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절벽 내몰린 취약계층..여성 저학력 근로자 7만명 짐쌌다

송길호 입력 2018. 4. 25. 05:35 수정 2018. 4. 2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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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후폭풍 '고용쇼크'
최저임금인상률 역대 최고 수준
5인 미만 영세 사업장 직격탄
여성 단순 노무자, 음식숙박업 등
저임금 근로자 일자리 크게 줄어
정부 일자리 안정기금 효과 미미
"기업 입장 반영한 유연한 정책 필요"

[이데일리 송길호 기자]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경제현상에 미치는 파장은 크게 두 갈래다. 최저임금에 가깝게 임금을 받는 취약계층 중심의 일자리 감소, 그리고 해당 업종과 연관된 분야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물가불안이다.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은 고용쇼크다. 통상 정책의 효과는 일정 시차를 두고 반영되지만 최저임금인상은 적용시점 전후에 급격히 나타난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적용시점보다 6개월전에 확정되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있는 기업 경영자나 자영업자들은 예고된 인상률에 따라 고용을 줄이거나 다른 방식으로 비용절감에 나서는 등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실질적으로 역대 최고치에 달한 올해, 당초 우려대로 고용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취업자 증가율은 급격히 둔화하고 임시· 일용직, 고졸이하 근로자들이 급감하는 등 고용 양극화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경기흐름은 지난해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고용상황은 양적 질적 측면에서 모두 악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부는 일자리안정기금 등을 통해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완화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현장의 흐름은 여전히 냉랭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 일용직, 단순노무자, 고졸이하 직격탄

1분기(1∼3월) 고용지표는 이 같은 현실을 투영한다. 이 기간 취업자 증가율은 0.7%(18만3000명)로 1년전 같은기간 1.4%(35만3000명)의 절반수준에 그쳤다. 2010년 1분기 0.6%(13만2000명)이후 8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취업자 증가율은 지난해 1·2분기 각 1.4%에서 3·4분기 각 1.0%로 둔화된데 이어 올 1분기에는 0%대로 뚝 떨어졌다. 이 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성장률(전년동기비)이 1∼2분기(2.9%, 2.8%)에 비해 3∼4분기(3.8%, 2.8%)가 오히려 더 높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취업자 증가율은 성장률에 역행한 셈이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16.4%)이 결정된 지난해 7월15일 이후 고용시장에선 경기흐름과 무관하게 이미 선제적으로 고용조정이 이뤄지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분야별로 보면 저임금 근로자들이 몰려 있는 일용직과 임시직, 고졸 이하, 15∼24세 청년층, 규모별로는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이 고용한파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임금근로자중 상용직은 40만9000명(3.1%) 늘었지만 임시직과 일용직은 모두 18만1000명(-2.9%) 줄었다.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임시직을 늘리기 위한 정부의 재정투입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감축 도미노는 피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특이한 점은 여성 일용직이다. 임시직에선 직장을 잃은 근로자가 남성 5만8000명, 여성 6만6000명으로 별 차이 없었지만 일용직의 경우 실직 근로자의 98%가 여성(5만6000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학력별로도 실직한 고졸 이하 근로자 9만8000명(-0.7%)중 70%인 6만8000명(-1.1%)이 여성이었다.

◇숙박음식업 등 작년 하반기부터 고용조정

직업별로는 제빵사· 건설인부와 같은 기능원, 상점 매장직원 등 판매종사자, 각종 단순노무종사자 등 저임금근로자들이 많은 직종에서 여성 중심으로 고용절벽이 나타났다. 이 기간 여성 단순노무자 3만9000명(-2.4%)이 직장을 잃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접어든 2008년3분기(-2.8%)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연령대별로는 15∼24세 연령대의 취업자수 증가율이 지난해 4분기 -5.2%(8만4000명)에 이어 올 1분기에도 -5.0%(8만1000명)로 역대 최저치를 이어갔다.

산업별로는 도소매업이나 부동산업, 사업시설 관리, 사업지원· 임대서비스업 등에서 일자리가 많이 사라졌다. 이들 업종에서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근로자 비율은 20%안팎으로 평균(13.6%)수준을 훨씬 넘는다.

눈에 띄는 건 숙박음식업이다. 3분의 1이 넘는 근로자가 최저임금 적용 대상인 이 업종에서 2만4000명(-1.1%) 이 직장을 잃었다. 2012년 1분기 이후 계속 고용이 증가했지만 지난해 3분기를 고비로 감소세로 전환됐다. 해당 업주들이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이 발표된 지난 7월 이후 비용절감을 위해 선제적으로 고용조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음식숙박업의 물가상승률이 작년 4분기 2.6%(전년동기대비)에 이어 올 1분기 2.7%로 소비자물가상승률(작년 4분기 1.5%, 올 1분기 1.3%)을 크게 뛰어 넘었다. 이 업종에선 고용쇼크 뿐 아니라 물가불안마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저임금이 급격히 올라가면서 저임금 근로자들을 주로 고용한 영세 고용주 등이 실제 경영난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며 “가장 보호받아야 할 취약계층에서부터 고용절벽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최저임금인상률, 역대 최고수준

최저임금의 인상 그 자체가 무조건 부정적인 영향만을 미치는 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최근까지 발표된 200여개의 연구결과는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부정적인 요인을 모두 담고 있다.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정책의도대로 저임금 노동자를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문제는 올해처럼 경제 생태계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격히 인상될 때다. 올해 최저임금은 7530원.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적용대상은 임금근로자의 4분의 1에 달하는 462만5000명에 달한다.

1989년 최저임금제 적용 이후 올해보다 인상률이 높았던 해는 1991년(18.8%)과 2001년(16.6%). 그러나 경제의 생산성과 근로자 전체의 임금인상률 등을 감안하면 올해 인상률이 실질적으로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1991년의 경우 경상 성장률이 19.7%로 최저임금 인상률과 엇비슷했다.2001년 인상률은 경상 성장률(8.6%)의 2배정도였지만 직전 두 해 인상률이 당시 명목 성장률(1999년 12.1%, 2000년 11.2%)을 크게 밑도는 2.7%, 6.9%에 그쳐 일종의 보상효과로 작용했다.

반면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명목 성장률(4.7%·한은 전망)의 3.5배에 달한다. 이미 2012∼2017년 평균 최저임금인상률이 7.0%로 평균 명목 성장률(4.3%)을 크게 앞질렀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 전체의 파이, 생산성과 무관하게 급격히 인상됐음을 엿볼 수 있다.

이는 근로자 전체의 임금상승률과 비교하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임금상승률(3.8%·한국노동연구원 전망)의 4.3배에 달한다. 통상 최저임금인상률은 임금인상률의 1∼2배수준. 최저임금제 30년 역사에서 올해처럼 격차가 확대된 건 처음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2월 연례보고서에서 올해 한국의 최저임금 인상률이 최근 생산성과 임금상승률, 물가상승률 등과 비교할때 매우 높다며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지적한 것은 이 같은 배경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물가상승률의 10배가 넘는 최저임금인상률은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밖에 없고 이미 고용쇼크나 관련 업종 중심으로 물가불안이 나타나고 있다”며 “노동자들 뿐아니라 노동의 수요자인 기업 입장까지 반영해 좀 더 유연한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송길호 (khso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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