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조순 "북한 이전과 완전히 다른 길 갈 것이다"

류순열 2018. 4. 26.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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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달라질 것이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갈 것이다.”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11일 서울 봉천동 자택에서 진행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남북·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미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이후의 북한 미래를 이렇게 전망했다. “북한이 결국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일 것이며 발전속도도 빠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해서는 “지금껏 상당히 합리적 기준을 갖고 (국가운영을)해왔다”고 평했다. “저 사람은 나이도 어리고 철이 없어 그때 그때 제멋대로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오히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걱정했다. “경력이 부동산으로 돈 번 사람일 뿐 정치는 잘 모르는 사람”이라며 “김정은 보다는 트럼프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합리적으로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1928년 2월1일생으로 두 달전 만 아흔이 지났다. 그럼에도 구순의 고령이 느껴지지 않는다. 혈색, 피부, 발음, 언변에서 연로한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조 교수는 “소식하고 술·담배를 하지 않으며 굉장히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전 다섯시 기상해 40여분 가량 요가를 하고 요즘도 파이낸셜타임스, 중국 인민일보를 꼼꼼히 챙겨본다고 했다. 조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11일 서울 봉천동 자택에서의 대면 인터뷰에 이어 남북정상회담을 하루앞둔 26일 전화인터뷰로 두 차례 진행했다.

-회담, 잘 될까.

“낙관한다. 비핵화,어떤 형식으로든 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갈 것이다. 발전속도도 빠를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가나.

“한꺼번엔 안되겠지만 결국 자본주의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중국이 중국식 자본주의하듯 북한도 북한식 자본주의를 할 것이다. 안하려야 안할 수 없다.”

-북한이 그 정도로 잠재력을 갖고 있나.

“북한이 핵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만들었다. 기술이 있었기에 달성한 것 아닌가. 북한은 공과 계통 교육을 잘해왔다. 과학·기술쪽 인재들이 많다. 북한도 그렇게 약한 나라는 아니다. 경제력은 떨어지지만 자원도 많고 군사력, 정부 능력, 이런 것은 떨어지지 않는다.”

조 교수는 낙관대로 상황이 전개될 경우 통일 문제가 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정상회담에서 통일 문제가 나오지는 않겠지만 통일에 대한 생각이 우리 모두에게 급격히 도래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문제에 대해 조 교수는 보수적 접근을 주문했다. “통일의 접합점이 별로 없다. 너무 성급한 통일논의는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늘 열강의 각축장이던 한반도의 운명이 바뀔까.

“구한말 우리는 너무 약했다. 사대(事大· 작고 약한 나라가 크고 강한 나라를 섬김)를 안할 수가 없었어. 그러다 결국 망했는데 정상회담 잘 되면 우리의 처지가 엄청 강해질 것이다. 통일을 하지 않아도. 우리가 이제 마구 무시해도 될 나라는 아니거든.”

-김정은, 어떻게 보시나.

“최근 나타난 김정은의 여러 생각과 북한 사정을 분석해보면 김정은은 자기 커리어에서 한 단계를 지나 새로운 단계를 모색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 새로운 단계에 나오는 생각이 이 번 정상회담에 담길 것이다. 그 사람의 처지와 나라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김정은은 지금껏 상당히 합리적 기준으로 해왔다. 저 사람은 아직 나이도 어리고 철이 없어 그때 그때 제멋대로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김정은과의 협상에)백 사람이 나와 말해도 소용 없다.”

-합리적 기준으로 해왔다?

“방법이 합리적이었다는 것은 좋았다는 게 아니고 자기 나름의 합리적 기준으로 해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김정은이 제정신이 아닌 것 처럼 생각하는데, 오해다. 김정은은 2009년 김정일의 후계자로 지명됐거든. 이후 김정은은 두가지 문제에 부닥쳤다. 국내에서 자기 위치를 확고히 다지는 것, 그 건 내치다. 또 하나는 외교안보에 있어서 미국이라는 ‘대적’을 앞에 두고 방위력을 갖고 있어야 되겠다는 것. 그 두가지가 성취됐다. 이제 미국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코피작전’(bloody nose), 이런 걸 막 할 상대는 아니다. 김정은이 그런 정도까지는 끌고 왔다 이거지.”

-내치·외치 모두 성과를 거뒀으니 오히려 더 강하게 나갈 수도 있을 텐데 

“천만의 말씀이다. 내치·외치 목적 달성했으니 북한이 미국을 친다? 북한이 날아간다. 그 건 공연히 하는 소리지. 김정은은 이제 경제도 풀고 대외개방도 하고 이런 일종의 경제건설을 위주로 하는 정책, 이 걸로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이번 남북정상,북미정상회담은 ‘이제는 나도 비핵화를 하겠소, 그러니 거기에 대한 조건으로 평화협정을 맺자’는 결국 이 얘기일 것이다.” 

조 명예교수는 지난 11일 “북이 핵과 ICBM 만드는 걸 포기하겠다고 말하리라고 본다. 경제에 치중하겠다는 것”이라고 예견했는데 적중했다. 북한은 열흘 뒤인 21일 김정은 위원장 주재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앞으로 경제건설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핵 무력과 경제 건설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핵·경제 병진노선을 공식 수정한 것이다. 이를 위해 핵실험과 ICBM 시험 발사도 중단한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어떻게 보시나

“트럼프는 지금까지 경력이 부동산으로 돈 번 것밖에 없다. 정치는 잘 모른다. 책을 안 읽는다. 처음엔 국무장관 틸러슨을 비롯해 합리적 인물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사람들 다 사라졌다. 불러들이는 게 죄다 극우파다. 합리적이지 않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소행이다. 그리고 미국 정책 보면 아메리카 퍼스트, 이런 게 구호로는 되지만 보호무역과 같이 실제로 가는 것은 잘못이다. 걱정이 김정은 보다는 프럼프다. 북미회담을 합리적으로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

-중간에서 문재인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것 아닌가.

“인내심 갖고 미국과의 관계 유지해나가야지. 우리에게 미국은 중요한 나라 아닌가. 정의용씨(청와대 국가안보실장)가 잘 한다고 본다.”

-북미정상회담서 미군철수, 논의될까.

“많은 사람들이 그 걸 우려할 텐데, 미군철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 입장에선 우리가 핵 포기하면 뭐하러 미군 주둔하느냐고 말할 수 있겠지. 그러나 트럼프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이 있지 않나. 한국은 일본의 오키나와처럼 전략적으로 무지무지하게 중요한 땅이다. 북한이 미군철수를 요구는 하겠지만 북한도 현실적으로 타협하지 않을까. 투자도 해주고, 상호 외교관 둡시다, 평양에 미국 대사관이나 출장소, 워싱턴에 북한 대사관을 설치하자는 얘기 할는지 모른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두 전직 대통령은 감옥에 있다.

“참 비극이다. 전직 대통령 둘을 집어넣는 거 너무하지 않느냐, 이런 얘기들도 하는데 그건 아니다. 필요하면 셋도 넣을 수 있지. 전직 대통령 둘을 구속하는 게 어떻다고. 원칙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만인이 법앞에 평등하고 죄 지으면 벌받는 원칙이 중요하다. 우리는 사면이 너무 많다.대통령 권한을 그런데 써서는 안된다. 선진국에 사면이 있나. 사법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역사를 세워나가야 한다. 자꾸 역사 바로잡기 하지 말고 처음부터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 조순 명예교수는…

 “교수라고 해주세요. 원래 교수였으니.”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의 이력은 화려하다. 정·관·학계를 아우르는 광폭 스펙이다. “대통령 빼고는 다 해보신 것 아닌가요?” 소리 없는 웃음에 흰 눈썹이 올라갔다.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 초대 민선 서울시장, 한나라당 총재가 과거 그의 삶을 채운 자리들이다. 그러나 그가 “원래 교수”라고 강조하듯 그의 큰 족적은 한국 경제학계에 뚜렷이 새겨져 있다. 인터뷰에서 그는 경제학자로서의 충고도 잊지 않았다. “작금 경제학이 자꾸만 미시적으로 가고 있어 천하대세를 잘 보지 못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금융위기가 왔을 때 유명한 경제학자들에게 ‘당신들은 머리도 좋고 공부도 많이 했는데 왜 몰랐느냐’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큰 흐름을 읽는 경제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쇠퇴하는 인문학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인문학이 죽으면 방향을 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선악 구별이 안 되고, 가치판단이 안 선다. 인문학을 모른다는 건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사진=이재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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