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가장 두려운 존재.. 당신은 누구의 지옥인가?"

정상혁 기자 2018. 4. 2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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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지옥이다' 작가 김용키 "6년 전 고시원 생활 경험 담아"

"타인은 지옥이다." 일찍이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남긴 이 유명한 선언은 반세기를 지나며 전 지구적 테제가 됐다. "책에서 읽고 늘 머릿속에 담아둔 말이었다. 타인은 내가 아니기에 가장 두렵고 난해한 존재다. 그 존재 자체의 공포를 보여주고 싶었다." 지난달 연재를 시작해 가장 뜨거운 웹툰으로 꼽히는 '타인은 지옥이다'의 작가 김용키(29·본명 김용현)가 말했다.

25일 타인으로 이글대는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 선 만화가 김용키. “100화정도의 연재를 끝내면 가장 건조하고 현실적인 생활 만화를 그려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홀로 상경해 허름한 고시원에서 지내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주를 이룬다. 건달, 은둔형 외톨이, 소시오패스 등이 서로를 견제하며 이어가는 싸늘한 일상. "6년 전 서울 은평구 고시원 거주 당시 경험을 담았다"고 했다. "보증금 없이 월세 19만원짜리 비좁은 공간이었다. 타인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들렸다. 싫은 소리 한마디 했다고 라면 끓이는 내 뒤에 몰래 서서 한참이나 노려보던 204호 남자 등은 현실 경험과 거의 흡사하다." 실제 몸담은 디자인회사 생활도 만화에 담았다. "누가 내 등에 침을 뱉어놓은 걸 늦게 깨닫고 무척 화가 났던 적도 있다. 인간관계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이다. 그러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지옥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생각이 만화를 태동시켰다. 지난해 애인에게 배신당하고, 일감도 떨어졌다. "안 좋은 일이 겹치면서 우울증 비슷한 게 왔다. 극심한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만화가 지망생을 위한 '도전만화' 게시판에 이 작품을 올렸다. 연재 4회 만에 정식 연재 제의가 왔다. "스릴러 장르이다 보니 '소름 돋는다'는 평을 보면 힘이 난다. 타인을 움직였다는 쾌감."

웹툰 속 고시원에 사는 등장인물들. /네이버

스릴러 만화는 처음이다. "이제야 적성을 찾았다"는 그는 2014년 '우주교도소 바다붐'으로 데뷔했다. 외계인 교도소를 그린 귀여운 코믹 만화였다. "습작 시절부터 줄곧 코믹 만화만 그렸는데 심리 상태가 변하니 만화도 변했다. 평소와 달리 채색 없이 창백한 푸른색 배경에 흑백톤으로, 선을 가지 치듯 지저분하게 그렸다. 건조하게 신경질적으로." 주로 영화에서 영감을 얻는 편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작품을 좋아한다. 평이하게 전개되다 후반부에 광기가 전면적으로 폭발할 것이다."

그가 소매를 걷자 괴물 문신이 드러났다. 손가락부터 상반신까지 기괴한 그림으로 빼곡하다. "사람 몸에 그려진 그림이 너무 아름답다. 수정 불가능한 것을 새긴다는 과감성 또한 마음에 든다." 3년 전 이태원에 타투 가게도 열었다. "손목에 부모님 생년월일을 새겼다. 다만 가끔은 '이거 할 시간에 어깨라도 한 번 더 주물러 드릴걸' 싶을 때도 있다."

타인은 멀리 있다는 점에서 지옥이며 동시에 그 반대일 수 있다. 만화가가 된 것도 타인 덕분이었다. "디자인회사 생활이 적성에 안 맞아 방황할 때 사장님이 해준 '끼가 있으니 만화를 해보라'는 조언이 계기였다." 그 사장님은 '마린블루스'의 만화가 정철연. "역시 지옥과 천국 모두 타인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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