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이 박병호 악플 4만3794개 달 때.. 네이버는 뒷짐만 졌다

성호철 기자 2018. 4. 26.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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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 게이트]
인격모독·비하 들끓는 댓글, 명예훼손 신고 4년새 3배 급증

프로야구 넥센의 박병호 선수는 6년째 따라다니는 악플러에게 시달리고 있다. 네이버에서 '국민거품 박병호'라는 닉네임의 네티즌은 박 선수와 관련한 기사가 뜰 때마다 "구멍 박병호가 빠지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식으로 악성 댓글(악플)을 단다. 이 악플러가 혼자서 쓴 댓글이 4만3000여 건이나 된다. 프로야구 팬들 사이에서 '국거박'이라 부르는 유명 악플러다. 정작 피해자인 박 선수는 경찰에 고소도 못 하고 속앓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고소했다가 다른 악플러까지 달려들어 악플 폭탄을 쏟아부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네이버는 악플러에 대해 아이디 정지나 댓글 차단 등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 뒤에 숨어 댓글 장사를 즐기는 것이다. 야구계에서는 "악플러보다, 악플을 방치하면서 이것도 콘텐츠라고 생각하는 네이버가 더 문제"라는 말이 나온다.

4년 새 3배나 급증한 댓글 신고

포털의 댓글에 타인에 대한 인격 모독과 근거 없는 비하 발언이 넘쳐나고 있다. 주로 연예인이나 정치인, 프로 스포츠 선수와 같은 유명인이 대상이지만 일반인에 대한 악플도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악성 댓글 등 인터넷 게시 글로 발생한 온라인 명예훼손·모욕 사건은 2016년 1만4908건으로 2012년 5684건에서 3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신고했다면 명예훼손 건수가 최소 10배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수 아이유의 소속사는 지난 20일 악성 댓글에 고발 등으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아이유 소속사는 팬들에게 "악플 제보를 해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다. 지난달에는 아이돌 그룹 워너원 멤버 이대휘와 박우진의 소속사가 악성 댓글을 모아 서울중앙지검에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예전 '악플도 팬들의 관심'이라며 참았던 연예계마저도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일반인도 악플 테러의 예외가 아니다. 주부 A씨는 지난해 7월에 한 외식 업체 회장의 성추행 사건 때 피해 여성을 도와줬다가 악플 공격을 받았다. 악플러들은 A씨가 등장하는 기사에서 "성매매 여성이다" "4인조 꽃뱀 사기단" 식의 악플을 달았다. A씨는 A4용지 100장 분량의 악성 댓글을 내려받아 경찰에 고발했다. 지난해 12월 제천 화재 참사 때는 희생자 유가족에게 "유가족 갑질 장난 아니다" "무식한 XX들"과 같은 악플이 달리기도 했다.

악플 방치하는 포털

악플 대응은 고스란히 피해자 몫이다. 네이버·다음 등 포털은 피해자의 신고가 들어온 경우만 게시 글이 노출을 차단해 준다. 악플이 다 퍼진 다음에 피해자가 이를 인지하고 신고했을 때만 대응하는 것이다. 정작 악플 공격을 받은 당사자는 피해자인데도 복잡한 신고 절차를 거쳐야 한다. 휴대폰 본인인증을 거치거나 신분증 사본을 첨부해야 하고, 대리인의 경우 위임장이 필요하다. 악플의 주소와 내용, 게시중단 요청 취지, 게시물 중 구체적인 권리침해 표현, 소명 내용을 기입해야 하고, 필요한 경우엔 첨부파일도 보내야 한다. 실제 악플 피해로 게시물 신고 센터를 이용해본 한 이용자는 "댓글 피해자가 왜 이런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 지 이해가 안 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네이버, 다음 등 포털들은 "댓글을 모니터링하는 조직을 운영하지만 악플을 차단하기는 어렵다"며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상황이다. 심지어 네이버는 명예훼손성(性) 댓글을 적극적으로 막기는커녕, 최근엔 아예 자발적 관리·감독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약관을 개정했다. 네이버 측은 "다음 달 1일부터 적용되는 새 약관에는 '임의(任意)의 임시 조치' 조항이 삭제됐다"고 밝혔다. 현행법에 따르면 포털들은 자체적으로 명예훼손성 게시 글을 모니터링해 게시를 중단할 수 있다. 예컨대 댓글에서 특정인을 비방해 명예훼손 소지가 있을 경우 네이버가 자체 판단에 따라 게시 글 노출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네이버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임의의 임시 조치 조항에 근거해 차단한 게시 글이 없었다"는 이유로 이 조항을 삭제해 버린 것이다.

도준호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네이버는 댓글 생산의 판을 깔아주고 트래픽 증가라는 경제적 이득을 보는 만큼, 언론사가 해당 기사에 책임을 지는 수준의 관리 책임이 있다"며 "약관을 없앤 것은 네이버가 스스로 공적 책무를 외면하고 방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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