을 470만㎥를 주입해야 한다. 이는 포항지열발전소에서 실제 주입한 물보다 810배 많은 양이다. 이 교수는 “응력이 쌓인 단층에 직접적으로 물이 주입되면 이론적으로 예측한 것보다 훨씬 큰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해 12월 미국 학회에서 맥가르 박사를 만나 얘기했더니 본인도 깜짝 놀라면서 계산식을 다시 만들어야겠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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