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유미의 세포들' 이동건 작가에게 듣는 유미 이야기

노진호 입력 2018. 4. 26. 04:55 수정 2018. 4. 26.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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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건 작가는 인터뷰 답변지와 함께 사진 대신 쓰라며 자신이 그린 캐리커처를 보내왔다. 유미의 세포들 뒤로 앉아 있는 이동건 작가. 왼쪽부터 다른 그림 찾기 세포, 사랑 세포, 텔레파시 세포, 감성 세포, 이성 세포, 세수 세포, 불안 세포. [그림 이동건 작가]

웹툰 '유미의 세포들'은 참 묘한 작품이다. 줄거리를 말하라면 그저 '주인공 유미가 이성과 헤어지고 만나는 과정에서 겪는 이야기'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단순한데, 이상하게 보면 볼수록 유미를 응원하게 된다. 평범한 여성인 유미의 뇌 속에는 수많은 세포들이 있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이 세포들이 의견을 모은 결과다. '응큼 세포' '사랑 세포' '이성 세포' '감성 세포' '출출 세포' 등 세포들의 이야기를 통해 유미의 감정이 섬세하게 그려지는데, 유미의 행동이 그래서 더 와 닿는다.

2015년 4월부터 3년 넘게 네이버에 연재 되고 있는 '유미의 세포들'은 그 어떤 웹툰보다 팬이 많다. '유미'가 헤어 스타일을 바꿨을 땐, 스타일 바뀐 유미의 이미지가 각종 커뮤니티에 공유되며 "그래 유미는 이 스타일이 훨씬 잘 어울린다"고 화제가 될 정도였다. 유미가 남자친구 구웅과 헤어지려고 결심했을 땐 독자들이 댓글에 자신의 과거까지 털어놓으며 위로했다. 그렇게 독자들은 유미의 친구가 됐다가 때론 스스로 유미가 됐고, 그렇게 '유미'는 그 자체로 독자에게 힘이 줬다. 지금도 매회 1만 건 내외의 댓글이 달리는 이유다. 최근엔 연재 웹툰을 모아 단행본(4~6권)을 냈다. '유미의 세포들'의 이동건 작가를 25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본인이 직접 그려 건네준 자신의 캐리커처로 작가의 사진을 대신한다. 아래는 일문일답.

이동건 작가의 웹툰 '유미의 세포들' [사진 네이버]

Q : 지난 3년간 ‘유미의 세포들’을 연재해왔는데.

A : “최근에 50대 애독자라고 하시는 분께 메일을 받았습니다. ‘유미의 세포들’을 읽고 큰 자극을 받아 현재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과정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는 내용이었고, 더불어 감사하다는 말도 함께 보내왔어요. 누군가에게 이렇게 큰 감정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니! 이럴 때마다 제 직업에 대해 굉장히 자부심이 생깁니다.”

Q : 연재가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A : “유미의 세포들은 한 주에 두 번씩 연재하는데, 벌써 300회차를 앞두고 있어요. 돌아보면 300개 회차 중에 쉽게 나왔던 에피소드는 5개도 안 될 것 같아요. 너무 엄살 부리는 것 같지만 주간 연재를 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라고 매주 느끼고 있습니다.”

Q : 세이브 원고 없이 작업한다고 들었는데요, 이유가 있나요.(통상 웹툰 작가들은 몇 회 원고를 미리 ‘세이브 원고’로 그려 놓는다. 비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과 유료 결제 시 미리 보여주는 수익 모델 때문이다.)

A : “고집한 적은 없습니다만 ㅎㅎ. 세이브를 갖고 있던 시기도 꽤 있었습니다. 다만 더 잘 만들려고 하는 제 욕심에 자꾸 세이브 원고를 뜯어고치는 통에 그나마 있던 세이브 원고도 다 없어졌습니다. 세이브 원고가 없어 좋은 점은 독자의 의견이나 반응을 빠르게 다음 원고에 녹여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안 좋은 점은 마감 전날 속이 두 배로 타들어 간다는 거? ㅎㅎ”

Q : 많이 받았을 질문이겠지만 또 묻겠습니다. 어떻게 여성의 심리를 세심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A : “남녀의 마음이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남녀가 표현하는 방식은 서로가 확실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약 이 여주인공이라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한 후에 ‘그 감정을 제 아내가 말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할까’라고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여성의 심리를 잘 표현한 것이라기보다는 현시대를 살고 있는 30대 여성의 표현 방식을 잘 담았다는 쪽이 맞을 것 같아요.”
웹툰 '유미의 세포들'. 남자친구 구웅에게 휘둘리는 유미에게 게시판 관리자 세포는 "남자 주인공은 따로 없다"며 이렇게 얘기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 명이야" [사진 네이버]

Q : 젠더 감수성이 높아진 요즘, 실수할 거리가 많은 소재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큰 논란이 없어요.

A : “‘무슨 남자가 술을 못 마셔?’ ‘축구 안 좋아한다고? 한국 남자 맞아?’ 이런 말을 자꾸 듣다 보면 저 역시 굉장히 불편해지고 나중에는 불쾌해집니다. 저는 술을 마시지 않고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이런 말을 듣기 싫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이와 비슷한 말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관계없이 신중하게 생각하고 대하려고 하고 작품에서도 그 성향이 반영된 것 같습니다.”

Q : 웹툰의 에피소드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A : “작가의 경험, 영화, 공연, 노래 가사 등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한 예로 사람 몸속에서 특별한 힘을 내는 ‘프라임 세포’는 뮤지컬 캣츠에 나오는 마법고양이 미스터 미스토펠리를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입니다. (프라임 세포: 각 인물이 가진 다양한 세포 중 유난히 강력한 힘을 가진 세포. 유미의 프라임 세포는 사랑 세포다.) 그리고 주인공의 남자친구 옆을 맴도는 얄미운 ‘서새이’ 캐릭터는 미드 ‘왕좌의 게임’의 악역 세르세이에서 이름을 따왔고, 성격은 박지윤의 노래 ‘스틸 어웨이(Steal Away)’ 가사를 듣고 떠올린 것입니다.”

Q : 이전의 한 인터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세포가 ‘뒷북 세포’라고 했어요. 지금도 그런가요.

A : “주인공 유미에게는 어떤 순간이 와도 유미 편을 들어주는 판사 세포가 있어요. 요즘엔 종종 그 판사 세포를 떠올립니다. 힘들 때 스스로를 다독이지 않으면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아요.”
웹툰 '유미의 세포들'에 등장하는 판사 세포. 언제나 유미의 편을 들어주는 든든한 세포. [사진 네이버]

Q : 많은 독자가 유미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A : “나와 비슷한 것에 끌리는 것 아닐까요? 현실 속 우리 모습과 비슷한 것 같아서. 특별함을 꿈꾸지만 특별하지는 않고, 강한 모습을 떠올리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고…. 카타르시스를 주는 캐릭터라기보다는 공감하는 캐릭터라서 친근하게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최근 들어 스토리라인과 세포들의 이야기가 단조로워졌다는 평이 있는데요.

A : “뜨끔합니다. 아주 잠시 방향성을 확실히 정하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시기가 길어졌는데 들켰네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Q : 그림체가 바뀐 것 같아요. 유미가 첫 회보다 훨씬 더 예뻐진 것 같기도 하고. 작화에 변화를 준 이유가 있나요.

A : “작화에 변화를 준 것은 아니었지만 변화가 생겨버렸습니다. 작업할 때는 모니터 한켠에 늘 유튜브 드로잉 영상을 띄워놓는데요. (드로잉 영상을 보는 것은 일종의 취미입니다.) 유명 작가들의 드로잉 영상을 몇 년째 보다보니 눈만 높아져서 제 그림이 점점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눈을 조금 크게 한다거나 머리칼을 채색할 때 두 가지 색을 그라데이션 한다거나 이런 소소한 것들에 조금씩 변화를 주다 보니 나중에는 그림체가 바뀌어버렸습니다.”

Q : 앞으로 유미를 어떻게 그려나갈 생각인지요.

A : “어떤 사건을 겪고 난 후 자신감도 잃고 의욕도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한층 더 성장하는 사람도 있죠. ‘어른스러워지는 것’이 ‘유미의 세포들’ 주인공 유미에게 부여된 유일한 임무였으므로 저는 주인공 유미가 다른 사건들을 겪으면서 조금씩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습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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