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때 주저했던 대한항공 직원들, '물컵'에 수천명 일어선 까닭

2018. 4. 25. 17: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한항공 오너 대처방식은
2014년과 변함없어
이번엔 직원들이
"두번 속지 않겠다" 사태 주도

직원이 개설한 카톡 제보방엔
직원들만 알 내용 줄이어
"총수일가뿐 아니라 회사도
우릴 하인처럼 대했다"
사과·수습책에 만족하지 않고
"조양호 퇴진 때까지.."

[한겨레]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땅콩회항’ 피해자인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 등이 25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앞에서 열린 정의당 정당 연설회에서 발언을 마친 뒤 대한항공의 황제경영과 갑질경영을 규탄하며 손팻말에 물을 붓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3년 반 만에 분노는 몇 곱절이 됐다. 2014년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태 때에 견줘 최근 불거진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세례 갑질’ 사태에서 비롯된 대한항공 안팎의 분노는 더욱 폭발적이고 조직적이다. 땅콩 사태 때도 재벌가 딸의 상상 초월 ‘갑질’이 알려지자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이번에는 초반부터 지금까지 대한항공 직원들이 사태를 주도해 가고 있다. 흡사 2014년 조현아 당시 부사장에 대적했던 박창진 사무장이 수천명으로 늘어난 모습이다.

2014년 12월5일로 땅콩회항 사태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사건의 시작과 대한항공의 대처 방식은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조 당시 부사장이 승무원의 땅콩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아 활주로로 이동 중인 항공기를 되돌리고 사흘 뒤인 12월8일 해당 사건이 <한겨레>를 통해 알려졌다. 그러자 대한항공은 당일 입장자료를 내어 사과했고, 다음날 조 부사장이 보직 사임했다. 조양호 회장은 사건 발생일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12일 사과한 뒤 이듬해 1월5일 “소통위원회를 만들어 기업문화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소통위 설치와 기업문화 개선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 클릭하면 크게 볼수 있습니다.

이번 ‘물세례 갑질’ 논란도 시작은 익명 게시판 앱 ‘블라인드’였다. 이번에는 동생인 조현민 전 전무가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물세례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해당 글이 지난 12일 언론 보도로 이어지며 사태에 불을 지폈다. 조 전 전무가 보도 당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과 글을 올렸고, 조 회장이 열흘 만인 22일 사과문을 내며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과 조현진 전무의 직책을 박탈하겠다고 했다. 또 그룹의 준법경영 상태를 점검하는 준법위원회를 신설하고, 조 회장의 오랜 ‘복심’인 석태수 한진칼 대표를 대한항공 부회장으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직원들이 넘어가지 않았다. “두 번 속지는 않겠다”며 총수 일가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 대한항공 직원의 주도로 개설된 카카오톡 단체방 ‘대한항공 갑질 불법 비리 제보방’에는 대한항공의 분주한 사과 및 수습책 발표에도 총수일가를 직접 겨냥한 구체적인 제보 내용이 끊이지 않고 올라오고 있다. 이명희 이사장(조양호 회장 부인) 추정 인물의 공사장 갑질 영상이나 대한항공과 관세청 직원간 유착 정황을 보여주는 증거자료 등은 직원들이 직접 나서지 않았다면 알려지기 어려운 일들이다. 직원들은 나아가 총수 일가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벌일 준비까지 하고 있다.

직원들의 이런 ‘직접 행동’의 배경에는 “총수일가의 갑질처럼, 회사도 직원들을 하인처럼 대하고 있다”는 정서가 바닥에 깔려 있다. 분노를 다스릴 줄 모르는 개인들의 일탈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지난해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냈으나 이를 직원들과 나누는 데는 인색했다. 대한항공의 영업이익은 2014년 3950억원(영업이익률 3%)에서 유가가 내려가기 시작한 2015년 8831억원(7.6%), 2016년 1조1208억원(9.6%), 지난해 9398억원(7.8%)으로 치솟았다. 조양호 회장은 2014년부터 해마다 27억원 정도의 보수를 대한항공에서 받아왔고, 지난해 대한항공·한진칼·㈜한진 등 세 곳 계열사에서 받은 보수 총액은 66억4천만원에 이른다.

반면 대한항공 직원들의 임금인상률은 2015년 1.9%, 2016년 3.2%에 그쳤다. 지난해 임금인상률은 노조가 회사에 결정을 위임한 가운데 아직 미정이다. 한 대한항공 직원은 “노조가 회사 쪽과 가까워 회사에 임금 결정을 위임하는 등 노조에 무엇인가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처음 카카오톡 단체방을 만든 대한항공 직원도 “직원들의 구심점이 없어 땅콩 사태 때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그 때문에 박창진 사무장님 같은 피해자가 생겨난 것이다. 이제는 우리 힘으로 을들의 반격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한항공 직원은 “우리는 정말 어렵게 대한항공에 취업했는데, 조현아 조현민 둘은 젊은 나이에 그룹 임원이 돼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사람들을 종처럼 부리니, 누가 봐도 공정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home01.html/
◎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