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민노총 탈퇴, 잘 팔리는 신차 개발..한국GM과 다른 쌍용차

평택=진상훈 기자 입력 2018. 4. 26. 10:43 수정 2018. 4. 2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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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주간 연속 2교대 체제가 도입된 후 ‘제 2의 삶’을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저녁시간을 함께 하게 되니 가족들에게도 비로소 아빠 노릇을 하는 것 같네요.”

25일 쌍용차 평택공장 조립 3라인에서 생산직 근로자들이 조업하고 있다./쌍용차 제공

24일 경기 평택시 칠괴동에 위치한 쌍용자동차(003620)평택공장. 이곳 조립 3라인에서 근무 중인 경의석 기술수석은 최근 쌍용차 생산직 근로자들의 분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경 수석은 지난 1986년 쌍용차에 입사해 올해로 33년째 근무 중인 ‘베테랑’이다. 직장 생활 대부분을 야간과 새벽 근무로 보냈던 그에게 오후 3시 40분이 되면 모든 일과가 끝나는 주간 연속 2교대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는 “최근 여가생활을 위해 요리학원까지 등록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지난 2009년 법정관리를 신청하며 벼랑 끝에 몰렸던 쌍용차가 최근 완벽하게 부활하고 있다.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티볼리의 인기를 앞세워 지난해 9년만에 흑자전환한 쌍용차는 이후 대형 SUV인 G4 렉스턴과 픽업트럭 모델인 렉스턴 스포츠가 잇따라 성공하면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재도약의 발판이 된 것은 노사의 상생(相生) 의지였다. 극심한 노사 갈등으로 몸살을 앓았던 쌍용차는 2009년 금속노조 탈퇴 후 이제는 자동차 업계 최고의 노사 화합을 자랑하는 사업장으로 탈바꿈했다. 한 때 직장을 잃을 위기까지 내몰렸던 근로자들은 이제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받으며 삶의 질도 바꿔가고 있었다.

◇ 노사 손잡고 일궈낸 주간 연속 2교대…근무시간 줄었지만 생산성도 향상

이날 찾은 평택공장의 차체와 조립라인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요란한 기계음과 함께 연신 불꽃을 튀기며 거대한 로봇은 쉴 새 없이 자동차 패널을 들어올렸고 뼈대와 강판을 이어붙이는 용접 작업을 했다.

한 켠에서는 생산직 근로자들이 사소한 잡담도 없이 조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수십여대의 로봇이 만들어내는 소음과 용접 불꽃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쉴새없이 차체를 조립하고 완성도 여부를 검사했다. 공장 내벽에는 ‘하나된 우리가 할 수 있다’는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쌍용차 평택공장 차체라인에서 로봇이 차체를 용접하고 있다./쌍용차 제공

곽상환 쌍용차 차체 2팀장은 “주간 연속 2교대 도입으로 근무시간이 줄었지만, 업무의 집중도도 함께 향상됐다”며 “직원들 대부분이 업무시간에 집중하고 여가시간을 늘리는데 만족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쌍용차의 시간당 차량 생산대수는 기존 22대에서 새 근무체제 도입 후 32대로 늘었다.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근무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난 2016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2014년 10월 출시된 티볼리가 큰 인기를 끌면서 생산물량이 늘어 잔업과 특근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수당이 지급되면서 수입은 풍족해졌지만, 긴 업무시간으로 집중력이 떨어지고 삶의 질도 훼손된다는 주장이 많았다.

새로운 근무체제 도입은 2년에 걸친 노사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이뤄졌다. 2016년 쌍용차 노사는 ‘근무형태변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40차례의 실무협의와 6차례의 노사대표 협의를 거쳐 마침내 올해 1월 시행안을 최종 확정했다.

기존 주야 2교대 체제에서 주간조는 오전 8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5시 30분에 퇴근했다. 그러나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잔업을 해야 하는 날이 많았다.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일하는 야간조도 오전 7시 30분까지 1시간 30분 동안 잔업에 투입돼야 했다.

그러나 새로운 체제에서 주간조는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 40분까지 근무하고 야간조는 3시 40분에 투입돼 다음날 새벽 12시 30분에 퇴근한다. 잔업도 새벽 1시 30분까지 야간조 1시간으로 줄었다. 기존 체제에 비해 총 근무시간은 3시간 30분이 줄어든 것이다.

곽 팀장은 “근무시간 감소로 처음에는 수입이 줄어든 직원들의 반발도 예상됐지만, 2년에 걸친 사측과의 활발한 소통 끝에 새로운 근무 체제를 안착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 티볼리, G4 렉스턴 이어 렉스턴 스포츠로 ‘3연타석 홈런’

차체라인에서 흠집과 하자 여부를 검사하고 있는 쌍용차 평택공장 근로자들/쌍용차 제공

쌍용차가 노사의 상호 신뢰 속에서 근무환경을 새롭게 바꿔나가고 있는데는 신차의 잇따른 성공으로 실적 개선 흐름을 장기간 이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밑바탕이 됐다.

올 초 판매를 시작한 렉스턴 스포츠는 출시 초반 ‘제 2의 티볼리’로 불리며 순항하고 있다. 출시 후 쌍용차 모델 가운데 가장 짧은 시간에 1만대 판매계약을 달성했다. 지난달에는 월간 판매량 3000대를 돌파하며 지난 2004년 무쏘 이후 월간 최대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쌍용차는 렉스턴 스포츠를 제작하는 조립 3라인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상당한 공을 기울였다. 4면 회전 방식의 ‘메인 벅 시스템’을 적용해 코란도 스포츠, G4 렉스턴, 렉스턴 스포츠 등 다양한 차종을 혼합 생산할 수 있는 라인을 구축했고 108대의 로봇을 투입해 용접 자동화율 100%를 달성했다. 주요 외관 부품의 장착 공정도 콘베이어 라인에서 작업자가 실시하던 방식을 벗어나 자동 장착 공법을 적용했다.

김춘식 조립 3라인 팀장은 “주간 2교대 도입이 확정된 후 회사도 공정 자동화 설비에 상당한 투자를 했다”며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작업 공법 변경, 새 콘베이어 시스템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민주노총 금속노조 탈퇴 9년…새로운 노사 화합 모델 제시한 쌍용차

이날 평택공장에서 만난 쌍용차의 한 생산직 근로자는 최근의 변화를 두고 ‘격세지감’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법정관리를 신청할 당시 다시는 공장에서 차를 만들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대립과 투쟁 대신 협력과 소통을 선택하자 회사는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살아났다”고 말했다.

과거 쌍용차는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노사 갈등이 극심한 업체로 꼽혔다. 지난 2009년 당시 쌍용차의 경영권을 가졌던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실적 악화를 이유로 구조조정을 시도하자, 쌍용차 노조는 2개월여간 총파업으로 맞서며 회사의 몰락을 부채질했다.

쌍용차는 한 때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노사 갈등이 심한 곳으로 꼽혔다. 사진은 지난 2009년 총파업 당시 시위에 나선 쌍용차 노조 조합원들/조선일보DB

이 과정에서 쌍용차 노조는 평택공장으로 출근하는 상하이차 임원들을 차량에 가둔 채 노트북과 각종 업무자료 등을 빼앗기도 했다. 당시 노조의 파업과 불법쟁의 활동을 주도했던 인물이 지난 2015년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현재 복역 중인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2009년 9월 노조가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를 탈퇴하면서부터다. 당시 출범한 새 노조는 ‘반성과 변화와 희망’이라는 슬로건을 만들고 적대적이고 투쟁적인 과거를 벗어나 노사 협력을 통한 경영 정상화에 앞장서겠다고 발표했다.

이듬해인 2010년 쌍용차의 새 주인이 된 인도 마힌드라그룹도 노조의 의지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마힌드라 경영진은 쌍용차 인수와 동시에 노조 집행부를 만나 ‘3자 특별협약’을 체결했다. 노조가 마힌드라를 단순한 인수기업이 아닌 상생의 파트너로 받아들이고 경영 정상화 노력에 협조할 경우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하겠다는 ‘당근’을 제시한 것이었다.

2010년 이후 쌍용차는 지난해까지 8년 연속 무분규로 임금협상을 마무리했다. 회사가 점차 살아나면서 법정관리 신청 당시 회사를 떠났던 직원들도 돌아왔다. 지난 2013년 무급휴직자 454명을 시작으로 2016년 40명, 지난해 62명의 근로자가 복직했다. 올해도 주간 연속 2교대 도입과 함께 26명의 생산직원이 일자리를 되찾았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최근 법정관리 신청 직전까지 몰렸다 간신히 위기를 넘긴 한국GM이 쌍용차가 제시한 노사 상생 모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한 업계 관계자는 “쌍용차와 한국GM은 외국기업에 인수되고 부도 직전까지 몰린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여러 모로 닮았다”며 “한국GM이 위기를 딛고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본사의 장기적인 투자와 노조의 상생 의지가 함께 맞물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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