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크릴의 두 얼굴.. 바다 살리는 살림꾼? 병 주는 파괴자?

최인준 기자 2018. 4. 26.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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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생태계 중요한 역할자, 1~2cm 동물성 플랑크톤

남극에 많이 사는 크릴(krill)은 몸길이가 1~2㎝인 동물성 플랑크톤이다. 국내에서는 새우를 닮은 외양 탓에 '크릴 새우'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분류학상 새우와는 관련이 없다. 같은 갑각류이지만 새우는 동물성 플랑크톤을 잡아먹는다. 반면 크릴은 먹이사슬의 최하위층에 있어 과학자들에게는 연구 대상으로 그다지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래픽=김충민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세상의 이목에서 비켜나 있던 작은 생물체가 최근 과학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크릴 수만 마리가 매일 수심 수백 m를 오르내린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해수 순환의 결정적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크릴이 지구의 이산화탄소를 바닷속에 가두는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동시에 크릴이 미세 플라스틱을 나노미터(nm·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수준으로 잘게 분해해 해양 오염을 확산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과연 크릴은 바다를 살리는 '살림꾼'일까, 바다를 병들게 하는 '파괴자'일까.

◇바닷물 섞고 온실가스 줄이는 살림꾼

존 다비리 미국 스탠퍼드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는 지난 18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크릴과 같은 작은 해양 생물들이 무리지어 상승할 때 생기는 강력한 제트류(流)와 소용돌이가 바닷물을 위아래로 순환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발표했다. 바람이 약하면 유기물이 해저로 가라앉는데 동물성 플랑크톤들이 위아래로 부지런히 다니면서 바닷물을 섞어 영양분을 골고루 공급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바닷물로 채운 1.2m와 2m 깊이의 수조에 크릴과 유사한 브라인 슈림프(brine shrimp)를 넣고 이동 패턴을 관찰했다. 브라인 슈림프는 바다낚시에서 미끼로 애용된다. 크릴과 같은 작은 해양 생물은 포식자들이 뜸한 밤이 되면 수만 마리가 동시에 바다 표면으로 올라가 먹이를 먹는 습성이 있다. 해가 뜨면 다시 수심 600m 이하의 깊은 바다로 내려간다. 연구진은 이 습성을 이용해 주변을 어둡게 한 뒤 수조 위에서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을 쪼였다. LED 조명은 달빛을 대신했다.

실험에서 브라인 슈림프 무리는 초속 1m의 빠른 속도로 수면으로 올라갔다. 브라인 슈림프가 지나가며 만든 물기둥 주변에는 아래로 향하는 초속 2m의 제트류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무수히 많은 소용돌이가 생기고 바닷물이 위아래로 섞이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매일 이런 대규모 이동을 통해 깊은 곳에 있던 바닷물이 수면으로 올라가고 심해에 녹아 있던 영양분과 미생물도 자연스럽게 순환되는 것이다.

다비리 박사는 "브라인 슈림프 한 마리가 밀어내는 물살은 미약하지만 연이어 다른 브라인 슈림프가 물살을 가속시키기 때문에 수만 마리가 동시에 헤엄치면 엄청난 물결이 생긴다"며 "크릴과 같은 해양 생물에 의한 바닷물 움직임은 염분과 수온 차로 발생하는 해수 순환보다 수천배 강력한 확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재학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 연구원은 "그동안 바닷물 순환은 바람과 수온에 따른 밀도 차이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 연구로 해양 생물도 바닷물 순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크릴은 영양분 순환뿐 아니라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심해로 보내는 역할도 한다. 영국 남극연구소(BAS)의 지레인트 탈링 박사 연구팀은 지난해 12월 크릴 무리의 이동을 2000회 이상 추적한 결과, 크릴이 바다 깊은 곳에 저장하는 탄소의 양이 연간 2300만t에 이른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크릴은 해수면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작은 해조류들을 잡아먹는다. 이후 포식자를 피해 심해로 내려가 배설하는데 이 과정에서 바다 깊은 곳에 이산화탄소가 저장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크릴을 통해 바다 밑바닥에 쌓인 유기물이 오랜 세월이 흘러 천연가스나 석유 형태로 변형된다고 설명했다.

◇미세플라스틱 크게 줄여 독성 배가

이와 반대로 크릴이 지구 환경과 인류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호주 그리프스대의 아만다 도슨 박사는 지난 3월 크릴이 미세 플라스틱을 바다에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네이처 커뮤니케이션'를 통해 발표했다.

미세 플라스틱은 크기가 5㎜ 이하의 작은 플라스틱 알갱이이다. 크릴이 미세 플라스틱을 먹으면 몸 안에서 잘게 쪼개져 크기가 평균 78% 줄어든 상태로 배출된다는 것이다.

미세 플라스틱은 바다에서 물에 잘 녹지 않는 독성 물질과 잘 결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플라스틱 알갱이 크기가 작아질수록 먹이사슬 전체로 독성이 더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크릴의 플라스틱 분해 능력이 해양 오염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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