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오탈자'를 아십니까"

김찬호 기자 입력 2018. 4. 25.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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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변호사시험 응시 5회 제한’ 부당성 호소하는 문현식씨

“로스쿨 ‘오탈자’가 무슨 의미인지 아세요?”

지난 20일 발표된 제7회 변호사시험에 불합격한 문현식씨(45·사진)는 기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오탈자’란 변호사시험에서 5번 탈락한 사람을 의미한다. 변호사시험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한 사람이 법조인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다.

현행 변호사시험법은 응시 횟수를 5년간 5회로 제한하고 있다. ‘오탈자’가 되면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영영 막히는 것이다. 문씨도 이번 시험에 떨어지면서 ‘오탈자’가 됐다.

문씨는 2011년 한 지방 국립대학 로스쿨에 입학했다. 그는 “직장에서 노조활동을 하다 만난 변호사의 모습에 감동해 38세의 늦은 나이였지만 나도 법조인이 돼야겠다는 생각에 로스쿨 입학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직장의 배려로 3교대 근무를 하면서 로스쿨에 다닐 수 있게 된 문씨는 수업을 일주일에 2~3일로 모으고 잠을 줄여가며 공부했다. 문씨는 이 시절을 “육체적 한계로 괴로웠지만 법조인이라는 꿈을 꿀 수 있어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로스쿨 3년을 마친 문씨는 2014년 제3회 변호사시험에 응시했다. 하지만 합격기준 점수 793점에 미치지 못했다. 앞선 제1회 시험 때 합격기준인 720점은 넘었지만 그사이 커트라인이 올라간 것이다. 문씨는 그해 법무부를 상대로 ‘불합격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지금까지 5년째 소송 중이다. 문씨의 당락을 결정한 변호사시험 커트라인에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 이유다.

현행 변호사시험법 10조에 따르면 변호사시험 합격자는 법무부 산하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의 심의를 바탕으로 법무부 장관이 결정한다.

하지만 관리위원회는 의결 기능이 없고 위원들도 법무부 소속 검사, 법무부 차관 등으로 구성돼 사실상 법무부가 목표로 잡은 합격자 수가 그대로 관철된다.

당초 변호사시험법에서 응시 횟수를 제한한 것은 높은 합격률을 전제로 이뤄진 것이다.

2009년 변호사시험법 도입 당시 이를 검토했던 법조인력양성제도개선소위원장 이주영 의원은 “변호사시험은 로스쿨 출신자들만 응시하기 때문에 합격률도 80% 정도로 높게 설계됐다”며 “이 정도 합격률에도 불합격해 시험에 매이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 응시 횟수를 5년간 5회로 제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7번의 변호사시험에서 합격자 수가 1500~1600명 정도로 결정되면서 이 기간 동안 합격률은 87.25%에서 49.35%로 하락했다. 매년 배출되는 로스쿨 졸업생(2000명가량)이 합격자보다 많다 보니 시험 탈락자가 누적되면서 합격률이 계속 떨어진 것이다.

문씨는 “응시 제한이 의미가 있는 것은 시험이 일정 수준의 합격률을 유지할 때”라며 “합격률이 50% 밑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1회 시험에서 10명 중 8등으로 합격한 사람과 7회 시험에서 10명 중 5등으로 떨어진 사람 중 누가 더 법조인으로서 적격자인지 판단이 가능하냐”고 말했다. 그는 “정원제로 운영되는 시험은 실력과 관계없이 일정수를 제외한 사람은 무조건 떨어진다”며 “법무부도 입법 당시에는 정원제가 아닌 적정합격률 체제로 변호사시험 제도를 유지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운영을 사실상 정원제로 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문씨는 “낮은 합격률로 발생하는 변시낭인이나 ‘오탈자’는 사시낭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사회적 문제를 만들 것”이라며 “합격률이 낮아질수록 학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금수저’들이 유리해 로스쿨은 부의 대물림 통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제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이 막힌 문씨는 “나 같은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소송을 진행해 부당함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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