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이집트 왕자' 살라의 모든 것

Andrew Murray 2018. 4. 25.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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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Andrew Murray]

모하메드 살라가 또 한번 유럽 무대를 흔들었다. AS로마를 상대로 독무대를 펼쳤다. 소속팀 리버풀의 5-2 골몰이에 크게 기여(2골2도움)했다. 프리미어리그 아이돌에서 유럽의 진짜 ‘왕’으로 거듭나는 모습이다.

<포포투>가 단독으로 이 ‘핫’한 남자를 만났다. 끝나지 않은 프리미어리그 여정, 위르겐 클롭 이야기, 28년 만에 월드컵에 진출한 이집트, 리버풀 새로운 왕의 등장… 모든 것을 파헤쳤다. 살라는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편집자 주: 2018년 3월호에 실린 인터뷰 기사입니다. 원고 분량이 매우 깁니다.)

# 유년기: 이집트 왕자의 탄생

2008년 엘 모카우룬(이집트 프리미어리그) U-16팀이 카이로 유소년 리그에서 ENPPI에 4-0으로 이겼다. 대승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팀의 레프트백은 라커룸 구석에서 눈물을 쏟았다. 그는 수비라인에서 적진까지 다섯 차례 드리블을 치고 올라갔다. ENPPI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을 만들었지만 모두 막혔다. 그의 질주는 무용지물이 됐고, 득점에 실패했다.

당시 그를 지도했던 엘 시시니는 그의 모습을 보고 두 가지를 이행했다. 첫째, 살라에게 25이집트파운드(약 1500원)를 줬다. 그의 기분이 좀 나아지게 말이다. 둘째, 다시는 살라를 레프트백으로 세우지 않았다. 그는 수비수에 어울리지 않았다. 수비 유망주였다면 측면 돌파 후 마무리 슈팅까지 잇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라는 슈팅까지 해냈고, 이후 라이트윙이 되었다. 엘 시시니는 이렇게 회상한다. “난 그에게 카이루 리그 U-16, 내셔널리그 U-17에서 모두 팀 내 득점왕이 될 거라고 말했다. 마지막 시즌에 살라는 총 35골을 기록했다. 그의 득점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살라는 나그리그의 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때부터 살라는 늘 축구와 함께였다. 친척 아바다 사예드 갈리는 그를 “축구 중독자”라고 표현했다. 언제나 살라의 발끝에는 축구공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번엔 살라의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나는 열네 살이 될 때까지 우리 형, 친구들과 함께 길거리에서 축구를 했다. 제일 처음 봤던 경기는 UEFA챔피언스리그였다. 지단과 토티의 플레이를 즐겨봤다. 브라질의 호나우지뉴도 물론이다. UEFA챔피언스리그 킥오프 전 흐르는 앤섬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TV 화면 속의 스타들은 영감을 줬다. 그때부터 축구는 살라의 삶이 되었다. 2006년 카이로의 인기구단 엘 모카우룬에서 살라의 존재를 발견했다. 농촌 마을에 작은 스피드레이서가 있다고 말이다. 살라의 축구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나의 프로 축구선수 커리어가 그때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 아랍 콘트렉터는 카이로에서 3시간 반 동안 버스 서너 번을 갈아타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일주일에 다섯 번을 그렇게 왕복했다.”
“수업을 자주 빠졌다. 그래야 제시간에 훈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끔 7시에 등교했다가 9시에 바로 나오기도 했다. 훈련장에 가기 위해서였다. 축구선수는 나의 꿈이었다. 어린아이는 늘 큰 꿈을 꾸지 않는가.”

꿈은 곧 현실이 되었다. 풀백을 벗어난 이후 살라는 엘 모카우룬과 이집트에서 최고 유망주로 떠올랐다. 2010년 5월 엘 만소우라을 상대로 데뷔했다. 당시 살라는 벤치에서 출발했고 경기는 1-1로 끝났다. “그때 나는 16세였다. 기분 최고였다. 경험이 풍부한 좋은 선수들과 함께 있었다. 선배들로부터 보호받는 기분이었다.”

2년 만에 살라는 이집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진짜 인생의 변화는 2012년 3월에 일어났다. 파라오 U-23팀에서 바젤과 친선전을 치른 날이었다. 당시 하계 올림픽이 코앞이었다. 살라는 후반전 교체 출격하자마자 바젤에 두 골을 터뜨리며 팀의 4-3 승리를 이끌었다. 이집트가 런던올림픽에 마지막 탑승을 하기 직전, 바젤은 이미 살라와 4년 계약을 체결했다. 살라는 보답이라도 하듯이 올림픽에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브라질, 뉴질랜드, 벨라루스 경기에서 모두 골을 터트렸다.


# 바젤~첼시: 축구 인생의 터닝포인트

스위스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바젤에서 모든 걸 혼자 해나가야 했다. 스위스 독일어는커녕 영어도 구사하지 못했다. 살라는 훈련 후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늘 도시를 걸으며 시간을 때웠다. 유럽에서 성공을 다짐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의 환한 웃음 뒤엔 늘 외로움이 있었다.

바젤에서 첫 시즌, 살라는 UEFA유로파리그 8강 토트넘전에서 골을 넣었다. 준결승전에서는 첼시를 상대했다. 살라가 선제골을 넣었지만 결국 첼시를 넘지는 못했다. 스위스 리그 우승으로 위안받았다. 2013-14시즌 UEFA챔피언스리그에서 바젤은 첼시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조별리그였다. 바젤은 홈과 원정에서 모두 첼시에 이겼다. 두 경기 모두 살라가 결승골을 넣었다. 페트르 체흐를 가볍게 제쳐 골을 넣었고, 드롭샷으로 체흐에게 굴욕을 안겨줬다. 올 시즌 리버풀에서도 자주 보인 모습이다. 2014년 1월, 그러니까 살라가 바젤에 온 지 약 18개월 만에 조제 모리뉴 감독이 1100만 파운드(약 166억 원)를 내어 그를 런던으로 데려갔다.

2월 뉴캐슬전에서 교체 멤버로 데뷔전을 치른 살라는 한 달 후 데뷔골을 넣었다. 상대는 아스널이었다. 살라의 골과 함께 첼시는 6-0 대승을 거뒀다. 이후 스토크 시티, 스완지 시티를 차례로 만나며 맨오브더매치로 떠오르기도 했다.

첼시에서의 첫 시즌 하이라이트는 리버풀전에서 나왔다. 스티븐 제라드의 치명적 패스 실수가 등장했던 그 경기다. 첼시는 안필드에서 타이틀 경쟁자 리버풀에 2-0으로 이겼다. 살라는 자신이 오랫동안 품었던 꿈을 이루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리버풀 팬이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좋아하는 클럽이었다. 안필드에서 뛰는 건 내게 정말 특별했다. 경기장 분위기도 환상적이었다. 그때 내게 참 특별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그게 성공의 발판이 될 줄 알았다. 아니었다. 2014년 10월 슈루즈베리와 리그컵 경기에 출전하기 전까지 살라는 리그에서 18분밖에 뛰지 못했다. 슈루즈베리전에서도 드록바가 48분에 골을 넣을 때까지 살라는 제 리듬을 못 찾고 있었다. 슈팅도 위력이 없었다. 조제 모리뉴 감독은 “레벨을 높이기 위해선 더 많이 뛰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라고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챔피언스리그에서 스포르팅을 상대했고, FA컵에서 브랜드퍼드 시티를 만났다. 그게 푸른 살라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에당 아자르는 과거의 동료를 이렇게 회상한다. “그는 첼시에서 기회를 잡지 못했다. 감독 때문인지, 다른 선수들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내 기억에 그때 같은 포지션에 나를 포함해 윌리안, 오스카 등 경쟁자들이 많았다. 주전 경쟁이 쉽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선수였다. 훈련에서도 자기 능력을 마음껏 뽐냈다. 가끔 경기에 투입되면 골도 곧잘 넣었다. 우리 모두 그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2015년 1월이 됐다. 스탬퍼드 브리지에 도착한 지 1년 만에 살라는 피오렌티나로 임대를 떠났다. 로멜루 루카쿠 또는 케빈 데브라위너와 비슷한 루트였다. 살라는 모리뉴 감독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피오렌티나 임대를 마치고 첼시에 돌아오자마자 모리뉴 감독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 후에도 만났다. 깊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어도 우리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혹시 모리뉴 감독이 첼시에선 왜 지금처럼 뛰지 않았냐고 묻지 않았을까? 살라는 즉시 “아니다. 그 일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 피오렌티나~로마: 무결점 공격수를 향해

살라는 세리에A에서 한층 더 성장했다. 수비를 중시하는 이탈리아 축구에 적응하기 위해 몸을 탄탄하게 키웠다. “축구를 다시 하게 됐다. 중요한 시기였다. 꾸준히 뛸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 임대 기간에 꽤 잘했다고 생각한다. 경기장에서 나 자신을 믿지 않았다면 이 위치까지 도달하지 못했을 거다. 절대로.”

비올라(피오렌티나 애칭)에서 살라는 26경기에서 9골을 넣었다. 2015 코파이탈리아 4강 1차전, 유벤투스를 상대로 단독 질주해 득점을 터뜨리기도 했다. 장기인 스피드와 볼컨트롤, 슈팅까지 완벽했다. 수비진은 꼼짝없이 무너졌다. 피오렌티나 스포츠 디렉터 다니엘레 프레이드는 “그야말로 대단한 골이었다. 그의 나이를 생각해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탈리아 일간지 <가제타 델로 스포츠>도 찬사를 보냈다. 1면에 “Sim Salah bis(살라의 두 골)”이라는 타이틀이 살라의 얼굴과 함께 크게 실렸다. 빈센초 몬텔라 감독은 그를 이렇게 회상한다. “우린 그의 능력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날카로운 선수인지 몰랐다. 볼을 갖고 그렇게 빨리 달리는 선수는 없을 거다. 살라보다 빠른 사람은 메시뿐일 거다.”

살라의 스피드는 로마의 루치아노 스팔레티까지 매료시켰다. 피오렌티나 임대 1년이 끝나자 그는 2015년 여름 로마로 떠났다. 한 시즌을 세리에A에서 더 보내게 되었고, 세리에A에서 2년 동안 65경기에서 29골을 넣었다. 어시스트도 17개나 기록했다. 2015-16시즌 살라는 로마에서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스팔레티 감독은 “누가 그를 잡을 수 있을까? 그를 잡으려면 오토바이를 동원해야 할지 모른다”라고 극찬했다.

살라가 뛰는 동안 로마는 세리에A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했다. 스팔레티 감독의 강한 압박과 거침없는 역습 전개, 전술 유연성이 유벤투스의 독식 본능을 무너뜨렸다. 살라가 수염을 만지며 회상했다. “나는 늘 공격적인 팀에서 뛴 덕분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스팔레티 감독은 내가 전술적으로, 수비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줬다.” 살라가 스팔레티 감독을 회상하자 따뜻한 공기가 인터뷰 공간을 감싸는 듯했다.


# 리버풀: ‘콥 킹’으로 떠오르다

살라의 다음 목적지는 머지사이드였다. 리버풀에서는 ‘역대 최고액’ 타이틀을 달고 합류한 많은 선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살라는 달랐다. 이탈리아에서 피력했던 스피드가 리버풀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그는 빨리 경기에 출전하고 싶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사랑했던 팀이다. 내가 뛰고 싶은 팀이었단 걸 깨달았다.” 안필드에 온 지 6개월이 흘렀지만, 살라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 팀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나는 기회만 잡으면 새 역사를 쓸 수 있다.”

위르겐 클롭 감독의 레이더망에 살라가 걸렸다. 그는 6개월 동안 살라의 성장세를 지켜봤다. 마침내 지난해 6월 말 리버풀이 살라를 손에 넣었다. 프리시즌을 함께 보낸 덕분에 살라는 클롭 감독의 게겐프레싱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프리시즌 초, 살라는 리버풀에서 딱 두 번 훈련한 후 위건에서 친선 경기를 치렀다. 살라의 플레이를 본 클롭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살라는 우리의 수비 전술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

살라가 당시를 회상했다. “클롭 감독은 내가 발전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많이 줬다. 덕분에 세상에 나의 축구를 보여줄 수 있었고, 여기까지 왔다. 클롭 감독은 항상 팀을 위해 노력한다. 모든 선수가 행복하게 웃기를 원한다. 선수들도 감독을 위해 최선을 기울인다는 뜻이다.” 프리미어리그가 진행될수록 그의 동기부여는 더욱 강해졌다. “3년 전 나는 많이 뛰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온 이후 나는 내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잘 해내고 있는 것 같다.”

살라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표정은 마치 코너킥을 차기 직전 같았다. 입꼬리가 쓱 올라가는 그 표정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뛰는 것이 아니다. 나는 피오렌티나와 로마에서 뛰었고, 꽤 잘했다. 그리고 이곳, 최고의 클럽에 왔고 매 순간을 즐긴다. 그 뜻이다. 다른 뜻은 없다.”

올 시즌 리버풀 경기를 되짚어보자. 두 가지 놀라운 사실이 등장한다. 첫째, 살라는 볼을 놓치는 법이 없다. 리버풀이 중원이나 수비에서 볼을 소유할 때 살라는 늘 특정 제스쳐를 취한다. 손바닥을 하늘 위로 세우고 그의 손가락을 자신의 발끝을 가리킨다. 그래, 그 볼을, 나한테 달라고. 두 번째는 더 중요하다. 동료들의 움직임이다. 살라는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공격할 때나, 수비할 때나 똑같다. 엘 모카오룬에서 레프트백으로 뛸 때 습득했던 90분 내내 지치지 않는 요령이다. 결정적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살라의 움직임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는 리버풀의 가장 날카로운 공격수다. 클롭 감독에게 다른 옵션은 없다. “내가 65분 이후에 살라를 교체로 빼면 그는 화를 낸다. 공격수에게 필요한 정신력이다.”


동료와 호흡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좋다. 로베르토 피르미누와 사디오 마네. 리버풀이 올 시즌 85골을 넣을 때까지 트리오는 50골을 합작했다. 살라가 허공에 포메이션을 그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피르미누, 마네)은 모두 최고의 선수들이다. 옥슬레이드-챔벌레인과 헨더슨을 비롯한 모든 동료가 곁에서 나를 돕는다. 매일 함께 훈련하는 덕분에 우리는 서로를 잘 안다. 함께해서 정말 행복하다. 지금보다 더 잘하고 싶다. 최고의 시즌을 보낼 거다.”

프로 경력을 시작한 이래로 살라는 제일 편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금까지 그는 단일 시즌 20골 이상 넣은 적이 없다. 하지만 올 시즌, 지난해 12월에 일찌감치 살라는 20골 고지를 밟았다(*4월25일 기준 리그 31골, 시즌 43골). 득점 종류도 눈부실 만큼 다양했다.

리버풀의 ‘헤비메탈’ 역습 전술에서 살라는 늘 방점 역할을 한다. 모든 골이 환상적이었다. 아스널, 스토크 시티, 웨스트 햄을 상대로 넣은 골이 대표적이다. 살라는 오른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들어 왼발을 마음껏 뽐낸다. 어느 쪽 발로 슈팅을 때리든 정확도는 떨어지지 않는다.

지난 12월 레스터 시티 경기였다. 리버풀이 2-1로 이겼다. 헤리 맥과이어는 살라의 발끝으로 향하는 볼을 막지 못했다. 살라는 부드럽게 공을 받아 등을 돌려 맥과이어를 가볍게 벗겨냈다. 살라가 새로운 기술을 탑재한 것이다. 첼시 시절과 지금의 체구를 비교해보면 근육이 붙었다는 차이를 알 수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왼발 스페셜리스트를 연상케 한다. ‘이집트 메시’라는 별명이 더는 어색하지 않다. 레스터전 승리 후 클롭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주고 싶다. 이런 골(살라)은 이전에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강한 체구를 지녔다. 자신의 능력 100%를 선보인 플레이에 놀랍다.”

살라도 자신이 이렇게 많은 골을 넣을 줄 알았을까? 살라는 등을 기대더니 고개를 살짝 젖혔다. 그리곤 “거만해 보이긴 싫지만…”이라며 웃는다. “에이, 난 잘하고 있다. 물론 로마에서도 좋았다. 그곳에서 환상적인 두 시즌을 보냈고 정말 행복했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다. 늘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쿠티뉴의 바르셀로나 이적으로 큰 충격에 빠졌던 콥(리버풀 팬 별칭)도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살라 덕분이다. “쿠티뉴는 훌륭한 인간이자 운동선수다. 5년 동안 이곳에서 뛰며 자신의 능려을 100% 보였다. 누구나 상대 팀보다 많은 골을 넣기 위해 집중해야 한다. 그게 쿠티뉴든, 살라든 말이다. 반드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부담은 없다.”


# 남은 목표: 유럽 정복 & 월드컵 성공

살라의 어깨 위에 리버풀만 있는 게 아니다. 콩고전 추가시간 4분 그의 결승골과 함께 이집트는 28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올여름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우루과이와 함께 조별리그를 치른다. “행복하다. 이집트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때마다 정말 자랑스럽다. 난 나를 응원하는 팬들을 위해 뛴다. 리버풀에서도, 이집트에서도 팬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조국이 새겨진 깃발이 조금 더 특별한 건 어쩔 수 없다.”

살라의 위상은 이집트를 이미 뛰어넘었다. 지난 1월 그는 올해의 아프리카 선수로 선정되었다. 아랍권 국가 전체로도 슈퍼스타 대접을 받는다. 이집트 일간지 <알 와탄>은 전체 16면 중 무려 9면을 살라 관련 기사로 할애했다. 1면 제호는 “파라오: 2017년의 행복과 2018년의 희망”이었다.

이집트 축구 팬들은 살라의 등장이 반갑다. 모하메드 아부트리카 이후 최고 스타플레이어다. 아부트리카는 아프리카컵오브네이션스 우승컵을 세 차례 들어올린 이집트 역사상 최고 레전드다. 로마 시절, 팀이 두바이에 방문했을 때 현지에서 가장 뜨거운 환대를 받은 주인공은 토티가 아니라 살라였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살라가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권을 획득하는 데 기여한 후였기 때문이다.

리버풀 동료 사디오 마네는 살라의 인간성을 칭찬한다. “나는 그를 깊이 존경한다. 나뿐만이 아니다. 우리 팀 누구에게 물어봐도 똑같이 대답할 것이다. 다양한 인격체가 있지만 살라는 다르다. 그는 신앙심이 깊고 타인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가 좋은 축구선수라는 사실이 그런 장점을 더 부각시킨다.”

살라는 이집트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을까? “물론. 당연하다!”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살라가 대답했다. “우리는 월드컵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조별리그 성적을 장담하진 못한다. 우리가 매 순간을 즐길 것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최종 성적은 두고 볼 일이다.”

그 전에 리버풀의 시즌이 끝난다. 프리미어리그와 FA컵의 주인공은 이미 확정됐다. 리버풀의 남은 우승 기회는 UEFA챔피언스리그에 있다. 결승까지 남은 관문은 하나. “전에도 우리의 승리를 위해 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에게, 팬들에게, 그리고 구단에 목표는 오직 하나다. 우승 트로피.”

모든 프로 선수의 꿈이다. 살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리버풀은 2012년 리그컵 이후 우승이 없다. 살라가 리버풀에게 6년 만에 트로피를 안긴다면 그는 이집트를 넘어 리버풀의 왕좌(여전히 케니 달글리시의 몫)에 앉게 된다. 살라가 웃는다. “내게 해당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다. 팀을 위해 골을 넣는 게 행복하다. 내가 어릴 때 지지했던 리버풀을 위해서 말이다. 내게는 가장 중요한 가치다.”

사진= 포포투DB,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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