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7000만 년간 우두커니..한반도 지킨 서해의 독도를 가다

강경록 입력 2018. 4. 27. 00:00 수정 2018. 4. 27.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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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바다 끝 '격렬비열도'
7천만 년 전 태어난 한반도 최초의 화산섬
기러기가 열을 지어 날아가는 모습 닮아
사람 발길 닿지 않은 '신비의 섬'
中 산둥반도와 직선거리로 268km
격렬비열도를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격렬비열도는 유인 등대섬 북격렬비도, 무인도인 동격렬비도와 서격렬비도가 삼각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 중 최고봉은 동격렬비도로 133m, 서격렬비도는 85m, 북격렬비도는 101m로 비교적 낮은 구릉지다. 대부분 경사가 급하고 평지가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중 서격렬비도는 한반도 가장 서쪽을 가리키는 영해기점이 있다. 세 개의 섬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한 섬으로 실질적으로는 최서단이라면 바로 이 섬을 두고 하는 말이다.

[충남 태안= 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우리나라 영해에 있는 섬 중에서 가장 동쪽에는 ‘독도’가 있고, 최남단에는 제주의 마라도가 있다. 서해에 있는 섬 중에서는 최북단에는 백령도, 서쪽에는 어청도, 서남해안에는 가거도가 있다. 모두 한 번 이상은 들어본 섬이다. 어청도와 함께 가장 서쪽에 자리한 섬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충남 태안에서 55km 떨어진 격렬비열도(格列飛列島)다. 이름조차 생소한 곳이다. 백령도, 가거도, 마라도, 독도는 사람들이 살면서 육지와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지만, 격렬비열도는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는 처녀 같은 신비의 섬이다.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지나야 만날 수 있는 외로운 섬, 7000여 만년 전부터 오랜 세월 우리 바다를 지켜온 영해의 파수꾼이 바로 격렬비열도다. 그 섬을 찾아 떠난다.

드론으로 촬영한 북격렬비열도 전경. 격렬비열도 중 유일한 유인 등대섬인 북격렬비열도는 101m로 비교적 낮은 구릉이지나, 대부분 경사가 급하고 평지가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뒤에 보이는 섬은 동격렬비도다.

◇서해의 독도 ‘격렬비열도’

소개에 앞서 이 격렬비열도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자. 정확하게는 하나의 섬이 아니라 군도(群島)다. 북격렬비도·동격렬비도·서격렬비도와 석도·우배도·가의도·궁시도·흑도·난도·병풍도 등 9개 부속도서를 합해 ‘격렬비열도’라 한다. 격렬비열도는 우리나라 최초의 화산섬이다. 무려 7천만 년 전 화산폭발로 만들어졌다. 멀리서 보면 모여 있는 섬들이 마치 기러기가 열을 지어 날아가는 것 같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북·동·서격렬비도 중 최고봉은 동격렬비도로 133m, 서격렬비도는 85m, 북격렬비도는 101m에 불과하다. 비교적 낮은 구릉지지만, 대부분 경사가 급하고 평지가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북격렬비도에서 바라본 서격렬비도

군사적·지리적·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섬이다. 우리 영해를 결정하는 영해기점 23개 도서 중 하나다. 우리 영해를 넓히는 2백 해리의 기점이 되는 곳 중 하나라는 것이다. 쉽게 설명한다면 서해의 독도가 격렬비열도다. 중국과도 매우 가깝다. 산둥반도와 직선거리로 268km에 불과하다. 중국의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심리적 거리가 가깝다는 뜻이다.

과거 태안반도는 삼국시대 이후 한반도 남부와 중국을 잇는 해상교통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었다. 격렬비열도 역시 오랜 세월 불빛 없는 등대 역할을 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사신길’이라 해 문화강국 백제의 면모를 중국과 서역으로 알리는 통로 역할을 했고, 고려 시대에는 송나라와 신진도를 이어주는 주요 교역로이기도 했다.

최근 중국과의 마찰도 빈번해지고 있다. 황금어장 때문이다. 격렬비열도는 감성돔이나 참돔 등으로 유명하다. 4월 곡우 무렵, 이 일대에서 잡힌 조기는 살이 연하고 맛있다고 해 ‘곡우살이’라는 이름으로 좋은 값을 받았다. 중국 어선들이 떼 지어 우리 영해를 침범해 불법으로 조업하는 이유다. 한·중은 1996년 협상을 시작했지만, 아직 배타적경제수역(EEZ)을 확정 짓지 못했다. 격렬비열도가 ‘서해의 독도’라고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 섬 중 서격렬비도에 우리나라 서쪽 끝을 의미하는 영해기점이 있다. 독도와 같이 우리 국민이 지켜내야 할 소중한 우리 땅인 것이다

북격렬비도 등대에서 바라본 동격렬비도

◇바다와 하늘이 허락해야 닿을 수 있는 섬

격렬비열도는 민간인 출입이 쉽지 않다. 정기선이 다니지 않아서다. 신진도항(안흥외항)은 격렬비열도를 가기 위한 기항지 중 가장 가까운 곳이다. 여기서 낚싯배를 빌려 두 시간 반을 달려야만 겨우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가장 큰 난관은 하늘과 바다다. 이 둘의 허락없이는 닿을래야 닿을 수 없는 곳이다. 신진항에서 격렬비열도로 가는 길에는 10여 개의 섬 이외에는 망망대해다. 그중 첫 섬이 가의도다. 태안의 유일한 유인도다. 가의도를 지나면 2013년부터 일반인들의 출입을 허락한 옹도가 보인다. 이후부터는 바닷길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잠잠하던 파도가 갑자기 거칠어진다. 석도와 우배도, 궁시도, 흑도, 난도, 병풍도 등을 지나면 드디어 격렬비열도다.

독수리 모양을 닮은 동격렬비열도. 격비도 세 섬 중 가장 큰 섬으로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앉아있는 모습을 닮았다.

가장 먼저 만나는 동격렬비도다. 격렬비열도 세 섬 중 가장 큰 섬이다.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앉아있는 모습을 닮아 힘찬 기상이 느껴진다. 섬 기슭과 해안에서는 다른 섬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기암괴석과 주상절리, 또는 풍화열이라 불리는 벌집처럼 구멍 난 암석들도 볼 수 있다. 거대한 해식동굴과 주상절리도 시선을 압도한다. 맞은편 서격렬비도는 실질적인 서쪽 끝 섬으로 그 앞바다는 중국어선과 어장을 다투는 배타적경제수역이다. 파도에 의해 약한 부분이 깎여 생긴 시스텍(sea stack), 그중 촛대바위가 눈길을 끈다. 시스텍은 암석해안에서 기반암이 육지에서 분리되어 고립된 촛대와 같이 생긴 바위섬을 일컫는다. 촛대바위, 사자바위, 모녀상 모든 해금강의 풍경들이 서격렬비도에 몰려있다. 금강산의 만물상을 옮겨온 듯 각양각색의 기암괴석이 섬 주변을 감싸고 있다.

북격렬비도는 세 섬 중 유일하게 유인등대가 있는 섬이다. 동백나무와 상록수림, 멸종위기 새인 매의 번식지이기도 해 생태보전 특정 도서이기도 하다. 예전부터 조기뿐만 아니라 황금 어장터로 유명한 곳이다. 동력선으로 가도 한나절이 걸리는데 예전에는 풍선을 타고 와 조기를 잡았던, 치열한 삶이 녹아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북격렬비도 등대

◇ 7000만 년 간 한반도의 서쪽을 홀로 지키다

접안이 가능한 곳은 북격렬비도다. 세 섬이 가파른 사면과 해식애라 평지가 거의 없다. 연안은 개펄이 널리 분포하고 수심은 얕아 선박의 접안은 거의 불가능하다. 제대로 된 선착장도 없다. 닻을 놓고 배를 댈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라 회포가 아니면 상륙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나마 북격렬비도는 자연적으로 평평한 바위가 있어 물양장 역할을 한다.

어렵사리 배를 대고 암반 위에 올라섰다. 이어 시멘트 계단이 이어진다. 바닥에는 갈매기들의 배설물로 하얗다. 계단을 타고 오르면 건물 한 채가 보이는데 창고다. 여기서 모노레일 철길 옆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섬을 오른다. 길 주변으로 유채밭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제주도의 유채꽃이 푸른 바다와 겹쳐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내 뭇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다면, 이곳 유채꽃은 은자처럼 숨어 있어 간혹 들르는 어부나 낚시꾼들만이 즐길 뿐이다. 유채꽃과 동백의 조화를 배경으로 무리 지어 나는 바닷새의 비행도 볼만하다. 유채의 노란 물결 속에서 푸름을 뽐내는 탐실한 동백 수백 그루가 이곳이 사람의 손이 미치지 않는 청정지역임을 보여주고 있다.

북격렬비도 동백꽃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길에는 동백나무 군락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동백꽃도 살며시 얼굴을 내밀어 오랜만에 찾은 나그네를 반긴다. 그 주변에도 노란 유채꽃이 만발해 있다. 초여름까지 섬 전체에 유채꽃이 피고, 화산암으로 형성된 해안 절경과 원시의 자연이 보는 이를 유혹한다. 그 유혹에 이끌리듯 오르다 보면 그 끝에 등대가 있다.

등대는 높이 107m에 이르는 육각형의 흰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세 섬 중 봉우리가 가장 높아서 세워진 것이다. 면적은 0.03㎢로 세 섬 중 가장 작지만, 서해의 밤바다를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다. 군사 작전상 대단히 중요한 섬으로 서해의 어로작업에 있어서 각종 어선의 항로표지가 되기도 한다.

최근 정부는 격렬비열도의 유인화를 추진하고 있다. 실효적 지배권 강화가 그 목적이다. 더불어 친환경관광지로 개발하려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어민 피해를 최소화하고 중국과의 해상경계선 분쟁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3개의 큰 섬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를 세우고 여객선의 접안시설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 최적지가 바로 북격렬비도다.

유채곷 흐드러지게 핀 북격렬비도

◇여행메모

△가는길= 서해안속도로 서산나들목에서 나와 태안읍내가지 간 뒤 96번 국도로 타고 가면 신진대교다. 신진대교를 넘어가면 바로 신진항(안흥외항)이다. 신진항에서 격렬비열도까지 가는 정기선은 없다. 가의도를 왕복하는 여객선과 옹도까지 가는 정기 유람선이 전부다. 격렬비열도를 가기 위해서는 낚시배를 빌리거나, 태안군청의 행정선을 타고 가야하는데 입도는 태안군청에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먹을곳= 이원, 원북 일대에는 박속밀국낙지탕 전문점이 많다. 하얀 박속을 썰어 넣고 끓인 태안의 향토음식이다. 어느 집을 가든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면 맑은 육수에 나박썰기를 한 박속과 파, 마늘, 양파를 넣은 냄비를 테이블로 가져다준다. 개운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이원면에는 이원식당, 원북면에는 원풍식당과 원북박속낙지탕이 유명하다.

박속밀국낙지탕 원조로 불리는 ‘원풍식당’

강경록 (roc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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