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에 예술 담는 ‘국악전도사’ 회장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외환위기때 부도 아픔 달래려 북한산 올랐다 대금소리에 반해
경영에도 예술 접목해 위기 극복… “지금은 과자에 詩 쓰기 실험중”
10년 넘게 국악행사 창신제 개최

22일 서울 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 앞에서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이 영재 국악회 공연에 앞서 ‘예술경영’을 설명하고 있다. 윤 회장은 영재 국악회에 거의 매주 참석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22일 서울 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 앞에서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이 영재 국악회 공연에 앞서 ‘예술경영’을 설명하고 있다. 윤 회장은 영재 국악회에 거의 매주 참석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원가를 확 낮춰 싸구려 과자로 가거나, 스토리와 예술적 감성을 담은 명품 과자를 만들거나. 제과업계가 살아남을 방법은 이 두 가지뿐입니다. 우리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22일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열린 ‘영재 국악회’ 공연장에서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73)을 만났다. 그는 크라운제과 창업주인 고 윤태현 회장의 장남으로 한때 부도까지 났던 기업을 국내 제과업계 2위 기업으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윤 회장은 “자녀의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제과업계는 ‘설탕과의 전쟁’을 할 수밖에 없다”며 “설탕을 줄이고 스토리와 감동이 담긴 명품 과자로 경쟁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명품과자로 든 사례는 쿠크다스. 그는 “밋밋하고 평범한 모양이었던 쿠크다스에 갈색 물결무늬를 새기면서 예술적 감성이 완성됐다”고 했다.

예술적 감성을 입히려는 또 다른 사례로 윤 회장은 과자에 시를 새기려는 실험을 하고 있다. 과자 하나를 먹더라도 시적 감성을 느끼도록 만들어 보고 싶다는 것이다.

윤 회장의 예술적 감성은 그가 국악 마니아라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이날 공연을 관람하려고 강당으로 들어가던 초등학생들이 윤 회장을 보고 “과자 할아버지다”라며 달려와 인사했다. 국악공연계에서 윤 회장은 스타급 인사였다.

그는 인터뷰 중간에 “한번 들어보라”며 가방에서 휴대용 블루투스 스피커를 꺼냈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수제천’이란 국악 협주곡이 스피커에서 묵직이 울렸다.

윤 회장의 유별난 국악 사랑은 크라운제과가 부도를 맞았던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 시작됐다. 채권자들을 설득해 시간을 벌고 해외 제과업체들과 협업하는 바쁜 나날들이 이어졌다.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려 홀로 찾았던 북한산에서 우연히 들려온 대금 소리에 마음을 뺏긴 그는 그때부터 ‘국악 전도사’가 됐다.

국악에 심취하다 보니 단순히 취미가 아닌 경영으로 연결시킬 안목이 생겼다. 윤 회장은 2004년 무렵부터 슈퍼마켓 점주 등을 모셔와 국악 공연을 보게 했다. 그는 “공연에 점주들을 초대하면서 영업사원들과 고객들의 스킨십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면서 “돌이켜보면 국악은 크라운제과를 위기에서 구한 일등공신이었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2004년부터 국악 명인이 참가하는 국악공연 ‘창신제’를 매년 열고 있다. 2015년부터는 매주 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에서 영재 국악회를 열어 초등학생들을 후원하고 있다. 또 지난해에는 남산국악당 시설 개선 후원금으로 30억 원을 쾌척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2017 한국음악상’의 메세나 대상을 받았다. 윤 회장은 “학교 음악시간에도 오선보 외에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만든 악보인 정간보 보는 법과 국악을 좀 더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크라운해태제과#영재 국악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