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의 직격 인터뷰] "일상화된 매크로 조작 .. 네이버는 알고도 방치"

안혜리 2018. 4. 27. 00:1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정원 댓글 사건 불거질 당시도
우파·민주당 양쪽서 '은밀한'제안
조작으로 얻는 이익 많아 유혹 커
댓글창 존폐 고민해야 할 시점
12살짜리도 조작 가능한 세상
인강·음원 순위 등 일상화한 조작
게임사, 수익 방해된다며 철퇴
네이버는 돈벌이 도구로 삼아


인터넷 조작에 밝은 이준행 개발자

미디어스타트업 개발자인 이준행씨는 중학교 때부터 커뮤니티 사이트를 만들고 키워온 경험과 네이버 등 IT회사 근무 경력 덕분에 댓글 조작같은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강정현 기자]
충격!·경악!·헉! 같은 ‘낚시성’ 제목을 단 온라인 기사 목록을 제공한 ‘충격 고로케’, 일베에 대항하는 ‘일간워스트’….

지난 10여년간 급변하는 디지털 저널리즘 환경에 발 좀 담가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이 화제의 사이트들을 만든 이가 바로 개발자 이준행(33)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커뮤니티 사이트를 만들어 한때 회원 80만 명에 달하는 영향력 있는 매체로 키우는 등 디지털 판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그를 만나 드루킹 게이트로 번진 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에 관해 물었다. 이씨는 이번 사건의 주범 드루킹(김동원) 일당이 활용한 매크로 등의 조작 기법을 잘 아는 전문가이자 그 역시 4~5년 전 일간워스트 운영 당시 보수와 진보 양 진영으로부터 모두 ‘은밀한’ 제안을 받은 바 있어서다. 그는 이번 드루킹 게이트를 비롯해 인터넷상의 여러 조작의 실체를 비교적 깊숙이 증언할 수 있는 인물로 꼽힌다.

Q : 일간워스트를 운영하며 댓글의 세계를 진작부터 주목했을 것 같다.

A : “주목이라기보다 질렸다. 만든 직후인 2013년 12월 네이버 실검에 올라 알려지면서 일베에 소위 ‘좌표’가 찍혀 댓글 공격을 당했다. 트래픽 폭주로 여러 번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하루 방문자수 1000만 명까지도 찍어봤다. 그건 여론이 아니라 데이터일 뿐이다. 온라인 게임에서도 자동 공격 설정 등으로 아이템을 생성시킨 후 그걸 팔아 돈벌이하는 조작 세력이 많다. 엔씨소프트 등 게임회사에선 당연히 강력하게 조작을 잡아내는 방법을 강구한다. 댓글 조작을 잡는 기술과 유사하다. 누구든 그걸 데이터가 아닌 실체가 있는 여론으로 보면 전혀 대응할 수 없다.”

Q : 이번 댓글 조작과도 맥이 닿아 있는 나무위키(한국판 위키피디아) 얘기도 해보자.

A : “ 2015년 무렵 나무위키 페이지에 ‘이준행이 메갈리아 사이트(여성혐오를 미러링한 남성혐오를 표방)를 만들었다’는 허위 정보를 올리고 악성 루머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2017년 사과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14살짜리였다, 그러니까 허위 주장을 펼칠 당시 열두 살 초등학생이 관리를 한 거였다. 초등학생 하나가 누군가의 평판을 망가뜨리도록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댓글 얘기를 하자면 악플 때문에 자살하는 유명인이 꽤 있지 않나. 그런데 이게 여러 사람도 아니고 소수의 특정인물, 심하면 1명의 장난일 수도 있는 거다. 이를 비춰볼 때 몇 명 안 되는 댓글 세력이 네이버 댓글창이나 커뮤니티 게시판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진짜 여론을 가리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다.”

Q :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일종의 여론 조작 제안을 받은 사실을 언급하기도 했다.

A : “이번 댓글 관련은 아니고 지난 정권 때인 2013~2014년 얘기다. 보수와 진보 다 있었다. 한 우파 온라인매체 대표와 민주당의 온라인 작업을 책임진다는 인물을 만났다. 매체 대표는 나중에 박근혜 정권 청와대에 들어갔고, 민주당 인사는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모 지역 더불어민주당 구청장 후보로 출마한다고 TV에도 종종 얼굴을 비치더라. 그런 작업하는 사람들은 대개 허세가 심하다.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알 수가 없다. 또 다른 유력 후보인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의 측근이라는 한 정치평론가는 ‘실검 순위 정도는 내가 만든다’고 떠들고 다녔지만 역시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당시 우파 매체 대표는 자금줄 얘기를 늘어 놓았고, 민주당 인사는 도와주는 대가로 사업적으로 힘써주고 키워주겠다고 했다. 이 사람은 ‘일베만큼 진보 진영 사람들을 모아 세를 불리겠다’며 오유(오늘의 유머)나 클리앙 같은 진보 쪽 커뮤니티 관계자는 다 만나고 다녔다. 당시 문재인의 새천년민주당과 안철수신당이 합치기로 했던 시기라 만나자마자 ‘누구 편’인지부터 묻더라. 그리고 ‘우리 편’으로 운영해 달라고 요구했다. 아무 편도 아니라고 거절했지만.”

Q :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2013년 기소된 국정원 댓글 사건을 크게 비난했는데, 그 와중에 양 진영 모두 비슷한 행태의 세력 다툼을 했던 건가.

A : “그렇다. 포털이 조작에 취약하다는 건 사실 더 일찍 알았다. 대학생 때인 2005년 시위 주동자로 몰려서인지 국정원 관리 대상이 된 모양이다. 국정원 사람을 만났는데 이후 가끔씩 전화를 걸어왔다. 한번은 ‘다음 실검에 오른 기사를 내릴 테니 지켜보라’는 거다. 통화 중에 실제로 빠지는 걸 봤다. (다음측에 압력을 넣은 것인지 이번과 같은 매크로 조작인지는 당시 알 수 없었고 그저 목격만 했다고 한다.)”

Q : 드루킹 일당이 ‘킹크랩’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썼다는 경찰의 발표가 있다. 상당한 비용이 들텐데.

A : “그냥 자동 반복 작업을 하는 여러 매크로 프로그램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정도 난이도라면 월 얼마짜리 개발자가 얼마나 시간을 들여 만들었느냐’가 프로그램 가격을 결정할텐데 이 정도는 별로 어렵지 않다. 나도 얼마 전 누구의 의뢰를 받아 3시간 만에 비슷한 걸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 심지어 로직(알고리즘)이 바뀔 때 자동으로 인식해서 그에 기계적으로 대응해서 작동하는 프로그램까지 쉽게 구할 수 있다. 경찰이 왜 그렇게 발표했는지 모르겠다.”

Q : 이렇게 대수롭지 않은 기술에도 방어를 못 하는 네이버 댓글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안 막는 건가, 못 막는 건가.

A : “어떤 게 매크로로 조작이 됐고, 어떤 기사가 어디로부터 ‘좌표’가 찍혔는지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네이버가 이 정도 모니터링은 당연히 하고 있을 거다. 하지만 막는 건 다른 문제다. 임의로 막으면 사용자들이 반발하니 결국 대외적으로는 알고리즘을 바꿔서 대응한다. 10여 년 전 댓글은 최신순 노출이라 물량 공세로 도배를 해버리면 됐다. 최신 게시물 목록을 일컫는 ‘리젠’이라는 인터넷 용어가 있다. ‘리젠을 장악해야 한다’거나 ‘리젠을 밀어냈다’면서 이를 중요시하는 건 사람들 눈에 가장 먼저 띄어서다. 일부 발언을 주도적 여론처럼 보이게 만든다. 가령 포털이 최신순 대신 공감수 정렬이라는 방패를 쓰면 여론을 조작시키려는 자들이 이를 뚫는 창을 또 찾아낸다. 그 결과 오히려 댓글 전쟁만 심화했다. 조작하려는 욕망이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막기 어렵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네이버가 기울일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안 한 것도 사실이다. 돈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뭘 해도 막을 수 없다는 무기력이 네이버 안에 퍼져 있는 거로 보인다.”

Q : 보통 사람 눈엔 방치에 가까워 보인다.

A : “네이버뿐 아니라 모든 IT기업은 시간이 돈이다. 뭐든 지체되는 건 손해로 인식한다. 모니터링한 후 매크로가 쓰이지 않고 좌표도 찍히지 않은 것만 노출시키고, 랭킹이나 뷰 수도 정확하게 걸러낼 수 있다고 치자. 시간이 걸린다.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서비스를 1분만 멈춰도 막대한 손해라고 생각하는데 투명성을 높이자고 스스로 서비스를 딜레이시킬까. 절대 안 한다. 영업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실 클릭 수 올라가면 네이버로서도 수익에 도움이 되면 됐지 나쁠 건 없다. 저널리즘적인 관점을 갖고 있고 그에 걸맞는 거버넌스를 갖고 있다면 윤리도 신경써야 하는 등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사기업일 뿐이니까.”

Q :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면 네이버가 특정 세력의 조작이라는 걸 확실히 알고 연초 수사를 의뢰한 건가.

A : “그렇다. 다만 댓글 내용만 보고 보수 진영이 벌인 작업이라고 판단한 게 분명해 보인다. 여당인 민주당 쪽인 줄 알았으면 당연히 고발하지 않았을 거다. 이번 드루킹 사건으로 보고 이제서야 정치 쪽 매크로에 대한 의구심이 풀렸다고 말하는 개발자들이 많다. 사실 매크로 조작은 정치 영역에서 활용하기 훨씬 이전부터 경쟁 인강(인터넷 강의)을 깎아내리기나 성형외과 홍보, 음원 마케팅과 관련해서 숱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다들 돈 받고 소위 이 같은 바이럴 마케팅(온라인에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확산시켜주는 방법)을 하는 업체와 정치 댓글 다는 사람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한번 친문이면 계속 친문이라고만 알았던 거다. 드루킹처럼 이해관계로 친문에서 반문으로 돌아선다는 걸 몰랐다. 네이버가 잘못 판단한 이유다”

Q :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지난해 국회에 출석해 공감수 정렬 문제나 편집 조작과 관련 잘 몰랐다면서 AI(인공지능)에 의한 자동화 얘기를 했다.

A : “자동화는 아무 의미도 없다. 기계가 순위를 결정지어도 개발자가 그 정보가 들어있는 DB에서 직접 결과값을 바꾸면 그만이니까. 지난해 이해진 창업자의 답변을 보고 개발자들이 다들 웃었다. 모를 리가 없는데 저렇게 모르는 척 한다고.”

Q : 정치적 진영 다툼장으로 변한 댓글 문제, 대책이 없을까.

A : “네이버가 노출시키는 모든 뉴스를 네이버 안에서만 소비하게 하는 인링크, 그리고 거기에 댓글까지 달게 하면서 벌어지는 인터넷 난장판은 분명 네이버가 책임질 문제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조작하려는 사람은 늘 있기 마련 아닌가. 청와대 국민청원도 얼마든지 조작 가능하다는 건 이제 누구나 안다. 네이버나 인터넷 탓만이 아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도 책·음반 사재기를 통한 순위 조작 등 다양한 방식의 조작이 있었다. 그래서 이젠 ‘여론의 창구’라는 미명 아래 정화도 안 될 댓글에 스트레스받을 게 아니라 분탕질과 조작을 부추기는 댓글 자체를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지경이 된 댓글창이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가. NPR 등 미국 주요 매체 가운데서도 폐해를 견디다 못해 없앤 곳이 많다. 포털 댓글은 결코 여론이 아니다. 그냥 술집 잡담 수준이다. 왜 우리가 그걸로 시달려야 하나. 여혐 살인사건으로 떠들썩한 강남역 현장에 붙은 포스트잇 메시지엔 정제된 글이 많았다. 지저분한 댓글창이 아니라 그런 게 오가는 플랫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다. 댓글을 그대로 둘 수밖에 없다면 그게 결코 여론이 아니라 일부 세력의 세 다툼의 결과라는 미디어 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야 악플에 상처받는 대신 그걸 무시해서 조작의 유혹을 줄일 수 있다.”

Q : 개발자 눈으로 볼 때 정치 여론 조작과 디지털 마케팅의 차이, 합법과 불법을 가르는 기준은 뭘까. 안철수 후보도 최근 느닷없는 음원 역주행으로 조작 시비에 휘말린 닐로 케이스를 언급하기도 했다.

A : “아무 차이가 없다. 똑같다. 플랫폼마다 프로그램의 변형은 있지만 매크로를 돌리는 원리는 같다. 다들 어느 정도는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 영화 평점 테러를 비롯해 온 사회가 다 하고 있다. 어느 분야든 온라인 랭킹(순위)이 오프라인에서 실질적인 결과를 만들기 때문에 다들 목을 매는 거다.”

■ 이준행(33)은 …

「 미디어스타트업 개발자이자 기획자. 게임회사 엔씨소프트 오픈마루에서 기획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네이버(2011년 근무 당시 사명은 NHN)와 SK플래닛에서 개발자로 근무했다. 퇴근 후 취미 삼아 만든 고로케닷넷(2012)과 일간워스트(2013)를 통해 혼탁한 인터넷 환경을 풍자하며 문제 제기를 해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자신이 만든 인디스트릿(인디밴드가 공연 스케줄을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과 유사한 서비스를 하겠다고 나서자 ‘정부의 삥뜯기’라며 반발해 무산시키기도 했다. 2015년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도입을 블로그를 통해 처음 알려 국정원 해킹 사건의 도화선 역할을 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안혜리 논설위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