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드루킹 수사는 이미 실패"..힘받는 특검 불가피론

2018. 4. 2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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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철의 법조외전(21) '드루킹 수사' 지켜보는 법조계 시각

언론보도 전까지 압수수색·계좌추적 손놓은 경찰
초동 수사 잘못으로 신뢰 훼손..중대 흠결 자초
이주민 서울경찰청장 경솔한 발언 의구심 더해
"이젠 경찰이나 검찰 누가 수사해도 불신받는 상황"
야당과 무관하게 '특검수사 불가피' 주장 힘 얻어

[한겨레]

요즘 법조계의 최고 화제는 ‘드루킹’이다. 만나거나 통화한 법조인은 열이면 열 드루킹 사건을 입에 올리고 있다. MB(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로 떠들썩했던 게 언제였는지 아득하다.

“어찌 될 것 같으냐?”고 묻는 것은 기본이고, 나름의 경험과 직관을 토대로 “실제보다 부풀려진 것 같긴 한데, 의외로 큰 사건이 돼 가고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렇듯 말의 결과 수위는 제각각이어도 이구동성 일치하는 지점이 있다. 경찰이 모처럼 수사 능력을 검증받는 ‘시험대’에 올랐는데, 안타깝게도 초동 수사에 실패한 것 같다는 것이다.

“이런 사건이 수사 능력을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케이스다. 살아 있는 권력과 관련된 사건이라 ‘결과’보다 ‘과정’이 훨씬 중요하고, 과정이 의심받게 되면 결론은 말하나 마나다. 과거에 검찰이 ‘정치검찰’이라고 욕 들어 먹은 사건은 백이면 백 이런 경우다. 그런 점에서 경찰이 시험대에 오른 거다. 근데 사건 경험이 짧다 보니 과거 검찰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초동 수사부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수사 자체가 불신받는 상황을 자초했다.” (검찰 간부 ㄱ)

경찰은 요 며칠 사이 압수수색과 계좌추적 등 관련 증거물 확보에 열심인 듯 보인다. 그러나 이런 절차는 수사 초기에 끝냈어야 하는 일이라고 법조인들은 지적한다. 경찰이 수사에 정식으로 착수한 시점은 2월7일이라고 알려져 있다. 검찰에 드루킹 김아무개씨 등을 업무방해 혐의로 송치한 것이 이달 13일이니까 수사 기간은 어림잡아도 두 달이 넘는다. 그런데 언론 보도로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경찰은 압수수색이나 계좌추적 등을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 이름이 진작 튀어나왔지만 드루킹과의 관계를 더 깊숙이 파고들지 않았다.

“이제 와서 압수수색하고 계좌추적을 해도 이미 늦었다. 그래서 초동 수사가 중요한 건데. 자금 흐름을 볼 수 있는 계좌야 전산에 남아 있겠지만, 드루킹 일당이 달았다는 댓글 기록, 블로그의 글, 김 의원 등과의 대화나 통화내역 등은 그동안 많은 부분 삭제됐거나 지금 이 순간에도 소멸되고 있을 것이다. 언론 보도를 보고 하는 말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경찰수사가 너무 허술했다.” (한 부장검사)

위부터 드루킹이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올린 글. ‘주주인’(경공모가 자체 개발한 채팅앱) 갈무리.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섣부른 발언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의심은 더해졌다. 이 청장은 지난 16일 기자 간담회에서 수사 책임자답지 않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렸다.

“(김 의원과 드루킹 간에) 1 대 1 대화창이 두 개인데 하나는 비밀방, 하나는 일반방. 비밀방에 있는 것은 거의 하나도 안 읽은 거다. 일반방에서는 사진 같은 거 그런 걸 보낸 거고. 2017년 6월3일 URL(인터넷 주소)를 보낸 게 하나 확인됐다. 비밀방을 통해 3190개를 보냈는데 (김 의원이) 하나도 안 읽은 거로 나온다. 답도 없었고.”

“(사무실과 주거지 등) 압수수색 현장에서 휴대전화 170여개를 확보했는데, 133개는 분석 안 하고 검찰에 송치하면서 보냈다. 너무 많이 분석할 수는 없고, 중요해 보이는 것만 우리가 (분석했다).”

김 의원이 드루킹의 메시지를 하나도 안 읽었고, 답도 안 했다는 이 청장의 말은 그날 오후 김 의원의 기자회견을 통해 간단히 뒤집혔다. 나흘 뒤인 20일엔 김 의원이 드루킹에게 특정 언론사의 기사 주소를 전송하면서 “홍보해 주세요”하면, 드루킹이 “처리하겠습니다”라고 답변한 대화 내용이 공개됐다. 경찰은 축소 수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자, “너무 많아” 포렌직 조사 한번 하지 않고 검찰로 보냈다던 휴대전화를 전부 다시 찾아가는 해프닝을 벌였다. 그 뒤로 김 의원 보좌관과 드루킹 쪽의 금전 거래까지 나왔다.

이 청장의 발언이 얼마나 문제였는지는 그의 상급자인 이철성 경찰청장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이 청장은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이 청장의 발언이 “경솔했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이 청장이) 무슨 보고를 받아서 그렇게 얘기한 건지는 몰라도, 경솔했다고 생각한다. (서울지방경찰청) 지휘부의 부적절한 언론 대응으로 오해를 받게 됐다.”

이주민 청장의 ‘경솔한’ 발언은 결과적으로 수사 전체에 깊은 흠결을 남겼다. 그래서 수사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수사는 생물이라고 하지 않나. 하다 보면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거지. 그러니 특정 단계에서 뭐가 있다 없다, 어떤 게 맞다 틀리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수사의 기본이다. 브리핑을 하더라도 팩트만 드라이하게. 그런데 이 청장이 저렇게 말을 해버리니 대번에 ‘아, 경찰이 수사 의지가 없는 모양이구나’, ‘어떻게든 김경수 의원 하고 연결되는 걸 막으려고 하는구나’ 이런 의구심을 자초하는 것이다. 수사에 대한 신뢰가 한번 흔들려 버리면 그 다음에는 뭘 내놔도 (국민이) 잘 안 믿는 상황이 된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

“‘원세훈 국정원’의 댓글 공작과 이번 사건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경찰이 초동 수사를 잘못 풀어가면서 상황이 꼬여버렸고, 과거 댓글 사건과 이번 댓글을 같은 것인 양 연결시키는 야당의 상징 조작이 먹히면서 별게 아닌 듯하던 사건이 스캔들처럼 돼가고 있다.”(사정기관장을 지낸 변호사)

덩달아 검찰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검찰 내부에선 ‘경찰이 어디까지, 얼마나 수사해서 오는지 한번 지켜보자’는 기류가 강했다. 수사권 내놓으라고 압박하던 경찰이 ‘임자’ 제대로 만났다며 고소해 하는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그런데 경찰이 수사의 갈피를 못 잡고 헤매자 이 상태로 사건이 송치돼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25~26일엔 김 의원의 휴대전화와 금융계좌에 대한 영장 기각 책임을 놓고 검-경의 갈등이 재연되는 모습마저 나타나고 있다.

“경찰이 초장에 사건을 너무 이상하게 풀어서 이젠 경찰이나 검찰이나 누가 수사를 해도 국민이 (결과를) 믿어줄까 싶다. 이런 상황이면 특검을 도입하는 것도 방법인데….” (검찰 간부 ㄴ)

그렇다고 특검 도입을 대놓고 말하자니 야당 주장에 동조하는 모양으로 비칠까봐 그러지도 못하고 검찰은 이래저래 ‘냉가슴’이다. 검찰 지휘부에 속한 인사는 “영장 할 때 말고는 (경찰에서) 우리한테 아무 얘기가 없다. 우리도 (경찰에) 알아보거나 물어보지 않는다. (어떻게 수사할지는) 송치돼 오면 그때 고민할 일”이라면서도 “정치권 특검 얘기는 좀 진전이 있나요?”라고 넌지시 물었다. 경찰이 이미 버려놔서 애써봐야 ‘본전’ 찾기 힘든 사건, 그래서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사건이라는 속내가 읽힌다.

특검 불가피론은 검찰 바깥에서도 나온다. 검사로 재직할 때 특별수사 경험이 풍부하거나 정치권력과 관련된 복잡미묘한 사건을 겪어 본 법조인은 특검 도입에 손을 든다.

“이미 많은 증거가 소멸됐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찰과 검찰이 서로를 탓하기 보다는 남아 있는 증거, 이미 확보된 증거를 가지고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사실 이런 사건이야말로 특검을 하는 것이 맞다. 야당의 주장 여부와 상관 없이 살아 있는 권력과 관련된 사건이니 특검이 타당하다는 얘기다. 초기 수사에 이미 중대한 흠결이 생겨 버렸으니 이젠 특검의 입으로 말해야만 수사 결과에 대한 신뢰가 담보될 수 있는 상황이 됐다.”(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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