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타고 이북 여행, 냉면 넘어 온반과 어복쟁반까지

2018. 4. 2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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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제3차 정상회담 날 맞아 찾아가볼 만한 서울 속 이북음식점

북한 음식=냉면 공식은 편견의 산물

살펴보면 다양한 북한 음식 있어

닭고기 육수가 고소한 온반

여럿이 두런두런 나눠 먹는 어복쟁반

능라밥상 평양온반

봄날, 걸어서 갈 순 없지만, 밥상 타고 맛 여행은 할 수 있다. 더욱이 오늘은 판문점에서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날이 아닌가. 고향이 애틋한 이들을 위해, 한반도 식문화 보존을 위해, 호기심 많은 식도락가를 위해 묵묵히 밥 짓고 있는 서울 속 이북 음식점을 돌아본다.

온반과 어복쟁반의 고향, 평양과 평안도

북에 사는 사람들이 냉면만 먹진 않을 것이다. ‘북한 음식냉면’ 공식은 지척에 살면서도 문화를 아는 데 인색한 습관이 만든 셈법일지 모른다.

낙원동 ‘능라밥상’은 ‘평양온반’과 ‘해주비빔밥’을 잘한다. 올해 설립 10년차를 맞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이 운영한다. 밥상으로 문화의 이질감을 극복해보자는 취지로, 조미료 없이 슴슴한 평안도 향토 맛을 되살리는 데 힘을 쓴다.

능라밥상

평안도 대표 음식 가운데 하나인 평양온반은 흰 쌀밥에 닭고기 육수를 부어 닭고기와 녹두지짐을 고명으로 얹어낸다. 국물이 삼삼하다. 따뜻한 닭고기 국물이 스민 녹두지짐에 아삭한 백김치를 얹어 먹으니 고소하게 어울린다.

굽이 달린 놋쟁반 하나에 사람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 ‘어복쟁반’도 평안도 유명 향토음식 중 하나다. 을지로 ‘남포면옥’의 어복쟁반은 소 머리 고기, 양지, 유통(가슴살)을 편육으로 썰어 버섯, 달걀, 쑥갓, 죽순 등 갖은 건강 재료를 넣고 육수로 끓여 잣과 대추를 얹어낸다. 수시로 국물을 채워주는 통에 이야기 마를 새가 없다. 초간장에 고기를 찍어 다 먹고 나면 남은 국물에 국수사리를 비벼 먹는다. 소자 하나로 2~3명이, 대자 하나면 6명 이상이 배를 채운다. 후식으로 동치미와 냉면 한 그릇 먹으면 보람차기까지 하다.

남포면옥 어복쟁반

놋쟁반이 내내 따스하다. 때문에, 비 오는 날 소주 한잔씩 기울이며 정을 나누는 요리라는 말이 나온다. 북한에서는 흥정하는 상인들이 어복쟁반 한 그릇을 나눠 먹으며 적대감과 긴장을 풀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고 한다.

그 밖에 합정동 ‘동무밥상’은 옥류관 출신 주방장 손맛이 젊은 세대 입맛에 맞아 ‘줄 서서 먹는 집’으로 자리잡았다. 합정동 데이트 코스 중 하나로도 가끔 입에 오른다. 평양냉면 외에 오리국밥, 오리국수, 찹쌀순대가 두루 인기다. 역삼동 ‘능라도’는 최근에 생긴 음식점으로 평양온반, 어복쟁반이 잘나간다.

무교동 ‘리북손만두’의 ‘김치말이국수’와 ‘김치말이밥’은 인근 직장인들이 좋아한다. 식재료는 단출한데 속 시원한 국물이 “해장용으로 딱”이라고 한다. 성북동 ‘하단’은 평안남도 하단 출신 주인장이 메밀냉칼국수와 만두전골, 만둣국을 만든다. 동향 단골이 줄을 잇는다.

남포면옥

백두산 기슭 서민 밥상, 함경도

한반도의 가장 북쪽, 백두산과 개마고원의 기상을 품은 함경도 맛은 서울 어디서 볼 수 있을까. 대치동 ‘반룡산’이다. 반룡산의 자랑은 함경도 지방 대표 향토음식 중 하나인 ‘가릿국밥’이다. ‘가릿’은 ‘갈비’의 함경도 사투리다. 갈비를 곤 국물에 밥을 말아 선지, 두부, 파 등을 얹은 장국밥을 말한다. 파와 건더기 식감이 좋다는 평이다.

반룡산 가릿국밥

함경도 가릿국밥은 육수로 두세 번 토렴한 밥에 삶은 고기를 찢어넣는 방식이 흔히 서울에서 먹는 장국밥과 비슷하지만, 밥과 국물을 한 수저에 섞어 먹는 장국밥과 달리 국물을 먼저 다 먹고 난 뒤 ‘다대기’(다진양념)에 남은 밥을 비벼 먹는다. 국물 맛이 그만큼이나 독립적으로 중요하니, 첫 수저부터 국밥 특유의 투박한 위안이 몰려온다.

반룡산에서는 ‘오징어순대’ ‘가자미식해’ 등 함경도 향토음식도 맛볼 수 있다. 식탁마다 손바닥만 한 한반도 지도를 비치해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함경도 위치를 점찍어둔 지도를 보면 새삼 그 맛의 거리가 실감난다.

반룡산 오징어순대

사람 사는 인심, 개성과 황해도

고려의 수도, 상인들의 도시 개성의 호시절을 떠올려보는 밥상 여행길도 있다. 동대문구 용신동 오래된 골목에 자리한 ‘개성집’에서는 개성식 만두와 만둣국, 손수 대나무로 쳐내 빚는 ‘조랭이떡국’을 요리한다. 1·4 후퇴 때 개성에서 월남한 창업주가 60년대 문을 열었고 가족들이 이어받았다. 호박과 숙주, 돼지고기를 넣은 만두는 간이 진하지 않아 인기다. 여기 새콤한 오이소박이김치를 곁들여 먹는 게 별미다. 인사동 골목에 들어선 ‘개성만두 궁’은 최근 <미쉐린 가이드>에서 선정한 빕 구르망 식당으로 소개된 뒤 일본인을 비롯해 외국인들이 몰려오는 명소가 되었는데, 만둣국 등 다양한 만두 요리를 즐기기 좋다.

봉산옥 삯국수

서초동 ‘봉산옥’은 황해도식 음식을 낸다. 넓은 평야에 잡곡을 재배했던 토양의 기질인지, 황해도 사람들은 조선 시대 때부터 인심이 좋고 손이 컸다고 한다. 주인장은 황해도 출신 시어머니에게서 손맛을 물려받았다.

봉산옥은 배추를 다져넣은 담백한 만둣국과 더불어, 이름도 특이한 ‘삯국수’를 만든다. 유래를 보면 ‘삯을 주고 방앗간이나 공장에서 눌러온 국수’란 뜻이 담겼다. 기계로 면 뽑는 게 귀했던 시절, 북한 서민들이 ‘돈 주고 국수를 눌러먹는 호사’를 누렸다는 뜻도 있단다. “옛날에 이북에서는 서로 (품앗이) 일을 해주면 삯국수를 대접하기도 했어요.” 설명을 듣고 국수 한 그릇 후루룩 삼키면 몸 가득 온기가 돈다.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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