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금강산처럼 우리 민족이 평화롭게 사는 세상 왔으면.."
[경향신문] ㆍ남북정상회담장인 평화의집 2층 ‘금강산 그림’ 그린 신장식 교수
ㆍ남북 정상이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눌 자리에 걸려
ㆍ“금강산은 우리 미학이 세워진 회화사의 성소, 분단 때문에 한국서 아무도 안 그리는 소재 돼 ”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판문점 평화의집 2층 회담장을 장식한 것은 신장식 국민대 교수(59)의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681×181㎝)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 그림이 내걸린 회담장에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신 교수는 26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남북 정상이 평화·화해를 위하는 자리에 제 금강산 그림이 한 역할을 하게 돼 감격스럽고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25년 동안 금강산을 그려왔다. 그에게 금강산 그림은 “회화적인 맥락뿐만 아니라 그 문화정치적 무게에 비추어보면 냉엄한 분단현실과 직면한 이 시대의 화가가 그려낸 또 하나의 통일 이야기”다. 신 교수의 금강산엔 냉·온탕을 오간 남북한 정세가 녹아 있다.
금강산 사진과 영상 같은 자료를 보며 상상을 더해 그린 초기 금강산은 ‘관념적’이다. 1995년 금강산의 외곽은 붓과 먹으로 그린 듯 두껍다. 실체와 형상 사이 연관성이 희박했다.
‘관념적 산수’가 ‘사실적 산수’로 변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게 1998년 11월 시작된 금강산 관광이다. 신 교수는 금강호 첫 출항 탑승자다. 2008년 7월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관광이 중단될 때까지 10여차례 갔다. 신 교수는 금강산 스케치를 실컷 그리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금강산을 실제 본 뒤 신 교수의 작품은 커졌고, 묘사는 더 세세해졌다. 신 교수는 “금강산의 아름다움과 웅혼한 기운을 구체적으로 담으려다 보니 대작을 많이 하게 됐다”고 말한다.
신 교수는 한국적인 주제로 작업을 해왔다. ‘아리랑’ 연작은 한국의 민속을 현대미술로 풀어낸 것이다. 그러다 자연적인 소재로 눈을 돌렸다. 그가 떠올린 것은 산이었다. 여러 산을 돌아다녔다. 설악산을 주제로 하려다 보니 김종학 작가가 이미 수십년째 그 풍경을 담고 있었다. 한국에서 아무도 안 그리는 산이 금강산이었다. “분단 때문에 아무도 못 그렸죠. 보질 못하니까요. 금강산은 한국 예술의 가장 중요한 테마라 시작했습니다.”
금강산 그림은 고려시대 노영의 불화 ‘지장보살도’,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김홍도의 화첩, 김규진의 ‘금강산도’, 변관식의 ‘삼선암’ 등 수많은 작품에 등장한다. “금강산 그림은 우리 미학이 세워진 우리 회화사의 성소”라고 신 교수는 말한다. 한반도 백두대간을 상징하는 이 산은 무엇보다 아름답다. 신 교수가 금강산에서 영감을 찾은 이유다.
신 교수가 금강산 그림을 처음 내놓은 건 1992년 표화랑의 ‘한국 현대미술의 단면전’ 때다. 이후 금강산을 주제로 20회가량 개인전을 열었다. 지난 2월7일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한국실에서 개관한 ‘금강산: 한국 미술 속의 기행과 향수’전에도 작품을 출품했다. 오는 9월 금산 갤러리에서도 금강산을 주제로 개인전을 연다.
신 교수의 ‘금강산’엔 풍경만 있는 건 아니다. 그는 금강산을 매개로 생동하는 자연과 사람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분단 상황을 비롯한 현실도 구체적으로 담아내려 했다. 북한 주민과 남한 금강산 관광객들도 연작에서 볼 수 있다.
신 교수는 남북한 평화가 정착되면 금강산 관광이 재개될 것이라고 본다. 그는 “다시 가고 싶은 기대가 크다”면서도 “아름다운 금강산처럼 우리 민족이 평화롭게 잘사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누구든 금강산에 가서 그림도 그리고, 아름다움을 느끼길 원한다”고 했다.
청와대는 평화의집 곳곳에 한반도 평화 정착을 기원하는 의미의 그림을 내걸었다. 1층 로비엔 민정기 화백(69)의 ‘북한산’이 들어간다. 남북 정상은 이 그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1층 방명록 서명 장소 뒤쪽엔 김준권 작가의 ‘산운’을 내걸었다. 접견실엔 박대성 작가의 ‘일출봉’과 ‘장백폭포’, 3층 연회장 헤드테이블 뒤에는 신태수 작가의 ‘두무진에서 장산곶’을 전시했다.
연회장 밖 복도엔 이이남 작가의 미디어아트 ‘고전회화 해피니스’와 ‘평화의 길목’을 설치했다. 회담장 입구 양쪽 벽면에는 이숙자 작가의 ‘청맥, 노란 유채꽃’과 ‘보랏빛 엉겅퀴’를 배치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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