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2kg도 안되는 새가 64톤 흉기로..버드스트라이크의 공포

강갑생 입력 2018.04.26. 02:00 수정 2018.04.26.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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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와 충돌한 항공기의 조종석 앞 부분이 심하게 찌그러져 있다. [중앙포토]
지난 18일 미국 사우스웨스트항공의 B737기가 엔진폭발을 일으켜 비상착륙을 했습니다. 승객 144명을 태우고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해 댈러스 러브필드 공항으로 가던 길이었는데요.

당시 비행기 왼쪽 날개의 엔진이 폭발하면서 튄 파편에 기내 창문이 깨졌고, 한 40대 여성이 기체 밖으로 빨려 나갈 뻔한 상황까지 겪으면서 크게 다쳐 결국 사망했습니다.

사고 조사에 나선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일단 엔진 속에 있는 팬 블레이드(날)가 분리돼 사라진 점 등을 들어 '금속 피로 (metal fatigue) '를 의심하고 있는데요. 금속 피로는 고속으로 회전하는 기계 장치 등에서 금속이 지속적인 진동 때문에 물러지면서 균열을 일으키는 현상을 말합니다.
엔진 고장으로 불시착한 사우스웨스트 항공기. 엔진이 폭발해 심하게 부서졌다. [연합뉴스]
문제는 이 현상이 왜 생겼느냐인데요. 미국의 일부 언론에서는 새와의 충돌, 즉 '버드스트라이크(bird strike)'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비행기와 충돌한 새가 엔진에 빨려 들어가면서 고장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물론 정확한 사고원인은 상당 기간 정밀 조사를 거쳐야 밝혀질겁니다.

영화 '설리' 원인은 버드스트라이크
그런데 이 같은 추정이 나오는 이유는 유사한 사고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6년 개봉한 영화 '설리(SULLY)' 가 대표적입니다. 톰 행크스가 주연한 이 영화는 2009년 1월 15일 발생한 US 에어웨이스 1549편의 불시착 상황을 다룬 건데요.
버드스트라이크로 인한 불시착을 다룬 영화 '설리'.[중앙포토]
당시 이 항공기는 승객과 승무원 155명을 태우고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서 이륙한 직후 무게가 3.2~6.5㎏(수컷 기준)이나 나가는 캐나다 거위 떼와 충돌했습니다. 이로 인해 엔진에 불이 붙으면서, 센트럴 파크 인근 허드슨 강에 불시착했는데요. 이런 비상 상황에서도 전원이 생존하면서 '허드슨강의 기적(Miracle on the Hudson)'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습니다.
지난 3월에는 중국 톈진을 출발한 에어차이나 CA103편이 홍콩으로 향하던 중 새와 정면으로 충돌해 기체 기수 쪽에 거의 1m에 달하는 구멍이 뚫린 사고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외벽에만 구멍이 뚫려 큰 피해는 없었다고 하는데요.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국내에서도 버드스트라이크로 인해 이륙했던 비행기가 회항해 긴급 점검을 벌이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2016년에만 288건의 조류 충돌이 보고됐습니다. 이러한 조류 충돌이 생기면 인명 피해는 물론 경제적 손실도 적지 않습니다. 부품 교체와 수리, 항공기 지연에 따른 피해 등인데요. 이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전 세계적으로 연간 12억 달러(약 1조 3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 버드스트라이크의 5%가량이 심각한 사고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1㎏도 안 되는 새가 5톤 충격 가해
사실 얼핏 생각해보면 엄청난 크기의 금속으로 된 항공기가 자그마한 새와 부딪힌다고 무슨 충격이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 텐데요. 연구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무게 1.8㎏짜리 새가 시속 960㎞로 비행하는 항공기와 부딪치면 64t 무게의 충격을 주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엄청난 흉기로 변한다는 의미인데요.
다행히 순항 중인 경우에는 고도가 높아 버드스트라이크가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륙과 상승, 하강과 착륙 때인데요. 공항 인근에 서식하는 새 떼와 만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시속 370㎞로 이륙하는 항공기가 채 1㎏도 안 되는 새 한 마리와 부딪히면 약 5t의 충격이 가해진다는 조사결과도 있는데요. 실제로 외국의 버드스트라이크 사고 중에는 대형 조류가 조종석 입구까지 뚫고 들어온 경우도 있습니다.
비행기 주변에 새 떼가 몰려있다. 자칫 새가 엔진에 빨려 들어가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 [중앙포토]
가장 위험한 것은 앞선 불시착 사고들처럼 새가 엔진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입니다. 엔진 내부를 망가뜨리거나 심하면 엔진을 태워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행기 제작사들은 버드 스트라이크 위험을 줄이기 위해 조종석 유리창을 특별히 여러 겹으로 만듭니다. 또 엔진 개발 단계에서 새를 빨아들인 상황을 가정해 보완책을 찾기도 합니다.
전 세계 공항별로 주변에 서식하는 조류 종류가 다양할 텐데요. 국내에서는 텃새인 종다리가 가장 골칫거리로 확인됐습니다. 지난해 국립생물자원관이 밝힌 연구결과에 따르면 항공기와 충돌한 조류 가운데 종다리가 10.9%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어서 멧비둘기(5.9%), 제비(5.3%), 황조롱이(3.6%) 순이었는데요.
국내에서는 항공기와 가장 많이 부딪히는 새가 종다리인 것으로 조사됐다. [중앙포토]
공항 주변에서 자라는 식물을 먹기 위해 곤충이 모여들고, 이를 잡아먹는 작은 새가 날아오고, 다시 이 새를 먹이로 삼는 맹금류가 찾아오다 보니 버드스트라이크가 잦아진다는 설명입니다.

인천공항 새 떼 쫓는 '드론' 투입
이 때문에 공항들은 조류 충돌 예방에 무척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새를 쫓기 위해 엽총과 각종 음향기를 갖춘 조류 퇴치팀을 운영하고 있고, 요즘에는 첨단 기기까지 동원하고 있는데요.
인천공항이 도입한 조류퇴치용 첨단 드론. 엽총 소리와 맹금류 소리도 낸다. [연합뉴스]
인천공항은 최근 조류 퇴치를 위해 첨단 드론을 도입했습니다. 공항 주변을 날아다니면서 새 떼가 발견되면 엽총 소리를 내고, 새들이 무서워하는 맹금류의 울음소리를 퍼뜨려 새들을 쫓아내는 겁니다. 작은 탱크 모양으로 새들이 싫어하는 소리를 내서 새 떼를 몰아내는 장비도 있습니다.

아예 공항 주변에 새들이 서식하지 못하도록 환경을 바꾸는 경우도 있습니다. 호주에서는 공항 주변에서 버드스트라이크를 자주 일으키는 새의 먹이가 되는 특정 식물을 조절함으로써 새들의 서식도 줄이는 대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인천공항에서도 한때 공항 주변 소규모 하천을 모두 보도블록으로 메워버리는 '건천화(乾川化)' 사업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또 인근 골프장에는 새들이 날아들까 봐 큰 나무도 심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처럼 여러 방면에서 버드스트라이크를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좀처럼 사고가 근절되지는 않는데요. 새도 보호하면서 항공기 안전도 담보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이 개발되길 희망해봅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